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03」
       
         구병산

                  이규주

  아홉폭 병풍처럼 봉우리 둘러친 산
  속리산 경치 품어 충북의 알프스라
  단풍과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가을산.

  뭇사람 다 다녀간 겨울에 오르나니
  상고대 가지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백설이 뒤덮은 능선 천하제일 절경일세.

  겨울에도 따신 바람 솔솔부는 삼대풍혈
  그 옛날 스님 살린 쌀 나던 쌀난바위
  살아서 백 년 죽어 천 년을 함께하는 부부송.

  보이는 풍경마다 감탄사 만발하고
  내딛는 걸음마다 전설이 담겨있는
  구병산 일월산행은 감개무량 원없네.

◎소한도(消寒圖)
 세한삼우(歲寒三友)는 송죽매(松竹梅)를 지칭하는 것으로, 특히 문인화가들이 즐겨 다룬 소재이다. 세한삼우가 추운 겨울에도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식물로 이루어진 것은 시련 후에도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한삼우는 곤경에 처했을 때 변치 않고 찾아주는 친구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세한삼우 중 매화는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남에게 기쁨을 주는 군자 정신의 표상으로 여겼다.

매화의 매력은 무어라고 해도 서리가 내리는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청초한 꽃을 피우고 은근한 향기를 풍기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애초부터 문인•묵객에게 사랑을 받았던 원인이기도 했다. 또 고색을 띤 간피(幹皮)도 아취가 있으며, 문인목(文人木)의 모습은 풍정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분목(盆木)의 관상 시기는 말할 것도 없이 꽃이 만개한 때이나 한두 송이가 피어날 때도 그 정경을 놓칠 수 없다.

옛 선비들이 겨울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눈 속에서 피는 매화, 맑고 깨끗한 향기를 품는 설중매를 특히 사랑했다. 청렴하고 세속을 추월한 절개 있는 백매(白梅)는 뭇꽃 가운데 으뜸으로 쳐 화형(花兄), 화괴(花魁)라 불리어 왔다. 또 호문목(好文木), 춘고초(春告草) 등의 이름은 문인•묵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호문목의 내력은 진(晋)나라에 문학이 한창 성해지니 매화 역시 아름답게 꽃피고, 후에 문학이 쇠퇴하니 그 그림자조차 없게 되므로 호문목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소동파는 매화를 얼음같이 맑은 혼과 구슬같이 깨끗한 골격을 가졌다고 극찬을 보내었고, 육사(陸史)는 시 “광야(曠野)”에서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고 노래했으며, 목은(牧隱)은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멀고 먼 구름 밖에서 실의에 차 매화를 그렸다. 

매화를 사랑하되 꽃을 탐내는 일 없이 오히려 맑고 은밀한 화심(花心), 그 품향(稟香)을 붓끝으로 기리어 삶의 자세를 가다듬던 선인들의 생활이 매화 향기로 남아 시공을 넘어 풋풋한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도 부동(浮動)하고 있는 것이다.

옛 선비들은 독특한 일력(日曆)을 만들었다. 그 일력은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유입된 구구소한도는 특히 문인들이 좋아했는데 보통 매화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이다.

매화는 겨울에 끝머리에 모든 꽃에 앞서서 꽃을 피워 봄소식을 알려주기에 겨울을 떠나보낸다는 소한도(消寒圖)의 취지에도 맞을 뿐만 아니라 절개, 지조 등을 상징하기에 자기 성찰의 표상으로 삼았다.

선비들은 이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매일 한 송이씩 붉은 색깔로 칠을 해서 백매화를 홍매화로 만들어 갔다. 

동지 다음날부터 칠을 시작해서 마지막 한 잎을 칠하는 날 즉 81일째는 경칩과 춘분의 중간 즉 3월 10일경이 된다. 이때쯤 소한도를 떼 내고 창문을 열면 매화가 피면서 봄을 맞이하게 된다. 달빛에 매화 그림자가 창문에 비치는 것을 매창(梅窓)이라 하여 풍류가객들의 심금을 흔들고 시적 은유로 자주 등장한다. 매창 이야기가 나왔으니, 기회에 부안의 명기(名妓)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 시조 한 수를 감상해 보기로 한다.

   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그렇다.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는 이가 어찌 이매창뿐이리오. 수년 전만 해도 아는 이들이 나를 만날 겸 이곳의 춘당매(春堂梅)를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이제는 발길이 뚝 끊겼다.

춘풍접인(春風接人) 화기만면(和氣滿面),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 국민에게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을 강조했는데 내 얼굴이 그렇지 못했는가 싶어 자괴에 젖었다. 이래저래 힘든 세상이다.

설 아래 추위가 매섭지만, 매화를 데불고 봄은 오고 있다.
 빙그레 웃는 얼굴로 봄맞을 준비를 하리라 다짐해 본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구병산>은 충북 보은군 마로면과 경북 상주시 화남면에 걸쳐 있는 산인데 이 구병산을 산행하면서 보아온 풍경과 감흥을 4수 연작으로 읊은 이규주 시인의 작품이다.

 구병산(九屛山)은 876m의 높이로 크고 작은 아홉 개의 암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암릉과 암봉을 이어 걷는 재미가 상당하여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보은 지방에서 ‘삼산’으로 불리는 산들이 있다. 즉 속리산의 천황봉은 지아비산, 구병산은 지어미산, 금적산은 아들산이라하여 그렇게 불렀다. 구병산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속리산의 명성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때로는 다행일수도 있는 모양이다. 산 전체가 깨끗하고 조용하여 잘 보존되어 있으니 말이다.

가까운 곳에 영남알프스가 있듯이 보은군청에서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 구간을 1997년 5월 ‘충북알프스’로 업무표장 등록하여 관광상품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다.

전국의 산을 빠짐없이 등반하겠다는 야심을 지닌 시인(필자의 생각임), 이번에는 구병산을 올랐던 모양이다. / 아홉 폭 병풍처럼 봉우리 둘러친 산 / 이며 거기다 속리산의 경치까지 품어 충북 알프스까지 된 산일지니 그 아름다움이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단풍과 어우러진 기암절벽이니 과히 절경이리라.

때마침 겨울이었다. 상고대 가지마다 설화가 만발 하였으니 백설의 능선은 천하제일경이란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리.

삼대풍혈엔 겨울에도 따신 바람이, 그것도 솔솔부니 거기가 곧 仙景이리라. / 그 옛날 스님 살린 쌀 나던 쌀난바위 / 는 전설을 안고 있고 부부송은 천년을 함께 한다지. 구병산과 속리산 사이에 숨어 있는 서원 계곡과 진입로 주변에 속리의 정이품송을 닮은 큰 소나무가 볼만 하단다. 전설에 의하면 정이품송의 부인으로 ‘암소나무’라 불리는 충북 지정 보호수가 있다니 한 번 가볼 일이다. 

시인의<구병산> 시로 해서 이를 감상하다 감상자 또한 감개무량함을 느꼈으니 이 또한 청복이리라. 나도 한때를 산 꽤나 누비며 잘나갔는데.... 호호통제라!
                                    -능곡 시조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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