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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서정윤] '창고, 공사 중'서정윤);하청출생/아호휘연(徽蓮)/계룡수필문학회원/수필.시인등단/제3회월요문학상/제14회최치원문학상수상

잔디야 깔려도 본성이 끈질긴 탓에 다시 일어서겠지만, 가냘픈 제비꽃이 떨어져 나간 것이 못내 서운하다. 그가 또 일을 벌였다. 크고 작은 공구들이 마당에 흩어져 있다.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목재들과 사다리도 잔디 위에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귀퉁이가 뜯긴 포대 속 시멘트 가루들은 바람에 흙먼지가 되어 나풀거린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가락에 흥이 겨운지 내 속을 알 리 없는 정원수가 덩달아 잎을 흔들고 있다. 석양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내 얼굴을 벌겋게 물들여 놓는다. 

분명 공사는 끝냈다고 했는데. 누가 보면 집이라도 거창하게 다시 짓는 줄 알겠다. 창고 조금 손보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런 난장판을 벌여놓는지. 남편은 늘 이렇다. 벌이는 건 잘하는데 수습이 안 된다. 반나절 만에 끝낼 일을 이삼일 걸리기도 하고 종내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마무리를 지을 때가 많다. 작은 일이건 큰 공사이건 따라다니면서 하는 뒷정리는 항상 내 몫이다. 귀찮아서 내버려 두면 평생 그대로 방치해 놓을 스타일이다. 구석구석 물건들을 던져두고 정작 필요할 땐 찾느라 또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다. 정돈이 안 되면 잠을 못 자는 성격이라 번번이 잔소리하게 된다. 톱처럼 딱 잘라 정 없이 건넨 말에 뾰족하게 날을 세운 송곳 같은 대답이 돌아와서 폐부를 찌른다. 이런 감정 소모가 싫어서 잡다한 고장 수리는 비싼 비용을 치르더라도 차라리 기술자에게 맡기는 편이다.

살고 있던 아파트가 내어놓자마자 금방 나갔다. 산을 담으로 끼고 지은 전원주택으로 이사 왔다.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에 목적을 두었다는 게 더 맞겠다. 집 내부는 거의 완성되었지만 외부에 딸린 창고 겸 다용도실에 타일이 아직 깔리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으로 지내도 별 불편함이 없기에 살아가면서 천천히 손보기로 했는데, 칠 년째다. 보통은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새 물건을 들이지만 쓰던 물건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전자제품들은 새것으로 바꾼 지 얼마 안 된 이유도 있지만, 세탁기는 좀 나이가 들었다. 다용도실 타일공사를 끝낼 때까지만 사용할 생각으로 옮겨와서 여태까지 잘 썼는데 근래 들어 삐걱거린다. 딸아이가 어버이날 다니러 와서 건조기가 딸린 세탁기를 들여 주겠다고 하기에 미뤄왔던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딸의 마음을 시멘트 바닥에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남편의 연장들은 주차장 옆에 딸린 창고로 이사를 시키고 내 손이 자주 가는 주방 집기들만 모아두는 공간으로 개조해서 쓰기로 했다. 붙박이처럼 여기저기 붙어 앉은 늘어난 주방 물건들을 정리해 놓고, 게을러서 미뤄두었던 주부 놀이도 즐겨보는 재미도 가져보고 싶었다. 유행은 지났지만, 너무 예뻐서 버리기 아까웠던 그릇들과 시집올 때 같이 온 크고 넓은 스테인리스 6종 대야도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다. 그동안 연장들에 밀려갈 곳이 없어서 이래저래 발길에 체이며 먹던 눈칫밥을 안 먹어도 되겠다.

인부를 불러서 타일과 붙박이장을 붙이는 작업은 별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가스가 지나가는 연통을 걷어서 뒤쪽으로 다시 내고 칸을 쳐서 공간 하나를 더 만든다고 남편이 일을 벌여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 공간에 자기의 값나가는 연장들을 재워두고자 고집했다. 연통을 옮기면 구멍도 막아야 한다. 밤에 비라도 내리면 뻥 뚫린 구멍으로 비가 들이칠 것인데 그대로다. 인부들이 깨끗하게 잘 마무리한 바닥에 밟아 들인 흙과 함께 잔재물들이 컴컴한 공간에 나뒹굴고 있다. 순서가 바뀐 공사판에 온몸에 힘이 빠진다. 지나간 어떤 일들과 어떤 말들은 어둠 속에서 드러날 때가 있다. 반복되는 그 행동 앞에 장승처럼 서서 움직일 수가 없다. 

돌아보면 혼자서 창고를 짓고 채운 것 같다. 결혼하면서 허름한 월세방 한 칸을 얻어 살았다. 그때는 울타리가 있는 집 하나 마련하는 게 꿈이었다. 자신은 가난할지언정 타인에게 한없이 착한 남편은 부모와 형제를 도와주며 사는 게 낙이었다. 가정에 소홀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 것이 없었다. 아무리 문을 세게 걸어 잠가도 새어 나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남는 것이 없으니 내 손바닥에 운명처럼 그어놓은 재물창고는 늘 텅 비어서 휑했다. 들이치는 비바람에 젖어 끝이 보이지 않는 날엔 나는 떨어져 나간 제비꽃처럼 축축하고 딱딱한 시멘트 창고바닥 같은 방에 드러눕곤 했다. 바닥의 냉기는 장판을 뚫고 올라와 등이 시렸다. 빈 창고라도 지켜야 했기에 잔디처럼 다시 일어서는 일에 온몸의 관절에 풀 멍을 달고 살았다.

아직도 폰에선 뽕짝뽕짝 신이 난다.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노래의 1절이 끝나고 간주 중이다. 남편도 나도 인생의 2절을 준비하는 세월 앞에 섰다. 이어 발라드가 흘러나온다. 잔잔하게 흐르는 노래에 시작과 끝의 의미에 여운을 두고 몇 번씩 듣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녹여내는 가사가 예사롭지 않다.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한숨 돌린다. 자동 재생이 되어서인지 이번에는 재즈가 흘러나온다.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세상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는데, 늘 귀에 익숙한 곡만 가까이했다. 재즈, 즉흥성 불협화음 무형식이 재즈의 특성이라지. 나는 늘 고정된 형태만 고집해 왔던 게 아닐까. 그의 음과 나의 음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지 않은가. 불협화음도 음악인 것을. 박자를 빠져나간 이탈음들을 창고로 불러들여야겠다. 이젠 서로의 노래를 섞어 부르며 천천히 함께 걸어가야 할 때이지 않은가.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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