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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191」김영자 '고추밭'▲김영자:인천출생/LS(주)미르상사대표/2021년현대시조등단/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감사

 「금요거제시조選-191」

       고 추 밭

 

 

 


 


      김 영 자

 땡볕에 약발 오른
 새빨간 텃밭 고추

 새색시 입술처럼
 붉어서 꽃 같구나

 아깝다 혼자 보기가
 조롱조롱 고추들.

◎약 속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은 자신과의 약속도 있고 타인과의 약속도 있다. 그 약속 중에는 지켜지는 약속도 있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도 있다. 대체로 지켜지지 않았기에 약속을 잘 지킨 사례는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계포일낙(季布一諾)은 ‘계포가 한 번 한 약속’이라는 뜻으로 초(楚)나라의 계포(季布)는 한 번 승낙한 일이면 꼭 실행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음에서 비롯하여, 틀림없이 승낙(承諾)함을 뜻한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초나라 계포는 어떤 일에든지 「좋다」하고 한 번 내뱉은 이상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걸고 싸울 때, 계포가 초나라의 대장(大將)이 되어 유방을 여러 차례 괴롭혔는데, 유방의 한(漢)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쫓겨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을 잘 아는 자가 그를 밀고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유방에게 천거하여 사면 시킨 뒤 벼슬까지 얻게 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신의가 두터운 것을 가리키거나,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생은 어떤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를 약속했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었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안은 채 죽었다.

《사기(史記)》<소진열전(蘇秦列傳)>에 소진이 연나라 소왕(昭王)을 설득하면서 미생을 ‘신의 있는 사람의 본보기’로 들고 있다. 《장자(莊子)》<도척(盜跖)>에서는 ‘미생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신의에 얽매인 데서 오는 비극이라 할 수 있다(尾生溺死, 信之患也).’ 여기서 미생 자신은 ‘융통성 없는 우직한 사람’을 말한다.

이 외에도 《전국책(戰國策)》《회남자(淮南子)》에서는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 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미생’의 이야기는 《장자》《전국책》《사기》《회남자》 등 여러 전적에서 보이는데 모두 미생이 다리 밑에서 여자를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만 인용하고 있을 뿐 미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지 않아 미생의 신상이나 이 고사의 정확한 출전은 알 수 없다.

가요 ‘황성옛터’는 작곡가 전수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수린은 어느 날 그의 고향인 개성에 들렸다.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만든 가락이 황성옛터다.애수적인 멜로디로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 준 ‘황성옛터’의 가사 1절은 다음과 같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신파극단 취성좌(聚星座)의 서울 단성사(團成社) 공연 때 여배우 이애리수(李愛利秀)가 막간 무대에 등장하여 이 노래를 부르자 객석에서는 재창을 외치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노래는 삽시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1932년 콜롬비아 레코드의 황성옛터는 음반이 5만 장이나 팔리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애리수는 여배우에서 가수로 환영받는 스타가 되어 전수린의 신곡을 계속 취입하게 되었다. 한참 인기 절정이었을 때 그녀는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의 사망설까지 돌았고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애리수가 종적을 감춘 데 대하여 사람들은 이난영, 전옥 등 새로운 창법과 감각을 지닌 후배 가수들에게 가요 팬들의 시선이 쏠리게 되고 창가 풍의 단조로운 음색에 익숙한 이애리수의 노래는 인기반열에서 퇴조하게 되었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라짐에는 “약속”이라는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22세 때 연희전문학교 재학생이던 배동필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시댁에서는 그녀가 가수라는 이유로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했다. 음독자살 소동까지 벌렸지만 시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시아버지와 굳은 약속을 하고서야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 약속은 ‘가수’라는 사실을 숨기고 향후 가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룬 뒤 대중 곁에서 사라졌지만, 그녀의 노래는 조선총독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애리수는 결혼한 지 2년 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가수 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그녀에게 제안했지만 이애리수는 남편의 제안을 거절했다. 비록 시아버지가 돌아 가셨지만 약속은 약속이라며 평생 2남 7녀의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98세 때인 2008년에야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이듬해 99세로 타계했다. 그녀의 자녀들마저도 어머니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얼추 4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주말마다 채란길에 나섰다. 정읍군 입암면 연월리 야산 중턱에서 땀에 저린 속옷을 벗어 짜면서 주말마다의 채란 행을 10년을 채우기로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이미 2년을 채웠으니 남은 햇수는 8년 이었다. 10년 세월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휴일은 600일 정도였다. 일요일에다 공휴일, 거기다 연 월차 휴가까지 합치면 1년에 60일, 10년이면 600일이었다.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약속을 지키면서 그 과정들을 ‘월간 난과 생활’ 지에 독자적으로 「한국란 채집기」 코너를 마련하고 1986년부터 3년간 연재하였는가 하면 <난을 캐며 삶을 뒤척이며>라 題한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명품에 앗긴 세월
땅만 보고 누빈 산천

