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 - 199」

 교정의 느티나무-졸업생들에게-

        강 민 진

     계룡산 너른 자락
     햇살 찬 학교에서

     물 때를 기다리며
     대어의 꿈을 품고

     삼 년간 학우와 함께
     다져 놓은 추억들.

     시간을 쪼개가며
     밤잠을 설쳐가며

     튼실히 쌓은 탑에
     찬사를 보내나니

     새롭게 펼쳐질 무대
     주인공이 되려무나.

     고난을 인내하며
     버텨온 나날이여

     사람은 모였다가
     때 되어 흩어져도

     교정의 느티나무는
     그대들을 기다리리

  ◎ 자화상•1
청룡의 해라는 甲辰年을 맞았다. 코로나가 끝난 모양인지 신년 해맞이에 명소마다 인파가 붐볐다고 한다. 새해 첫날 이곳에도 꽤 많은 사람이 찾아주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노인들의 얼굴을 살핀다. 노인들의 얼굴은 노안(老顔)이다. 노안하면 흔히들 백발에 주름투성이의 얼굴, 야위고 수척한 얼굴이 연상될 것이다.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의 연민이나 동정을 자아내게 하는 얼굴이 아닌가 싶다. 거기다 저승꽃이라는 검버섯까지 가세하면 측은한 생각까지 들게 된다. 내가 노인들의 얼굴을 살피는 것은 그 얼굴에서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하는 일마다 벽에 부딪혀 노안에다 피곤까지 겹친 내 모습이다. 이쯤 해서 나의 자화상을 그려 보기로 했다.

 붓으로 그리는 초상화는 물론 아니다. 거울에 비추어 보는 자기 자신의 모습 말이다. 거울은 무심(無心)까지도 그대로 반영하기에 거짓말이 스며들 틈새가 전혀 없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적나라하다. 윤동주는 ‘자화상’이란 시를 남겼다.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미워 발길을 돌렸다가도 그 사나이가 그리워 다시 우물을 찾는 역설, 나도 혼미의 나를 찾기로 했다. 내가 나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그를 사랑하다 그만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나르시스(수선화)의 그리스 신화가 있다. 구리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죽은 자기 짝인 줄 알고 부리로 쪼다 죽었다는 신라시대 앵무새 전설도 있다. 자화상은 그리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고 했다. 해는 동쪽에서 뜰 때와 서쪽에 질 때의 모습이 다르다. 서로 다른 것이 바로 해의 자화상이다. 천의 얼굴, 만의 생각을 담고 있는 모습이 자화상이요 민낯이다.

 ‘자화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림들이 있다. 반 고흐와 윤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이다. 고흐는 심각한 조울증 환자로 알려졌다. 하루 만에 그림을 끝낼 정도로 성격이 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수많은 질병에 시달린 그는 알려진 것으로는 알코올 중독•매독•포르피린증•귓병•정신착란 등을 달고 다녔다고 하니 다한 말이다. 이런 사유로 인해 비극적으로 점철된 자화상을 4년 동안 40점이나 그린 모양이다. 그는 800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평생에 한점밖에 팔리지 않아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여자와의 사랑도 비극으로 끝났고 결국은 37세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흐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1889년에 그린 ‘귀를 자른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은 한때 그렇게나 좋아했던 고갱과의 싸움 끝에 자신의 귀를 자른 뒤 그린 그림으로 이 사건 뒤에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 권총으로 자살했다. 내가 제작한 ‘인상석’ 작품 중 ‘반 고흐’라 명명된 두 점이 있다. 두 인상석 다 나름 반 고흐를 닮았는데 그가 그린 자화상을 넣은 이름표를 달았더니 이를 보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를 자주 보게 된다. 닮기는 닮은 모양이다.

      희끗한 모발하며
      절로 굽은 등줄기가

      호연한 기운 앗은
      늙음의 징표 같아

      못 볼 것 본 듯도 하여
      외면하고 싶었다.

      어디에 쓸까하다
      영정을 떠 올렸다

      도리질 하다 말고
      실눈 뜨고 살펴보니

      잊었던 모진 세월에
      주름 하나 걸어 왔다.
     -拙詩, ‘사진을 보며’, 전문

 두어 군데 참여하는 모임의 내 직함이 고문이다. 팔십이 낼 모래인데 고문도 과하다 여기며 막걸리 한 잔을 마시려는데 막걸리 병에 ‘月梅’란 상표가 보였다. 들이킨 막걸리 맛이 상큼했다. ‘月梅’ 때문이었으리라.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교정의 느티나무>는 교육자이신 시인이 졸업 시즌을 앞두고 각고의 노력을 한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새롭게 펼쳐질 무대에 주인공이 되길 바라며 교정의 느티나무는 언제나 그대들을 기다린다는 간절함을 3수 연작으로 읊은 강민진 시인의 작품이다.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 본다.

  “다가오는 2월은 졸업 시즌입니다. 자신의 멋진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한 2023학년도 거제시 소재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정말 수고 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교정의 느티나무’라는 시조로 졸업생들의 보람찬 앞날을 기원해 봅니다.”

 시인은 거제제일고등학교 교장이다. 교육은 자기를 가르치는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 지식의 전수는 혼자서도 되고 기계로도 할 수 있지만 참다운 인간 교육은 사람과의 교감에서 마음의 울림이 없으면 아무리 빼어난 교육 방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존연후학문성(師尊然後學問成)이라 했다. 조선 태조 때 왕세자의 교육을 위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이란 기관을 두었다. 여기에서 세자를 가르치는 스승을 사부(師傅)라고 했다. 스승은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란 뜻으로 높여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래서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 않으면 곧 왕이 될 세자라도 학문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거제제일고등학교는 계룡산 자락 아래 자리하고 있다. / 계룡산 너른 자락 햇살 찬 학교에서/ 삼 년 동안 학우들과 함께 물 때를 기다리며 웅지의 뜻을 품고 오로지 면학에만 몰두하였으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리오.3년을 내리내리 / 시간을 쪼개가며 밤잠을 설쳐가며 / 일념으로 / 튼실히 쌓은 탑에 찬사를 보내나니 / 이제는/ 새롭게 펼쳐질 무대 주인공이 되려무나/ 하고 두손 모으는 스승을 본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의연히 서 있는 / 교정의 느티나무는 그대들을 기다리고 / 있을지니, 문득 의문이망(倚門而望)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자식이 돌아오는 것을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는 것을 두고 의문이망이라 하지 않던가. 어쩌면 교정의 느티나무는 교장이신 시인이지 싶기도 하다. 출근길에 현수막을 보았다. 거제제일고 학생 2명의 S대 합격을 축하하는 거제면 기관장협의회에서 내건 현수막이었다. 아! 왕대밭에 왕대 난다기, 진종일 흔연했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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