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80」
      '자살 ⇔ 살자'  

      강 민 진
골패인 갯바위에
홀로 선 갈매기야

무슨 근심 그리 많아
목 눌러 서 있느냐

행여나 이상한 마음
먹은 것은
아니겠지.

백구(白鷗)야 고개 들어
저 높은 하늘 보렴

거친 비 바람에도
널 찾는 가족 있잖니

그렇게 떠나 버리면
부모 가슴엔 멍만 남지.

백구야 고개 들어
저 넓은 바다 보렴

두둥실 파도 타는
재미도 쏠쏠하지

정말로 힘들게 하는 건
자기 자신 이란다.

◎ 반포지효(反哺之孝)
거제엔 까마귀가 유별나게 많다. 대충 보아도 수천 마리는 족히 되지 않나 싶다. 그래선지 청마 선생은 그의 ‘출생기’에서 그가 태어난 거제 둔덕 방하리를 두고 “검정 포대기 같은 까마귀 울음소리 고을에 떠나지 않고 밤이면 부엉이 괴괴히 울어…”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조류 중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부엉이, 올빼미, 까마귀일 것이다. 아마도 싫어하는 이유가 그들이 우는 소리 때문이지 싶다. 밤중에 부엉이나 올빼미 우는 소리를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이 없을 것이고, 까마귀 소리는 더욱이 그러하다.
 
까마귀처럼 환대는커녕 배척받고 박대당하는 조류는 없지 싶다. 사람들은 유독 까마귀에 인색하다. 까마귀의 검은 날개는 저승사자의 옷자락이라도 되는 듯 꺼리고 외면한다. 더욱이 까마귀 소리는 상서롭지 못한 징조로까지 여겨 까마귀가 울면 집에 재앙이 든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또한 까마귀는 시신을 먹는 불결한 습성이 있어, 까마귀밥이 되었다고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운 나머지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를 마라’하고 선을 그었으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억울한 누명까지 씌웠다. 어디 그뿐이던가. 해야 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공연히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느니 애먼 탓을 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까마귀의 명예가 송두리째 훼손되었는데 대접받는 분야가 한군데 있다. 바로 수석에서다.

 돌의 관상 가치를 두고 말할 때 形•質•色을 따진다. 形은 좋은 형태를, 質은 단단한 석질을, 色은 짙은 색감을 말한다. 색에 있어 최고로 치는 것은 짙은 흑색이다. 이를 두고 오석(烏石)이라 칭한다. 색감에 있어 오석이 최고인 것이다. 까마귀는 깃이며 부리며 온통 검은색 일색이다. 검지 않은 데가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烏’(오: 까마귀)는 몸이 온통 검어 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鳥’(조: 새)의 한 부분의 한 획을 생략한 글자라고 한다. 나도 까마귀를 싫어한다. 까마귀들이 먹이를 찾느라고 전시관 주위의 쓰레기통을 온통 뒤져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통에 녀석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녀석들을 쫓느라 돌멩이를 집어 던지고 해코지를 하고 나면, 다음 날 새벽에 반드시 보복을 당한다는 것이다. 쓰레기통마다 분탕질을 해 놓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형수반의 모래를 휘저어 놓는가 하면, 분재를 엎어버리기도 하고, 수석 위에 마구 배설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후엔 까마귀를 쫓을 때는 되도록이면 조심과 예의(?)를 갖추며 눈치를 보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듯 까마귀는 영물일 뿐만 아니라, 불길의 대명사로 경원시하고 있지만, 인간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간과할 수 없는 습성도 지니고 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 들 속까지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를 지은이 이직(李稷, 1362 ~1431)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시조가 지어진 배경을 생각해서 겉과 속이 다름을 비판하는 쪽으로 고려에 충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평가를 뒤로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겉과 속이 다름을 숱하게 보아 왔지 않았는가.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의 원전이라 일컬어지는 명나라 말기의 박물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 ~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보면,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까마귀가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反哺)라 하는데, 이는 극진한 효도를 의미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가 되었다. 인간은 까마귀를 미워하지만 까마귀만도 못한 인간이 많기도 하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시인/게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자살 ⟺ 살자〉는 갯바위에 움츠리고 있는 갈매기가 행여 모진 생각을 할까 봐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갈매기를 의인화하여 3수 연작으로 읊은 강민진 시인의 작품이다.
자살 ⟺ 살자, 詩題부터 만만치 않은 작품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 본다.

 “마을 해안 길을 산책하면서 갯바위에 목을 꾹 눌러 움츠리며 처량하게 홀로 서 있는 갈매기를 보았습니다.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뭔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요즘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쉽게 죽이거나,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매스컴의 보도 내용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남을 해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분명 선진국 대열에 속하는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OECD (선진국가)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이에 학자들은 다양한 이유를 열거하였지만 진작 고민해야 할 부분은 바로 나 자신 자아(自我)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지킬 수 있는 내공의 힘, 마음의 면역력을 기르는 것에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살’ 단어를 ‘살자’로 바꿔서 생각하는 데는 0.5초도 안 걸립니다. 좋은 생각이 좋은 곳으로 이끈다는 말이 있듯이 불평, 불만을 늘 품고 살면 행복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생각, 7전8기의 오기로 살아간다면 어떤 고난도 무던하게 견디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정말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적어 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사상이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일체유심조이다. 나는 매일 수백 점의 석부작에 물을 준다. 높이가 8m에 이르는 것도 백여 점이나 된다. 모터에 연결된 호스 끝에 달린 분사기로 물을 주는데 얼추 두 시간이나 걸린다. 올려다보고 물을 주자니 옷이 흠뻑 젖는 것은 다반사이고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내가 직접 제작한 작품들이고 보니 이 물주기는 즐거움이다. 물을 흠뻑 머금은 석부된 식물들과의 교감, 그 맛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물주기가 노역이라면 수십 년 동안 그 일을 못 했으리라.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행·불행을 결정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물 한 그릇의 행복」은 김소운 선생의 수필집이다. 저자가 직접 서명해주신 이 수필집을 자주 꺼내 든다. 이 수필집의 서문 말미는 이렇다. 「물 한 그릇의 행복」 -많은 것, 눈부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마는, 그 작은 행복이나마 내게 있어서 이런 책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아쉽고 긴한 것은 언제나 작은 불씨―, 나 자신에 있어서나, 내 사랑하는 조국에 대해서나, 바라고 원하는 것은 목마를 때 마실 수 있는 물 한 그릇의 행복-그것입니다./ 백구야 고개 들어 저 높은 하늘 보렴 / 움추려 있지 말고 당당히 고개 들어 하늘을 보려무나. / 백구야 고개 들어 저 넓은 바다 보렴 / 두둥실 파도 타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던가. / 정말로 힘들게 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며 3수 전편에 교육자로서의 인간애가 배어 있다. 생명의 소중함,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으리오.―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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