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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황설수설27] ' 흉상과 이념 '황양득:육사48기졸/전 서울대학군단교관및훈육관/에이펙아카데미 & 어학 원장

육사 교정 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또는 철거 논란이 10여 일이 지나고 있다. 육사나 역사학자들의 논쟁이 아니라 좌우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이 가세하여 여야 진영의 정치적 공격과 이념 논박까지 더해져 논란의 중심부가 지속 확장되어 다소 잊을 만하면 급작스레 내리는 소나기 같은 양상이다. 

육사 강의실(충무관) 앞에 4인의 독립군과 광복군 경력의 지청천, 이범석, 김좌진, 홍범도 장군들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문재인 정권하에서 2018년 3월 1일 설치되었다. 설치 당시에도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대통령의 의중을 살핀 육사 교수부장(준장)이 주도하였다고 한다.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씩 드나드는 강의실 앞 흉상에 거수경례하는 생도들의 모습이 일부 육사 선배들에게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 사태의 결말은 안타깝게도 든든한 후원회나 기념사업회 같은 단체와 자손이 없는, 더군다나 공산당 경력이라는 치명타가 있는, 군대 시쳇말로 “시범케이스”로 홍범도 장군의 불명예 완패로 종결될 것이다.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현 광복회장은 육사 16기로 한때는 포스트 노태우로 일찍이 민주정의당 창당에도 관여한 비하나회 육사 출신 정치인이다. 육사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일으키는 YS에 의해 정치적 야망이 꺾여 결국 1995년에 민주당에 입당하여 최근까지 민주당 인사로 분류되었다. 

민주당의 5선 경력의 이종걸 의원이 사촌 동생이다. 이종찬 현 광복회장은 80년대 민정당 시절 국회의원을 하면서 할아버지 이회영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상해임시정부 법통론을 입법 통과시켰다.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은 원로 연예인으로 김두한의 딸로 더 유명하다. 그녀의 아들 송일국도 한때는 국민 탤런트라는 인기를 등에 업고 재선 국회의원인 모친의 후광으로 국회의원 출마설이 선거철이면 나돌기도 했다. 지청천 장군은 임시정부 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으로 독립운동가이자 1950년 민주국민당 소속의 성동구 갑 지역구의 국회의원이었다. 이범석 장군은 항일 독립운동과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였고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반공주의자로 이승만 대통령 시절 초대 국무총리였고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 태생으로 머슴으로 자라난 총을 잘 쏘는 일개 포수, 엽사 출신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젊은 시절 고용주나 군 상관을 살해하는 잔인성도 보였다. 그러나 그 성정은 결국 항일 투쟁의 적개심이 되어 대대장급의 항일 의병대를 지휘하기도 했었다. 홍범도 장군은 논란이 되는 공산당 계열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지역과 묘소가 있는 크즐오르다에서는 고려인의 정신적 지주로서 추앙받고 있다. 과거 김일성이 유해를 가져가려고 했으나 당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지역민들의 거부로 무산되었다가 2021년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되었다. 어렵게 유해 송환을 결정해 준 카자흐스탄의 50만 고려인들에게는 참으로 면목이 없는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다.

왜 육사는 5인의 흉상을 이전 하려고 하는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육사의 뿌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지금의 4년제 정규 육사는 전쟁통에 1951년 10월 진해에서 재개교를 하고 52년 1월에 육사 1기생을 받았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정호용, 이기백, 권익현, 김성진, 이동희 같은 인물들이다. 그럼 서종철, 박정희, 김재규, 정승화, 박태준, 강창성, 김종필, 김형욱, 안두희(중위), 윤필용, 정병주 등은 정규 육사 출신이 아니다. 

이들은 만주군, 일본군, 광복군, 독립군에 좌우익 인사들의 자칭 타칭 사설 군사단체 출신으로 육사 1-10기라고 불리는 기수들이다. 해방 후 도떼기시장처럼 혼란의 시기에 1945년 12월 미군정은 통역관과 군간부요원을 선발하기 위해 군사영어학교를 개교하였다. 대한민국의 창군(創軍)이었다. 이 당시의 선발 면접관은 원용덕, 이응준이며 선발된 요원으로 군번 1번의 이형근, 채병덕, 정일권 등은 대위로 선발되었고 백선엽과 김백일은 중위로 임관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출신들로 군 간부 선발의 난맥상이 지속되던 차에 1946년 5월 1일 태릉에서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개교하여 1기생을 45일 과정으로 수료시켜 군에 배치했다. 그 이후 1950년 5월까지 길게는 1년 과정의 장교를 단기간에 배출했다. 육사 1-10기는 교육 기간도 45일에서 길게는 1년으로 다양하였다. 

1949년 7월에 입교하여 1950년 7월 10일 임관 예정의 338명의 기수와 1950년 6월 1일 입교한 333명은 4년제 정규 사관교육을 목표로 선발되었으나 현재는 생도 1, 2기라고 부른다. 불운하게도 이 두 기수는 625전쟁 직후 급조된 생도 전투부대로 전선에 투입이 되어 초급 장교의 씨를 말리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1951년에 선발된 정규 육사 생도들은 진해와 부산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고 1954년에 지금의 태릉으로 옮겨서 이듬해에 육사 1기로 임관하게 되었다. 훗날 박 대통령의 명으로 정규 육사 1기 졸업생은 졸지에 육사 11기가 되어 의아한 기수 명칭의 생도 1, 2기가 생겨나는 등 족보가 꼬이게 되었다. 

채병덕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전선에 투입되었던 생도들은 1996년에 육사 개교 50주년에 생도 2기로 공식 명명되고 늦게나마 명예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625 전쟁 당시 초급 간부의 몰살을 본 이승만 대통령과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의 각별한 애정과 노력으로 한국 육사는 미 웨스트포인트의 교육과정을 도입하게 되었다. 육사에 벤플리트 장군의 동상은 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필자의 생도 시절에는 육사 박물관에 박 대통령의 캐딜락 승용차도 전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64미터의 육사 교훈탑의 보조 다리가 5개이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을 상징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육사의 상징적 경례 구호를 “통일”에서 “충성”으로 바꾸었다. 

지난 정권과 현 정권에서는 흉상의 설치와 이전의 문제로 서로 대립 갈등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3개의 필수 과목이 선택 과목으로 변경되었다. - “625전쟁사”, “북한의 이해”, “군사전략”. 휴전 상태의 우리 군에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가 너무 일천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적 갈등과 분단의 대결 이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군 통수권자의 심기를 잘 살피는 눈치도 군에서 출세하는 한 방편이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의 흉상과 필자의 선친 흉상이 자리를 못 잡는 것이 동병상련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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