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88」
      진 경 산 수 화

    

       이  덕  재

    산허리 감고 도는
    개구쟁이 구름 몇 점

    천둥 친 새벽이 낳은
    신비로운 아침 향기

    코끝에 휘감기는 맛
    그려낼 수 있다면.

◎고수(高手)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이란 책이 있다.조선 전기 문인이며 학자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해학적인 일화를 수록하여 편찬한 설화집인데 일반적으로 ‘골계전’이라고 한다. ‘골계’는 익살을 부리는 가운데 어떤 교훈을 주는 일‘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다음은 태평한화골계전에 나옴직한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여우와 너구리와 두꺼비가 한데 어울려 여행을 떠났다. 요새 말로 무전여행이었다. 셋이 어느 마을 동구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어스름했다. 하루 종일 먹지를 않고 길만 걸어 세 동물은 지칠대로 지치고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났다. 그럴 때 약삭빠르기로는 여우를 따를 수 없었다. 어느새 마을로 들어가 시루떡 한 그릇을 훔쳐 왔다. 세 놈이 제각기 생각했다. 저까짓 떡 한 그릇 셋이서 먹어 봤자 간에 기별이 갈 것 같지 않았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판에 여우가 한 꾀를 생각해 냈다. 
 “얘들아, 우리 내기를 해서 이기는 놈이 몰아서 먹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중의는 담박에 모아졌다.
 “그래 무슨 내긴데?” 너구리가 물었다.
 “우리 누가 제일 술이 잘 취하는 가의 내길 하자.”
 “좋다 넌 그래 어떻게 빨리 취하니?” 너구리가 여우더러 물었다.
 “난 말이지 물에다 술 한 방울을 떨어진 것을 한 방울만 마셔도 천지 분간을 못하도록 취해버려. 너구리 너는?”
 “넌 그래도 술이 센 셈이로구나. 난 말이다, 밀밭 옆으로만 가도 곤드레 만드레야”
 여우와 너구리 간에는 분명 승부가 나 있었다. 두 놈은 두꺼비를 돌아보았다. 두꺼비는 그 툭 솟은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좌우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야, 두껍아! 너 왜 그러니?” 여우와 너구리가 물었다.
 “얘들아 말도 마라 너희들 술 이야기에 그만 난 취해 버렸어” 그리곤 시루떡에 손이 가자  “내기 한번 다시 하자!” 여우가 또 제의했다.
 “좋다 이번엔 뭐냐?” 너구리가 맞장구를 친다.
 “이번에 누가 제일 오래 살았는지 내기를 하자. 난 말이다 몇백 년 몇천 년을 살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살았다! 너구리 너는?” 여우가 이번엔 이겼다는 듯이 의기양양했다.
 “난 말이지…” 너구리 차례였다. 
 “난 천지개벽 때부터 살았다” 숫제 천지개벽을 끄집어내는 바람에 여우는 풀이 꺾이고 말았다. 
 몇백 년 몇천 년을 따져 보았댔자 어차피 천지개벽 이후일 테니 말이다. 여우란 놈이 힐끔 두꺼비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에는 약고가 죽었으리라 생각했으나 웬걸 싱글벙글 웃고 있다. 이번에도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두껍아, 너 얼마나 오래 살았니?” 너구리가 조급하게 묻는다.
 ’너구리 너 천지개벽 때부터 살았댔지. 그때 두꺼비가 있었니 없었니?“
 너구리가 망설였다.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우겨댈 것만 같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있었다. 왜?”
 “그게 바로 내 손자놈이었다. 그놈은 벌써 죽었는데 나는 팔자가 기박해서 이렇게 살아남은 거란다.” 여우가 마지막 꾀를 짜냈다. “야, 두껍아 매사 삼세번이라지 않니? 한 번만 더 내기를 하자!”  “좋다.” 두꺼비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응수를 한다.
 “이번엔 누가 제일 높은 데까지 올라갔는지 내기를 하자.” 이번에도 제안자인 여우가 먼저 시작했다. “너굴아, 너 저 꼭대기 보이지. 왜 저 별이 깜박하는데 말이야!”
 때마침 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었다.
 “응 저 별말이지!” 너구리가 대꾸를 했다.
 “넌 그 별까지 갔다지만 난 그 위까지 갔었어. 하늘 끝까지 말이야. 아무튼 내 머리끝이 하늘 천장에 닿았으니까. 여우야 너무 서운해 하지마.”
 여우는 또 한 번 머리를 긁적거렸다. 왜 진작 하늘 천장 생각을 하지 않고 별 있는 데까지만 했을까. 여우는 원망스러운 듯이 창공의 별을 노려보았다. 
 “그래 두꺼비 넌?” 너구리가 재촉을 한다. “넌 어디까지 올라갔었니?”
 “너구리 너 하늘 천장에 머리가 닿았다고 했지?”
 “그랬어”
 “하늘 천장이 말랑말랑하던, 그러잖으면 딱딱하던?”
 너구리는 얼핏 생각한다는 것이 잔치집 마당에 치는 차일을 연상했다.
 “말랑말랑하더라, 왜?”
 “임마 그게 바로 내 불알이었어.” 이렇게 대답한 두꺼비는 시치미를 뚝 떼고 돌아앉아 떡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먹어버렸다.

