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길을 걷는 사람들은 문동 소재 거농문화원에서 거제도와 유배지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하였다. 섬길을 걸으면서 거제도는 800여 년 동안 유배지인데 유배인들은 어떤 길로 유배를 왔을지 조선시대 유배인들이 걸었던 길에 흥미와 관심이 생겼다. 김범경 선생님의 유배길과 섬엔섬길, 김현길 선생님의 유배문학과 정과정곡, 박인우 선생님의 유배시 감상의 순서로 이어졌다. 

거제로의 유배는 고려시대부터 1912년까지 이어져 왔다. 최초 유배기록은 왕위 계승권 다툼에서 밀려 승통 왕탱(문종의 6남), 왕수 부여후, 부여공 수(문종의 12번째 아들)가 1112년 거제로 유배된 것이 고려사절요에 남아있다고 한다. 조선 태조 때는 고려 왕씨들이 유배를 오기도 했다. 거제 유배자는 이름이 알려진 자가 500여 명이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자를 포함하면 1,5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유배자 중에 고려 의종이 있고 왕자나 대군이 7명이며, 무인으로서 각 수군 진영에 충군으로 유배 보낸 자는 약 33명이다. 

김범경 선생님은 섬엔섬길에 유배길을 포함하여 재구성하기를 주장했다. 김현길 선생님은 고려 의종과 정서의 거제 유배의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임그리워 우니다니’라는 소설을 쓰셨다. 고려 의종은 신하 정서를 곧 다시 부르리라는 말과 함께 동래와 거제 오양리로 유배를 보냈다. 정서는 나막신을 신고 매일 산을 오르면서 의종이 다시 개경으로 불러 주기를 기다리며 지냈다고 한다. 원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정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뇌로 산을 오르고 올랐을까! 군신 간의 원망보다는 그리움과 결백함을 접동새 소리에 비유하여 감회를 풀어보는 정서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답답한 심정을 거제의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며 위로받고자 매일 산에 올랐을 것이다. 1170년 8월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9월 자신을 유배 보낸 의종마저 무신들에게 밀려 거제 둔덕 우두봉 중간의 개축한 둔덕기성으로 유폐된다. 10월 대사면령이 내려져 정서가 복권되기까지 의종과 정서는 2k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한 달간 지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포착하여 소설을 완성하신 김현길 선생님의 연구와 노력에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정서는 분명 의종을 찾아갔을 것이고 두 사람은 가슴에 품고 있던 감정을 쏟아내어 회포를 풀었을 것이다. 정서(鄭敍)는 고려 문인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과정(瓜亭)이다. 정과정곡은 최초의 고려가요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암송했던 기억이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 유배지가 결정되면 조정에서는 죄인을 호송할 책임자를 배정했다. 책임자는 최종적으로 유배지에 도착한 날짜를 확인하고 오양역에서 거제현령에게 인계한다. 거제현령은 문서를 인계받은 후에 배소를 결정했다. 거제 내 집단 배소지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오양역과 둔덕기성, 중기에는 고현만 일대 1644년에서 1912년까지는 거제면 외간리와 동상리였다고 한다. 오양역에서 해안길을 따라 사등 장평 고현으로 배소 되었다. 오양역에서 답답치 내간 거제로 또는 둔덕 상서 옥산재를 넘어 거제로 들어갔다. 거제면 간덕천 변에 옥란 숲이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관리가 부임할 때 이 숲에 이르러 멀리 보이는 거제현을 향하여 인사를 올리고 거제에 입성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통영에서 배를 타고 거제 배소지에 도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유배인을 초가집에 따로 수용했다. 정치적 이유로 유배를 와서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유배인 특히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온 정치인들은 많은 편의를 제공받았고 자유를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평민이거나 죄목이 나쁜 사람들은 거의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죽거나 도망치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거제도에는 주위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외인의 출입을 금하는 위리안치 유배인이 다수를 차지했다. 형식상 사립문 주위에 몇 그루의 탱자나무를 심어 위리안치된 유배객임을 알리는 정도였고 유배자들은 대체로 자유롭게 거제 주민들과 어울려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름이 알려진 500여 유배자들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긴 기간 동안 유배를 왔다. 어떤이는 말을 타고 하인과 함께 왔을 것이고 어떤이는 허기진 배에 추위를 극복하며 왔을 것이다. 그들은 정권을 장악한 자들과 생각이 달라서 그 주장을 굽히지 못하여 또는 누명을 쓰고 머나먼 거제로 격리당했다. 그것도 바다 건너 섬까지 왔으니 그들의 애환과 황망함은 상상이 된다. 그래서 유배문학의 내용은 결백을 호소하고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담고 있기도 하고, 극한의 상황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하여 표현하였고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새봄은 완연하나 쓸쓸하고 외로운 귀양살이를 어촌의 아름다운 낙조를 보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신비로운 절벽과 푸른 하늘과 코발트 바다는 오늘도 물론 아름답지만, 그들이 귀양살이하던 그 봄날에도 더 푸르게 절경을 자랑하였을 것이다. 섬이라는 새로운 자연환경에 감탄하며 창작활동에 몰입하여 유배문학이 탄생하였다. 작품 속에는 봄날의 아름다운 자연과 여름날의 푸른 바다와 단풍 든 고운 거제의 산이 담겨 있다. 아울러 당시 거제사람들의 생활 모습,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배인들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서한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학문을 익히고, 제자를 가르쳤다. 대표적인 유배문학자와 작품은 아래의 표와 같다. 고영화 선생님의 거제도 유배고전 문학 총서를 참고하여 표를 작성하였으며 감사한 마음을 함께 밝혀둔다. 