그 발자국 끈을 달면
몇 천리는 덮을 게다

이제사 민춘란 몇 촉
네가 낸 줄 알겠다.

拙詩, ‘새 촉을 바라보며’, 2/2

나는 그 10년 세월을 내 인생의 전성기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늙고 병들어 거의 못쓰게 된 육신이고 보니 ‘나도 한때는 잘 나갔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어떤 감투를 썼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정신으로 살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황성옛터’는 신중년 세대의 애창곡 중 하나란다. 황성옛터가 불려지 는 한 이애리수의 ‘약속’은 빛을 더하리라 믿는다.지키지 못한 약속 중 하나가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한 아내와의 약속이었다. 이 글을 아내가 볼까 두렵기만 하다.

《감상》

능곡 이성보 시인/계간 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고추밭>은 가을 햇살에 텃밭의 고추가 빨갛게 익어 그 정열이 혼자 보기 아까워 이를 단수로 읊은 김영자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 본다.

“지난 8월, 9월 뜨거운 볕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가 얼마나 탐스럽고 빨갛던지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렀던 날이 있었지요. 바람이 서늘한 늦가을인데도 첫서리가 아직 안내린 이유인지 거제면 서정리 밭길을 걷다 보니 더러는 끝물 고추가 달려 있네요. 한더위가 물러나고 지금 달린 고추는 떨어지는 단풍처럼 빛이 조금씩 바래있었지만요.” 시조의 기본 글자 수는 43음절 내외이지만, 종장 첫째 마디 세 글자와 둘째 마디 5~8 글자 수를 꼭 지켜야 하는 것 외에는 각 마디에 한두 글자가 가감될 수 있다. 시조는 원래 초장, 중장, 종장 3행으로 나타냈다.

요즘은 각 장을 두 행 이상으로 나누기도 한다. 행 구별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너무 딱딱하거나 균일한 형식에서 조금 벗어나서 시각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라 하겠다. 현대시조의 본령은 단수 시조다. 함축이 가능한 내용이면 단수로 창작하길 권한다. 특히 초입자의 경우는 단수로 시작하여 작품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때 연시로 창작이 바람직하다.

현대시조의 대가들은 단시조의 압축미를 통한 산만하지 않은 시조 창작을 권하고 있다. 45자 내외의 강한 울림이 있는 단시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촌철살인의 형식이다. 고추가 심겨진 텃밭을 지나다 보면 / 땡볕에 약발 오른 / 새빨간 고추를 만나게 된다. 그냥 빨갛게 된게 아니라 땡볕에 약발을 받아서란다. 약발이란 표현에 생동감이 인다. 어찌나 탐스럽던지 카메라 셔터가 몇 번이고 눌러진다. 붉기가 새색시 입술처럼 붉어서 꽃 같기만 하다. / 아깝다 혼자 보기가 조롱조롱 고추들 / 이다. 주렁주렁이 아닌 조롱조롱이다. 고추의 크기로 보아 조롱조롱이 제격이다. 그래서 그런대로 무난한 한 편의 단수 시조가 창작되었다. -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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