 세상에는 위에서 본 두꺼비 같은 고수들이 많다. 고수는 자기 분야에 몰두하여 즐거움과 의미를 스스로 찾고 나아가서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一心이 常靑靑하면
      處處에 蓮花開니라.

  마음가짐을 항상 맑고 깨끗하게 하면 가는 곳마다 연꽃이 필 것이다. 이는 구인사 상월 스님 법어의 끝부분이다. 더구나 맑은 눈을 지니면 곳곳에 숨어 있는 무림의 고수 같은 인생의 高手를 볼 수 있을지니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수령 백 년의 노송처럼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게 살 일이다 잘난체 까불다 한 방에 훅 가는 걸 보지 않았던가.

      아무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
         拙詩, ‘高手’, 전문

 사람은 누구나 高手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다. 암, 그렇고말고.(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진경산수화>는 농사꾼 시인이 이른 새벽 마을 뒷산에 올라 바라본 정경을 <진경산수화>라 題하여 단수로 읊은 이덕재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자의 애장석(愛藏石)중 ‘금강진경(金剛眞景)’이라 명명된 대품 수석이 있다. ‘금강진경’이란 석명은 겸제(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금강전도(金剛全圖)’에서 연유했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진경산수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84.8. 6 국보 217호로 지정되었다.

금강전도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는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고려시대

금강진경

와 조선 초·중기에 걸쳐 그려진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의 전통을 토대로 발전된 것이다.

 정선은 금강산과 영남 지방 및 서울 근교 일대를 다니면서 산천의 특색을 새로운 畫格으로 이룩하여 전통 실경산수화의 면모를 일신하고 진경산수화의 정형을 수립하였다.
<진경산수화>란 詩題가 사뭇 이채롭다.
 이른 새벽 산허리를 감고 도는 구름은 하이얀 조각구름이었지 싶다. 바람을 따라 노니는 조각구름이 개구쟁이의 장난기 같았기에 /산허리 감고 도는 개구쟁이 구름 몇 점/ 이란 표현이 참신하여 초장에 눈길이 머문다.

 아침 향기를 접해본 사람은 안다. 산자락에서의 향기, /신비로운 아침 향기/다. 그것도 천둥 친 새벽이 낳은 것이라 절로 심호흡을 하게 되리니, 그 청량감을 어디다 비하리오. 반은 山神이 된 시인, 그가 마냥 부럽다.

 신비로운 아침 향기는 어느 사이에 코끝에 휘감기고 있다. 그 맛을 그려낼 수 있다면야. 문득 김홍도가 57세 때인 1801년 (순조1)에 8폭 병풍에 그린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가 떠오른다. 삼공불환이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중국의 높은 벼슬인 三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로, 송나라 시인 대복고(戴復古(1167-1248))의 시 ‘조대(釣臺)’에 나오는 구절인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 · 삼공의 벼슬인들 이강산과 바꾸랴)에서 따온 것으로 <삼공불환도>는 현재 보물제 2,000호로 지정되어 있다. 모르긴 해도 시인은 벌써 고향 산천을 ‘진경산수화’로 마음속에 그렸으리라 여겨진다. 三公不換을 읊조리면서 말이다. -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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