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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192」김용호 '공원의 사꾸라'

「금요거제시조選-192」
   공원의 사꾸라

 

 

 


 


      김 용 호

   아부지 내년 봄에
   사꾸라 꽃이 필 때
   휠체어 내가 밀고
   공원에 가십시다
   살랑가 나가
   그때꺼정 손사례를
   치신다.

   아부지 자주 가던
   벤치 그 자리가
   벚꽃이 활짝피모
   얼매나 좋탓꼬요
   이 안에 벚꽃 마이
   있다 핸드폰을
   흔든다.

시인프로필
김용호:일운출생/경상대대학원졸/한국문협,거제문협,거제수필,거제시조,거제시문학,청마기념사업회,거제향교회원/전국시조가사공모전일반부최우수상/현대시조등단(2020년)/시집「갯민숭 달팽이」/시조집「선운사 꽃무릇」/저서「풀어보고엮어보는거제방언사투리」,「재미나게풀어보는거제방언거제말」「계룡산 억새능선」, 「재밌는 거제도 사투리」/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편집장

 ◎드러내기와 감추기
‘팔불출(八不出)’이란 말이 있다.‘팔불출’의 원래 뜻은 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 만에 낳은 아이를 일컫는 팔삭동(八朔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온전하게 다 갖추지 못했다 해서 팔불용(八不用) 또는 팔불취(八不取)라고도 한다. 팔불출의 팔(八)은 8가지를 지칭하는 의미가 아니라 한자어에서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 팔(八)를 붙여 쓴 것이다. 팔불출은 문자 그대로 “내세워서는(出) 안되는 것(不) 여덟 가지(八)”를 의미한다. 즉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면 아래와 같은 여덟 가지를 남에게 내세워서는 안되는데 이를 생각 없이 버젓이 드러내는 사람을 ‘팔불출’이라 불렀다.
 ① 자기 자랑 ② 아내 자랑 ③ 자식 자랑 ④ 학벌 자랑 ⑤ 가문 자랑 ⑥ 재산 자랑 ⑦ 형제 자랑 ⑧ 친구 자랑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이런 류의 여덟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드러내면서 자랑하는 사람을 ‘좀 덜 떨어진’ 놈이라고 간주했기에 이를 숙어화하여 ‘팔불출’이라 수근거렸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우의깊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 팔불출 중 하나라도 가능한 한 내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뭐 자기 PR 시대에 자랑 좀 하면 어떠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면 뭔가 지각이 부족한 사람으로 손가락질받기 일쑤다. 더구나 황금만능인 오늘날엔 돈이 곧 인격이고 인품이다시피 되고 보니 앉기만 하면 재산 자랑이나 돈 자랑질하는 꼴사나운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은 또 어떤가. 자기가 그린 그림에 자기가 찬(讚)을 쓰는 자화자찬은 불출과 어금버금이다. 찬이란 그림에 써넣는 시나 글인데 대체로 칭찬 일색이다. 찬은 본래 스승, 선배, 동문 등 다른 사람이 써주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로 해서 능력과 재능을 자부하는 것은 자신감과 동기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한 자신감은 자칫 다른 이들이 오만을 느낄 수 있으므로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오늘날에 와서 자화자찬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가 칭찬을 하거나 치켜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과하면 따르는 지탄, 조심하고 볼 일이다.
 