유배문인들은 주로 장평 바닷가 문동폭포 소요동(상문동) 신청담(神淸潭문동폭포 웅덩이) 고현바닷가 대섬(竹島) 소도(小島) 계룡산 구천동까지 함께 다니며 거제 비경을 즐기고 시를 지었다.

1506년 이행은 거제도 유배 중에 주위 곳곳의 이름을 지었다. 문동을 소요동(逍遙洞)이라 불렀다. 자신의 집을 보진당(保眞堂)이라 하였고 고자산치는 고절령(高節嶺)이라 개칭했으며 배소 주위 골짜기를 소요동(逍遙洞)이라고 불렀다. 문동저수지의 시내를 백운계(白雲溪) 정자는 세한정(歲寒亭) 앞에 샘물이 솟는 것을 보고 성심천(醒心泉)이라 불렀다. 이 샘물에다 작은 못을 만들어 군자지(君子池)라 하였으며 그 아래 정자를 짓고 차군정(此君亭)이라 불렀다. 

그리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 보니 푸른 벼랑이 물러서고 물결이 쏟아져서 굉음을 울리며 부서져 내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듯하여 운문폭(雲門瀑 문동폭포)이라 하였다. 폭포수 아래 웅덩이를 신청담(神淸潭) 주위에 평평한 바위들이 있어 지족정(止足亭)이라 이름 붙였다. 문동폭포는 옥녀봉에서 흐르는 자연의 맑은 물이 20m 높이의 암벽에 쏟아지는 거제 유일의 폭포로서 그 물소리가 골짜기 안을 울린다. 물은 계곡을 따라 흘러 문동저수지에 이르는데 1950년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라 경비부대와 수용소에 물 공급을 위해 포로들이 건설한 저수지이다. 1956년 수용소 철거 후 수력발전을 하여 군청 소재지에 전기를 공급하였으나 육지에서 송전 된 후에는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행과 최숙생은 문동폭포와 계곡에서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다. 

운문폭(雲門瀑) / 최숙생
운문폭 긴 칼이 공중에 기댄 듯/맑은 날에 우레와 비 쏟아지네.
운문 위에 처음 와서/날아내리는 냇물을 분명 보았노라.

