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01」 - 거제타임라인

「금요거제시조選 - 201」
산소대롱

김용호

산소 수치 떨어지고 호흡이 너무 가빠
간호사 뛰어와서 산소대롱을 물렸다
그제사 잠잠해져서 코 고시는 아버지.

졸다가 빠진 대롱 고쳐서 다시 물고
잠결에 취하여서 앞뒤를 혼돈하고
제꾸리 찾은 대롱을 다시 물고 잠 드신다.

나 어찌 간난 적에 저러하지 않았으리
엄마의 젖꼭지를 헤집어 물었으리
나 또한 산소대롱을 저리 물고 가겠거니.

시인프로필
김용호:일운출생/경상대대학원졸/한국문협,거제문협,거제수필,거제시조,거제시문학,청마기념사업회,거제향교회원/전국시조가사공모전일반부최우수상/현대시조등단(2020년)/시집「갯민숭 달팽이」/시조집「선운사 꽃무릇」/저서「풀어보고엮어보는거제방언사투리」,「재미나게풀어보는거제방언거제말」「계룡산 억새능선」, 「재밌는 거제도 사투리」/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편집장

◎ 자화상•3
옛 선비들은 책과 멀리 떨어져서 살 수 없었기에 글을 읽거나 글씨를 쓰거나 간단한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서안(書案)을 벗했다. 서안은 낮은 책상이라 보면 되겠다. 서안에 괴석을 두고 그 운치를 음미하는 선비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그런 모습을 보여 준 이는 석초(石艸) 한기택(韓基澤) 박사였다. 한기택 박사는 대단한 수석(壽石) 애호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수석관인 석초원(石艸園)을 서울 종로

한기택박사

구 세검정에서 개원하였다. 1988년 7월 서울 을지로 입구의 서울투자금융 10층 하늘공원 전시실에서 한 박사를 처음 뵈었다. 그날은 필자의 ‘제1회 이성보 난석전’이 문을 열었었는데 손님맞이에 바쁜 와중에 석우가 한 박사를 소개했다. 존함은 익히 들었던 터라 놀람 속에 인사를 드렸다. 놀람이란 명성과는 달리 허름한 옷차림에 왜소하고 야위었으며 하얀 머리칼은 약간 부스스했다.

한기택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비인후과 의사였으며 세검정에 있는 3천 평에 이르는 수석 공원인 석초원의 주인이셨고 서울의대 교수로 정년 퇴임하신 분이셨다. 처음 만났을 때는 연세가 86세였다. 그 뒤로 5년 동안 매년 개최되었던 필자의 난석전에 찾아 주시곤 풍란 석부작에 깊은 관심을 표하셨다. 당시 빼어난 수석에 풍란을 부착하는 것을 두고 수석인들의 시각이 곱지 않았으나 그들과는 달리 젊은이가 새로운 분야를 창출하였다며 인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44세의 나이 차이임에도 ‘이 선생’이라며 깍듯하고 따사롭게 대해 주셨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한 박사와 같은 마음이 포근해지고 따뜻해지는 노안을 대하지 못했다. 그분은 나의 멘토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자화상>

그런데 이 같은 온화함과는 대조적인 노안도 있다. 그것은 권위가 넘치는 엄숙함을 지닌, 이를테면 위용(威容)의 노안이다. 그 본보기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자화상>이다. 르네상스기의 천재가 그려낸 자신의 노안이다.
이 그림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모나리자>와는 퍽 대조적이다. 하늘과 땅의 요정이자, 산과 강과 들판의 요정이기도 한 젊은 여성의 초상화는 우아한 아름다움, 감각적인 동시에 초감각적이기도 한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의 <자화상>은 그렇지 않다.

