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 - 200」
        자귀꽃

      심옥배

  내 안에
  꽃이
  피네

  세상을 다 얻은
  듯이

  청초한 새벽하늘
  달과 별이 노니는데

  날마다
  설레이는 맘
  어찌해야 좋을까요.

  ◎ 자화상•2

십수 년 전 일이다.
 큰 애가 무슨 말끝에 “아버지는 대인 관계 지능지수가 두 자리인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처음 들어보는 ‘대인 관계 지능지수’인데 두 자리라 하는 것을 보아서는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았다. 뒷날 알아본 대인 관계 지능(Emotional intelligence Quotient)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조정하며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사회적 적응 능력과도 관계가 있기에 종종 정서 및 사회적 지능지수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주변에 마당발이라 불리는 사람이 더러 있다. 사전엔 마당발을 사람들과의 사귐이 많고 폭넓은 사람을 말하고 있다. 단지 많은 사람과 안면을 튼다고 하여 마당발이라는 별호를 얻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람을 사귀고 이해하는 남다른 지능과 능력이 없으면 얻기 어려운 마당발이란 별호이지 싶다.  모두(冒頭)의 ‘대인 관계 지능지수 두 자리’는 벽창호 같은 아버지에 대한 돌직구였는데 처음 들을 땐 괘씸한 마음이었으나 곱씹어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민낯을 보인 것 같아 지금도 대인 관계 지능이란 말은 낯설기만 하다. 점잖음, 인자함, 아늑함에 중후함과 넉넉함이 고여있는 노안(老顔)도 있다. 여생(餘生)에는 부드럽고 자상한 할아버지 얼굴을 갖고 싶으나 염려가 앞선다.

윤두서 자화상

부리부리한 눈매와 형형한 눈빛, 한 올 한 올 불타오르는 듯한 수염이며, 육중한 얼굴엔 목도 귀도 없는, 게다가 잘려 나간 탕건(宕巾)까지, 극도의 사실성과 대담한 파격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림, 국보 제240호 ‘윤두서 자화상’이다. 그리 크지 않은 이 그림(38×20.5㎝)은 조선시대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윤두서 자신의 내면을 표출한 것이자 세상을 향한 치열한 응시”라고 평가받고 있다. “엄정한 성격” “옹골찬 기개” 같은 상찬도 덧붙는다. 그 상찬은 결코 지나치지 아니하다. 윤두서의 친구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은 이 자화상을 두고 이런 글을 남겼다. “육척도 안되는 몸으로 사해를 초월하려는 뜻이 있다. 긴 수염 나부끼는 얼굴은 윤택하고 붉으니 바라보는 사람은 선인이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저 진실로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풍모는 무릇 돈독한 군자로서 부끄러움이 없구나.”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오우가를 남긴 윤선도의 증손자이다. 겸양과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공경하고 양보하는 뜻에서 호를 공제(恭齊)라 하였다고 한다. 윤 공제의 집안은 정치적으로 핍박을 당했다. 특히 셋째 형 윤종서는 이곳 거제로 유배를 당해 끝내 죽었고, 공제 자신도 큰형 윤창서와 함께 모함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는 출사를 포기하고 원망과 분노와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을 택했다. 그의 눈빛에서 우수와 고독과 비장함을 나는 보았다.

   너를 내라 하니 내가 그래 너란 말가
   네가 내라면 나는 그럼 어디 있나
   나 아닌 너를 데리고 나인 줄만 여겼다.  

   내가 참이라면 너는 분명 거짓 것이
   네가 참이라면 내가 도로 거짓 것이
   어느 게 참이요 거짓인지 분간하지 못하네.

   내가 없었더면 너는 본시 없으리만
   나는 없어져도 너는 혹시 남을련가
   저 뒷날 너를 나로만 속아 볼게 우습다.
            -이은상, ‘자화상’, 전문

 사실 따지고 보면 너는 누구이고? 나는 또 누구인가?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것이다./ 먼 뒷날 너를 나라고 속아 볼게 우습다/ 고 작자는 술회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완영 선생은 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노래한 시라고 했다. 지난달 초순에 관람객 중 한 사람인 시골 할머니가 굳이 나를 찾고선 손을 잡고 “작은 체구에 이런 일을 하다니…”하고선 눈시울을 적셨다. 할머니가 떠난 후 낙엽을 쓸다 자화상을 생각했다. 여생을 올곧게 살리라 다짐했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자귀꽃>은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하는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자귀나무꽃을 두고 그 심회를 단수로 읊은 심옥배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자귀나무와 꽃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자귀나무는 콩과 자귀나무속의 낙엽 활엽 소고목으로 중국, 인도, 네팔, 일본, 한국에 분포되어 있다. 잎은 어긋나고 짝수 2회 깃모양 겹잎이다. 소엽은 긴 타원형이다. 꽃은 6~7월에 개화한다. 꽃은 암수 한꽃이며 우산 모양 꽃차례로 달린다. 수술은 2~3m 정도이고 흰색 또는 분홍색이다. 열매는 9월 말~10월에 성숙한다. 열매 크기는 10~20cm에 평평한 갈색 꼬투리다. 종자는 꼬투리에 5~6개 정도 들어 있다. 나무 크기는 3~5cm 정도이며 줄기는 굽거나 사선으로 자라며 약간 드러눕는다.
 
자귀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잎이 늦게 돋아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자귀나무 잎이 돋아나면 늦서리가 내릴 우려가 없어졌다고 하여 서둘러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 또한 소가 자귀나무 잎을 너무 좋아하여 놓치지 않기에 소쌀밥나무라고도 불렀다. 자귀나무의 꽃이 붉게 보이는 것은 수술의 빛깔 때문이다. 꽃은 해 질 무렵에 활짝 핀다. 향기는 은은하고 향긋한 향이 밤이 되면 더 짙게 풍긴다. 자귀나무에는 유독 별칭이 많다. 별칭엔 모두 비슷한 내용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살펴보면 이러하다. 밤중에 수면 운동으로 잎이 접히는 모습이 부부 금실을 상징한다하여 음양화합목, 합환수(合歡樹), 합혼수(合棔樹),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라 하고, 이 나무를 심으면 부부의 정이 깊어진다는 뜻에서 유정수(有情樹), 애정목(愛情木)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열매가 부딪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때문에 여설수(女舌樹)라고도 한다. 또 꽃이 부챗살을 피운 것 같다고 하여 부채나무라고도 한다.

 이렇듯 자귀나무를 살펴보았기에 <자귀꽃>을 감상하여 본다. / 내 안에 꽃이 피네 세상을 다 얻은 듯이/, 동의보감에서 자귀나무 잎으로 차를 달여 마시면 근심을 없애서 만사를 즐겁게 한다고 했다. 시인은 모르긴 하나 자귀나무 차를 마셨지 싶다. 그러다 / 청초한 새벽하늘 달과 별이 노니는데 / 마음이 흔쾌하진 나 또한 노닐고 싶었으리라. / 날마다 설레이는 맘 어찌하면 좋을까요. / 자귀나무의 꽃말은 ‘가슴의 두근거림’ ‘환희’이다. 이 종장을 두고 애정목(愛情木)의 의미를 헤아려 본다.

 어느 사이에 ‘금요거제시조選’이 200회를 맞았다. 쏜살같다는 세월을 실감한다. 거제타임라인 박춘광대표님께 사의를 표하며 그간 시조 작품 창작에 골몰한 거제시조문학회 회원들께도 격려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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