운문폭 / 이행
우뚝한 저 석문이여 /그 누가 열어젖혔는가?/콸콸 흐르는 폭포는/ 그 누가 끌어 놓았는가?
거령(물의 신)이 쪼개고 오정(다섯 장정)이 일했나니/구름 기운 부딪치고 용이 깃들도다.
태곳적부터 귀신이 아끼고 지킨 곳/자욱한 놀과 안개도 끝내 감추지 못해
내가 재앙을 만나 세상에 버림받았지만/기이한 경치 실컷 보니 하늘이 아낀 건가
이내 이름을 바위에 새기고자 하노니/백 년이라 뒤에 나의 자취를 찾으리라

성심천(醒心泉 마음을 맑게 하는 샘물)/ 최숙생

무엇으로 내 마음 깨우칠까/ 달빛처럼 깨끗한 샘이 옥같이 희다.
돌에 앉으니 바람이 옷깃을 들썩이고/ 흐르는 물을 잔에 따르니 달이 한 움큼 채운다.

그 당시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이곳 소요동은 시원하였다고 한다. 소요유(逍遙遊)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소(逍)는 소풍간다는 뜻이고 요(遙)는 멀리 간다는 뜻이며 유(遊)는 노닌다는 뜻이다. 소요유(逍遙遊)는 세 글자 모두 책받침 변이 있다.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쉬엄쉬엄 갈 착(辵)이라고 한다. 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세 번을 쉬어야 한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중간에 또 쉬어야 한다. 무위(無爲)로 돌아가야 한다. 상식적인 의식을 바꾼다면 사물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죽음과 삶도 초월할 수 있다. 본래 삶과 죽음은 없었던 것이며 형체와 기(氣)도 없던 것이다. 소요유(逍遙遊)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정신을 말한다.

붕(鵬)이 날아올랐다 함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인식의 초월을 상징한다. 장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향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그려내었다. 이성적 사유에서 초월함으로 새로운 세계와 접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하유지향에서 노닐기 위해서는 정신세계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 장자는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다름 아닌 너무나 견고해 보이는 자아의식이라고 했다. 소요유를 위한 인간의 자세는 무기(無己)이다. 무기란 자기중심의 주관적인 판단 의식과 부귀공명에 속박되는 자아를 버리고, 자기의 정신이 물질세계의 인위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무위자연(無爲自然)적인 삶을 말한다. 자기 부인이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으로, 잘못된 자아, 거짓된 자아를 먼저 내려놓아야 참된 자유로 나아 갈 수 있다고 한다. 

유배인들이야말로 타의에 의해서 권력과 가족과 재산까지 모든 걸 버리고 홀로 머나먼 거제에 왔다. 자아를 내려놓을 수 없어 원망과 소명의 시를 썼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삶을 즐기며 참된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곤(鯤)으로 거제에 와서 붕(鵬)의 경지에 올라 남쪽 바다를 훨훨 날았으리라. 조선 유배인들의 소요유를 생각하며 문동폭포로 걸었다. 바람이 몹시 세게 불어서 걷기에 좋지 않은 날씨였다. 소요유를 경험해 보겠다는데 그깟 날씨야 바람이 좀 불면 어떠랴! 폭포 근처에서 폴란드 출신 여성이 다섯 살 아들과 문동폭포를 걷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인과 결혼하여 거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 또한 거제에 와서 붕이 되어 남쪽 바다를 훨훨 날기를 기대한다. 조선의 선비가 낯선 거제에 와서 붕이 되었듯이. 세찬 바람이 시원스럽게 얼굴을 스친다. 조선 유배선비들이 물질세계의 자아를 내려놓고 갈 때 놀고 올 때 놀았으며 그사이에 또 놀았을 문동폭포에서 진정한 삶의 자세는 욕심으로 가득찬 자아를 내려놓아야 함을 깨닫는다. 문동폭포의 물줄기에서 커다란 붕(鵬)이 날개짓을 하며 옥녀봉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거제유배자와 유배문학 작품>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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