사물이 갖는 물리적인 속성뿐만 아니라 인체의 생리에도 밝았던, 이 다재다능한 천재는 머리카락과 턱수염의 꼬불꼬불한 선문(線紋), 날카로운 눈썹, 이마와 얼굴에 팬 주름, 눈과 코, 그리고 입의 윤곽 중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정교하게, 또 치밀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이 <자화상>은 1513년경에 그려졌으니, 그가 생을 마감하기(1519년) 불과 6년 전이다. 이 노년 얼굴에, 그 노안에 슬픔이나 허무감, 또는 상실감 같은 것만이 어려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한스럽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이 느껴진다. 이런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절로 숙연해진다. 백발의 성긴 머리카락과 턱수염, 얼굴 자체의 주름과 쭈그러진 피부, 그리고 기울어져 가는 목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얼굴 표정만이 지닐 수 있는 성찰(省察)과 동경(憧憬)이 거기 서려 있다. 그건 노안의 또 다른 미학이다.

외양을 중시함을
진작에 알았건만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았네

   아뿔싸, 속을 차리니
   섬이 되어 있었다.
    -拙詩, ‘자만’, 전문

누구나 자신의 노안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처럼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지 싶다. 그리고 이런 소망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노년의 생활을 꿈꾸리라 여긴다. 아픈 어깨를 두드리며 거울을 들여다본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산소대롱>은 병실에서 산소 수치가 떨어지고 호흡이 곤란해지신 아버지께서 산소 대롱에 의해 숨을 쉬는 안타까운 정경을 3수 연작으로 읊은 김용호 시인의 작품이다. 송강 정철은 훈민가에서 /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기 다 하여라 // 지나간 후면 애닲다 어이하리 //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하고 읊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시인의 아버지, 언제까지 함께 해 주실지 알 수 없는 유한한 시간이기에 늘 긴장하면서 대기 상태다. 그래서 논어에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되도록 멀리 가지 말아야 하며, 부득이 멀리 떠날 때에는 가는 곳을 분명히 알려 드려야 한다’고 일렀다. 주자십회(朱子十悔)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범하기 쉬운 후회 가운데 중국송대(宋代)의 유학자 주자(朱子, 1130~1200)가 제시한 열가지 후회(十悔)다. 그중 제일 첫 번째가 불효부모사후회(不孝父母死後悔: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 풍수지탄(風樹之歎)과 같은 말이다.

병실의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 / 산소 수치 떨어지고 호흡이 너무 가빠 / 지자 간호사가 뛰어와선 급한 김에 우선 산소 대롱을 입에 물렸다. / 그제사 잠잠해져서 코 고시한 아버지./다. 그래서 논어에 되도록 멀리 가지 말도록 공자는 일렀는가 보다. 깜빡깜빡 조는 아버지께서는 / 졸다가 빠진 대롱 고쳐서 다시 물곤/ 한다. 그리곤 잠결에 취하여 대롱의 앞뒤를 혼돈하곤 / 제꾸리 찾은 대롱을 다시 물고 잠드신다. / ‘제꾸리’는 ‘안간 힘을 다한 끝에 겨우’라 설명되지 싶은 거제 사투리다.

잠드신 아버지를 보다 말고 / 나 어찌 간난 적에 저리하지 않았으리 / 라고 가슴을 저리는 시인을 본다. 기회에 부모님의 열가지 은혜를 말하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살펴본다.
첫째는 잉태로, 아이를 배어서 지키고 호위 해준 은혜
둘째는 해산으로, 해산에 임하여 고통을 받으신 은혜
셋째는 순산으로,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잊어버리는 은혜
넷째는 골라먹임으로, 맛있는 것만 골라 먹이는 은혜
다섯째는 골라 눕힘으로, 진자리 마른 자리 골라 눕히는 은혜
여섯째는 젖 먹여 길러 줌으로, 품어서 젖 먹여 길러 주신 은혜
일곱째는 씻어 주심으로, 똥오줌 가려 깨끗이 씻어 주신 은혜
여덟째는 염려해 주심으로, 자식을 항상 염려해 주신 은혜
아홉째는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음으로, 자식을 위해서는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열 번째는 끝까지 사랑으로, 죽을 때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다.
제 잘난 맛으로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다. 주자십회니, 부모은중경을 두고 꼰대들의 일이라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 나 또한 산소 대롱을 저리 물고 가겠거니 / 의 셋째수 종장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조금 늦고, 빠르고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의 일이 아니리오. 다만당 쾌유를 빌진저.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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