1976년이나 77년 8월 어느 점심 전후로 기억이 된다. 부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거제 하청으로 가는 여객선 세길호의 기관장은 몹시 격앙된 목소리로 하청면의 경찰지서(파출소)에 전화로 놀라움과 부당함을 계속해서 퍼붓고 있었다. 지서뿐만 아니라 면사무소 등 전화를 돌릴 수 있는 데는 다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여객선에 포를 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맞아 거제 저도로 오면 거제 고현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신진호나 부산에서 거제 하청으로 오는 세길호의 항로가 저도 주변 유호에서 일시적으로 변경된다. 될 수 있으면 각하가 쉬고 계시는 저도를 벗어나 여객선은 멀리멀리 돌아서 물살을 가르곤 했다. 저도에서 북동 방향으로는 가덕도가 길게 자리를 잡고 가덕도 왼쪽으로는 진해만이 그리고 좀 더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마산항이 이어진다. 여름날의 낙조는 고성군 당항포로 향한다. 가본 적 없지만 아마 축소된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중해 분위기일 것이다. 거제 본섬과 저도는 1.3km 남짓이다. 남으로는 이수도 마을이 가까이 보인다. 1975년부터 93년도까지 행정구역도 거제시가 아닌 해군통제본부(진해기지사령부)가 있는 진해시로 편입되었었다. 저도를 피해 가고 있는 세길호에 인근의 해군함정에서 경고성 포를 쏜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엔 일반 여객선 주변에 포를 쏜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렵다. 공상을 넘어 망상이다. 나이 서른도 안 된 당숙이 힘없고 애꿎은 경찰 지서장에게 퍼붓던 폭탄이 “저도” 하면 떠오르는 첫 기억이다. 

아침 8시에 고현항을 출발하여 석포만을 돌아 하청에서 칠천도, 장목을 지나 여객선 신진호는 황포 그리고 유호에서 마지막으로 승객과 짐을 싣고 가덕도 등대를 향해 힘껏 뱃고동을 올린다. 저도를 지날 때 즈음이면 “마산해운 마산해운 감도 있습니까? 오버....” 신진호가 저도를 넘어 마산해운의 통제를 벗어나 “부산해운 부산해운 여기는 신진호 지금 승객 000명을 싣고 저도를 지나 부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버....”. 당시 집안에서 거제해운이라는 여객선 사업을 했기에 출가자 외 집안의 형제자매 며느리들은 대부분 여객선 사업에 동참하고 있었다. 여객선이 올 때면 선착장이 없었던 유호(상유마을)에서는 승객과 짐을 실은 작은 배가 선착장 역할을 했다. 그 2~3분 남짓의 도킹(docking)에 승객들과 짐이 함께 내리고 타는 사이에 선장실에서 저도를 가깝게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인적 없는 백사장과 뒤편의 하얀 2층 건물, 그리고 선착장에 한두 대의 해군 경비정이 저도의 풍경이었다. 여객선 사업의 초창기에는 선내에 안내 방송이 없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내릴 곳을 놓쳐 생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장목면의 해안도로로 상유에서 구영, 황포가 가까운 거리이지만 당시는 버스도 드물었기에 걸어서 가야만 했다. 신진호는 부산에서 3시에 출발하여 가덕도를 지나기 전까지 낙동강 하구에서 내려오는 빠른 속도의 유량으로 파고가 높고 파도가 거센 해역을 헤쳐 나가야 했다. 승객들은 뱃멀미를 피할 생각으로 일찌감치 누워서 잠을 청했다. 깜박 잠이 깊게 들거나 두 칸밖에 없는 복잡한 화장실에 갔다 오거나 신발을 못 찾거나 승객이 많아 아이들을 제때 찾지 못해서 또는 과음으로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릴 곳을 착각하곤 했었다. 초행길의 관광객들은 걱정이 앞서 부산 영도 다리와 송도를 지나자마자 자신의 목적지에 가까웠냐고 주변에 연방 물어보곤 했었다. 못 내렸다고 고함을 치고 울고불고하지 않는 이상 배는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하, 1층, 2층에 있는 객실의 승선 정원이 300명이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설날이나 추석이면 정원 초과가 기본이었다. 여객선이 출항하거나 입항할 때 경찰도 입회하여 정원 초과 확인 및 거수자(거동이 수상한 자) 색출 같은 다른 임무도 수행했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가능했다. 설이나 추석 연휴는 늘 대목이라며 온 집안 식구들이 좋아했었다. 덩달아 필자도 추석과 설 대목을 기다렸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저도는 거의 30년 동안 잊힌 금단의 대통령 별장이었다. 전통과 노통을 비롯한 YS와 DJ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주로 대청호를 배경으로 한 청남대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그러나, 2003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도록 지시하였고 이에 자극받은 거제에서도 저도 반환 요구의 민심이 일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저도에서 낚시하고 글로벌 금융위기인 리먼 사태를 앞두고 정중동(靜中動)의 휴가가 보도되면서 다시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1973년 청해대(저도) 본관 2층 건물이 현대건설 이명박 과장의 진두 하에 만들어지고 35년 뒤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다시 저도를 찾은 셈이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백사장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쓴 글귀 “저도의 추억”이 언론에 보도되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마침내,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저도를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 조치하면서 바다의 청와대라는 청해대는 거제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국민의 관광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저도 섬 소유와 관리가 여전히 국방부와 해군의 통제하에 있어서 반쪽짜리 관광 상품이라는 주장이 있다. 청남대 반환의 실상은 청남대의 관리 비용 대 관광 수입이 만년 적자라는 언론 보도로 큰 우려를 시사한다. 대통령의 별장이었다는 소재만으로 관광 명소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방부나 해군이 관리하여 관리비를 줄이고 군사보호구역이라는 팻말과 철조망이 눈앞에 있는 것이 훨씬 더 깊은 호기심과 인상을 유발하는 금단의 마력일 것이다.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관광객이 출입할 수 있는 일부 부속 건물에 1026 당시의 궁정동 안가처럼 꾸미는 것도 대한민국 국민과 방문객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난 8월 초 윤석열 대통령의 저도 휴가와 고현시장 방문의 언론 보도와 홍보보다 예기치 못한 잼버리의 파행 보도가 국민적 관심사로 주목받으면서 거제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년에는 역대 대통령도 와서 야구, 배드민턴, 수영, 낚시, 축구, 페인팅, 사격, 골프, 자전거 타기 그리고 독서 등 다양한 모습을 통해 저도 관광이 매년 큰 대목을 봤으면 좋겠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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