기회에 도광양회(韜光養晦)에 대하여 살펴본다. 도광양회는 ‘자신의 재능을 철저히 숨기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도(韜)는 ‘감추다’, 광(光)은 ‘빛’, 양(養)은 ‘기르다’, 회(晦)는 ‘어둠’이라는 뜻이다. 이 성어의 출저는 14세기 중엽 명나라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연의」는 주로 유비(劉備)를 중심으로 2세기에서 3세기까지 중국의 중원에서의 주도권을 다툰 위•촉•오 세 나라의 이야기이다. 이 고사성어는 천하를 통일할 꿈을 품고 있는 유비가 여포(呂布)에 쫓겨 조조(曹操)의 식객으로 머물던 무렵이 배경이다.  유비는 의심 많은 조조의 경계심 때문에 후원에서 채소를 가꾸고 물을 주며 소일하는 한편, 은밀하게 황제의 명을 받은 조조의 살해계획에 가담하면서 뜻을 키웠다. 유비를 경계하라는 계속되는 부하의 진언에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식사에 초대했다. “천하에 영웅이 있다면 그대와 나뿐이다”라고 유비의 진심을 떠 보았다. 그때 천둥이 쳤다. 유비는 짐짓 천둥소리에 놀란 듯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것을 본 조조는 유비가 생각보다 그릇이 작은 인물이라 생각했다. 유비는 조조의 수하가 되어 한 무리의 군졸을 받아 출전 명령을 받고 그길로 도망쳐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조조의 신하 정욱이 이 사실을 알리자 화들짝 놀란 조조가 추격대를 보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유비는 고의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결국 유비는 제갈량이라는 인재와 민심을 얻은 후 군사를 일으켜 조조에 대적할 만한 큰 인물이 되었고 촉한을 건국하여 황제가 되었다. 양수(楊脩, 175-219)는 조조의 신하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양수는 조조의 최측근 책사가 되어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조조가 하나를 물으면 두 개, 세 개를 답했다. 문무를 가리지 않고 조조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다른 신하들이 알고도 모른 척할 때 양수는 자신의 총명함을 주저없이 드러냈다. 결국 조조는 계륵(鷄肋) 사건으로 양수의 목을 쳤다. 양수는 세상만사를 다 알았지만 수구여병(守口如甁), 제 입을 병뚜껑 닫듯이 꼭 막으라는 선현의 옛말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며 죽음을 맞았다. 

   세월의 잔 등에 업혀
   허구헌 날 자맥질을

   허물도 사르고 나면
   흙으로 돌아가는가

   버리고 얻는 비결을
   오늘에사 알 것 같다.   
     拙詩, ‘터득의 書’, 2/2.

 풍란은 마알간 뿌리를 온통 드러내고 산다.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다. 마치 인간들이 보란 듯이 말이다. 감추어서 살아남은 유비, 드러내어서 목숨을 잃은 양수, 팔불출이며 자화자찬, 잎을 떨어뜨려 나목이 된 멀구슬나무를 올려다본다. 오싹 한기를 느끼면서 말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시인/계간 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공원의 사꾸라>는 폐렴으로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상 곁에서의 아픈 마음을 2수연작으로 읊은 김용호 시인의 작품이다.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 연로하셔서 자꾸만 의기소침 하신다. 내년 봄까지 건강하시라고 용기의 말을 건냈더니 핸드폰을 잘다루시는 아버지 핸드폰 안에 좋은 벚꽃 많이 있다며 심드렁하게 받으셨다.”시인의 춘부장(春府丈)께선 올해 연세가 93세이시다. 34년간 교육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 퇴임을 하신 분이다. 아호가 ‘난정(籣亭)’인 시인의 춘부장은 영국의 문필가 필립 체스트 필드(Philip chesterfild, 1694-1773)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s To his Son)’를 떠올리게 하신다.

 나는 정년퇴직을 한 후에도 책 속에 파묻혀 살기를 원하고 있단다. 지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 읽는 재미에 빠질 수 있는 것은 너만 할 때 착실히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놀면서 지낸 시간이 전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논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이고 젊은이들이 누리는 흥취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젊었을 때 마음껏 놀지 못했다면 지금쯤 놀이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흥미를 갖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후회하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이것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나를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젊었을 때 아무 의미도 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흘려보낸 시간들이다.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아닌, 그저 어정쩡하게 보낸 시간들 말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 하지 않던가. 그래서 시인은 문인이 되었지 싶다./ 아버지 내년 봄에 사꾸라 꽃이 필 때 / 공원에 가십시다. 휠체어를 내가 밀면서 말입니다. 내가 그때꺼정 살란가 손사례를 치신다. 생에 대한 애착은 말해서 무엇하리오만 체념과 달관이 배인 손사례에 숙연함이 느껴진다./ 아부지 자주 가던 벤치 그 자리가 / 언제나 비어 있을 겁니다. 주위에 / 벚꽃이 활짝피모 얼매나 좋탓꼬요 / 하지만 핸드폰을 잘 다루시는 아버지는 / 이 안에 벚꽃 마이 있다 / 아이가 핸드폰을 흔든다. 詩題에 나오는 ‘사꾸라’며, 적절히 구사한 사투리가 오히려 구김없이 다가와 정감을 더한다. 하지만 어쩌랴,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기원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 것을.-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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