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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거제찬가] '기성관 단청(岐城館 丹靑)'이승철:거제향토사연구가/시인/수필가/소설가/사진작가/ 전 거제시 문화재담당공무원

                       기성관 단청(岐城館 丹靑)

기성관은 거제면 서상리에 있다. 이 건물은 거제현청이 고현에 있을 때, 1489년에 거제현을 거제부(巨濟府)로 승격하여 문무를 통활 하면서 기성관이 창건되었다. 임진란으로 거제현이 불타고, 기성관을 비롯하여 일부 남았던 건물을 거제현령 이동구(李東耈)가 1663년 고현에서 거제로 옮겨와서 그때부터 거제면 지역이 거제현(巨濟縣)의 치소(治所)가 되었다.
  기성관은 거제현(巨濟縣)의 부속 건물인, 객사(客舍)다. 기성관의 유래는 983년에 둔덕 거림리에 기성현이 설치되고부터 거제도를 기성 고을이라 불렀다. 그때부터 거제를 기성이라 하였다. 거제 기성관 객사는 집 중앙에 전패(殿牌)를 모시고, 그 지방의 수령이 부임하면 부임 식을 이곳에서 하였고, 초하루 보름날에 전패(殿牌)에 절을 하면서 임금님께 충성을 드리는 예를 올렸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머물던 곳이다.
  이 건물은 1911년부터 거제초등학교 교실로 개축하여 사용했다. 1969년 수해로 동쪽지붕이 무너져 사용치 못하고, 집을 헐어 버리려고 하던 것을, 필자가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면서 조선시대 거제현의 객사로 사용하던 중요한 건물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1971년 2월 16일 지방유형문화재로 긴급등록 하여, 그해 9월에 기성관 해체 공사를 시작하여 1976년에 복원 하였다.

태풍으로부서진 기성관 모습/사진 이승철씨 제공

누각식(樓閣式) 건물은 많은 사람들의 모임과, 군사용 등 다양하게 사용해 왔다. 경남에서, 통영의 세병관,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거제 기성관 등 4대 누각이 현존하고 있다. 거제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 조사 발굴에 그동안 많은 일을 해 오면서 기성관 복원에 대해서는 보람도 있었고,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문화재 복원은 원래의 모양대로 복원을 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지고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기성관 복원 감독은 문화재 관리국과 경남도, 그리고 거제군에 각 한명이 있었다. 거제군은 내가 감독으로 임명을 받았다. 그런데, 중앙과 도의 감독 말은 잘 듣는데 군의 감독인 내 말은 무시하면서 외면을 하였다. 

  기성관의 건물양식은 소박해도 단청은 특이하였다. 남아식 불화단청(南亞式佛畵丹靑)이었다. 유교문화의 건물에서 불교식 단청으로 해안지방 건물에 대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수궁(水宮)을 상징하여 용(龍)과 물고기를 주재로 하여 신선도와 화조(花鳥)를 배경으로 한 영롱한 색채는 오랜 세월에도 변색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대들보에 그려진 용은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연꽃 속에 구름과 안개를 날리며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모습이다. 한쪽 면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선경을 이루고, 산호 속에 노니는 물고기들의 한가로운 수궁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기성관 단청은 그림의 특색과 물감들이 특이하다. 색이 변하지 않고 생동감 넘친다. 어디를 가도 이런 단청은 보기 어렵다. 기성관에 서만 볼 수 있는 특징으로 옛 문화를 잘 표현 해 놓았다. 이런 장면을 놓치기 싫어서 장면마다 사진을 찍어, 복원 자료로 제출 하였다. 복원공사 때 그 자료가 아닌 일반적인 단청을 하고 있어서, 옛 모습대로 복원 해 줄 것을 건의 하면서 당시의 사진을 제출 하였는데도, 무시해 버리고, 문화재 관리국과 경남도의 감독들과 뜻을 같이 하여 공사를 마무리 하고, 문화재관리국에서 준공검사를 끝냈다.
  
준공이 끝난 기성관 서쪽 뒤편의 기둥이 15cm 짧고, 단청이 원래 형태가 아니라며, 이 부분을 다시 보수 해 줄 것을 요구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결재를 받으려고 하였으나, 직속상관이 “문화재 전문위원인 중앙 감독이 준공검사를 하였는데, 왜 트집이냐며”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잘못된 자료를 제출 하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일 년 후 직속상관이 경남도청으로 발령이 나고, 경남도에서 새로 부임하였다. 그분이 부임하여 업무 파악 차 기성관에 갔을 때, 잘못된 하자부분을 말씀 드렸더니 공감을 가지면서 ‘당장 하자 보수 요청’ 공문을 발송하라고 해서, 잘못된 부분의 사진을 첨부하여 하자보수공사를 요구 하였다. 

 기성관 공사는 하도급 공사로 하였다. 하자가 생겼다고 하자, 하도급자는 자취를 감추고, 본사가 나서서 하자보수를 하게 되었다. 서쪽 지붕 일부를 해체하여 짧은 기둥을 교체하고, 단청을 옛 모습대로 할여고 하니 집을 다 뜯어내고 목재를 다른 것으로 갈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분만이라도 옛 모습대로 하기로 하였으나, 단청의 그림과 색채는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기성관 단청을 볼 때 마다 옛 그림이 생각난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사람의 지혜가 발달 하였다고 하나, 옛 사람들의 지혜와 예술성은 따라 갈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수해로 한쪽 지붕이 무너져, 학생들의 등하교 길에 위험이 따르고 보기 흉하여 없애버리자는 여론이 많았으나, 옛 문화와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어렵게 복원을 하였으나, 단청이 당시의 모습이 아니어서 아쉽긴 해도 기성관을 보존하게 되어 이곳을 지날 때 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원한 보람을 느낀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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