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 - 198」

*콩돌해안

                이 덕 재
 
   귀 기울여 듣는 소리
   심금을 울리던 밤

   더듬으며 알아가던
   콩돌의 해안에서

   사그락 낮은 소리가
   가슴에 와 앉았다.

   작은 것만 지천이라
   눈 맞추어 주저앉아

   처음으로 느껴보던
   무아의 낯선 세계

   눈감고 마음을 열면
   그 해변에 앉아 있다.

         *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남포리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아무에게도 도움이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을 이르는 말인데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이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에서 초 패왕 항우가 한 고조의 군에 패하여 해하에서 사면이 포위되었을 때, 한나라 군사 쪽에서 들려오는 초의 노래를 듣고 초나라 군사가 이미 항복한 줄 알고 놀라서 애첩 우미인과 함께 자결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초나라를 중심으로 한 남방의 노래를 초가(楚歌)라고 하는데, 감상적이고 애잔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구슬프기 짝이 없다.
 부모 처자를 고향에 남겨두고 오랫동안 전쟁과 향수에 시달려 온 항우의 병사들 중 구슬프고 애잔한 고향의 가락을 듣고 탈영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당시 금지곡이 있었다. 군인들에게 향수병을 불러일으켜 탈영을 조장한다는 것이 금지 이유였다. 이 금지곡은 ‘즐거운 우리 집’이었다. 
 1851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아에서 사망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그가 묻힌 곳에 군함을 보내어 유해를 미국으로 모셔 왔다. 그의 유해가 뉴욕에 도착하는 날 뉴욕시가 생긴 이래 최대의 인파가 부두에 몰려들었다.
 군악대 연주 소리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에 대통령, 국무위원 등 수많은 사람이 도열한 곳으로 그의 유해가 옮겨졌다. 놀라운 사실은 그 유해의 주인공이 위대한 정치가도, 위대한 군인도, 위대한 과학자도 아니었고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미국 전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작사했던 단 하나의 노래 때문이었다. 그 노래 가사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즐거운 우리 집’의 작사가 존 하워드 페인이었다.
 ‘즐거운 우리 집’은 영국의 헨리 비숍(Henry Bishop)이 작곡한 곡에 미국의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이 노랫말을 붙인 노래인데 우리말 가사는 이렇다. 
 
   1.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2.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면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하리
     저 맑은 바람아 가을이 어디뇨
     벌레 우는 곳에 아기별 눈 뜨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동양에서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해서 가정의 소중함을 진작 알았으나 서양, 특히 미국에서는 이를 소홀히 한 것 같다.
 가화만사성의 출처는 명심보감 <치가(治家)> 편이다.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 때때로 불이 나는 것을 방비하고 밤바다 도둑이 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 時時防火發 夜夜備賊來)>

   아닌 길을 길이라며
   외곬으로 내달았네

   부여잡은 소맷깃을
   본체만체 뿌리치어

   삼십 년 쌓은 공든 탑
   반나마는 기울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해
   절로 굽은 등줄기여

   석양에 붉어진 볼
   시부지기 웃는 그대
  
   남은 날 줍는 햇살일랑
   오지랖에 담아주리.
              拙詩, ‘보은-아내에게’, 전문

 지금까지 나는 돌과 난에 빠져 아내를 힘들게 했다. 약간 주기(酒氣)가 있던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더란다. “동부저수지 물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나는 늦게 사 깨달았다.
 아! 나는 언제 철이 들련고.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콩돌해안>은 작심하고 아들과 함께 찾아간 백령도 콩돌해안에서의 처음 느껴보던 무아의 낯선 세계를 2수 연작으로 읊은 이덕재 시인의 작품이다.
 백령도 남포리의 콩돌해안은 남포리의 오금포 남쪽 해안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의 길이는 800m, 폭은 300m이다.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되었다.
 콩돌해안의 둥근 자갈들은 규암이 부서져 생긴 것이다. 백령도 지질의 대부분은 규암이 차지한다. 부서진 규암은 해안 파도에 의해 닳기를 거듭한 것으로 콩과 같이 작은 모양으로 만들어졌기에 콩돌이라고 한다. 닳은 기간을 대략 1만 5천 년 정도 추정하고 있다. 
 콩돌은 색깔도 다양하여 흰색, 회색, 갈색, 적갈색, 청회색 등 형형색색을 이루어 해안 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 귀 기울여 듣는 소리 심금을 울리던 밤 /이었다. 그 밤은 아마도 초저녁은 아니고 꽤 깊은 밤이었지 싶다. 심금(心禁)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 울리는 마음의 감동을 거문고에 비유하여 이른 말인데, 다른 사람의 감동적인 행적을 보거나 듣거나 읽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울림을 일컫는 말이다.
 마음의 울림을 주는 소리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문득 떠오르는 말이 예리성(曳履聲)과 해군성(解裙聲)이다. 예리성은 신을 끄는 소리인데 / 설월이 만창한데 바람아 부지마라 // 예리성 아닌 줄을 만연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적이면 행여 긴가 하노라. / 하고 어떤 이는 읊었다. 해군성은 치마를 벗는 소리로 백사 이항복의 가인 해군성 (佳人 解裙聲 · 아름다운 여인이 치마 벗는 소리)에서 알려졌다. 시인은 / 사그락 낮은 소리가 가슴에 와 앉았다./ 고 한다. 콩돌을 쓰다듬는 잔잔한 파도, 사그락거리는 낮은 소리는 어느 사이에 시인의 가슴을 차지하고 앉았다.
 
 사방엔 지천으로 작은 것만 보였다. 그 작은 것은 콩돌이었다. 그것도 형형색색을 띤 작은 것이었으니 / 눈 맞추어 주저앉아 /야 했다. 그때 / 처음으로 느껴보던 무아의 낯선 세계 / 였으니 벅차오르는 감흥은 무아지경일 수밖에.
 / 눈감고 마음을 열면 그 해변에 앉아 있다/고 한다.
 자족하고 무욕이면 앉아 있기 마련이다. 모르긴 하나 앉은 채로 한참을 있었지 싶다. 눈을 감고 마음을 열고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이를 두고 청복이라 하리라.

 白翎島는 우리나라 북서쪽 옹진반도 서쪽에 있는 섬이다. 행정 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에 속하며 우리나라에서 15번째로 넓은 섬으로 면적은 51.12㎢이며 인구는 약 5천 명이다.
 옹진 백령도 두무진(頭武進)은 1997년 12월 30일 대한민국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백령도의 북서쪽에 있는 포구가 두무진인데 늘어선 바위들의 뾰족하게 생긴 모양이 장군 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오랜 시간 분경(盆景) 제작에 공을 들인 필자이기에 두무진의 풍광을 눈에 담아 두었기에 언젠가 꼭 가보려고 하던 참인데 시인의 <콩돌해안>을 감상하면서 그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癸卯年도 이제 끝자락이다. 청룡의 해라는 甲辰年엔 거제시조문학회 회원들의 창작활동이 더욱 왕성하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 능곡시조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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