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겨울 해는 짧다. 저녁 으스름이 내리면 안방은 오래된 성지 같았다. 낡은 벽지 사이로 삐져나오는 흙냄새가 오두막의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들숨을 쉴 때마다 매운 연기가 코를 타고 들어와 마른기침이 나왔다. 광목을 덧대 씌운 누런 솜이불을 걷어내면 아랫목엔 둥그런 블랙홀의 검은 테두리가 절절 끓고 있었다.

블랙홀을 따라가면 무쇠솥이 걸린 아궁이가 나온다. 깊은 돌무덤 속에서 제 세상을 만난 불꽃은 둥치를 태워 구들장을 달구었다. 그 속에서 타고 있는 장작불은 이불(泥佛)이라도 구워낼 듯 장엄하다. 집채라도 집어삼킬 기세로 활활 타오른 수백 도의 온도에도 구들장은 억겁의 죄업인 양 견뎌내었다. 그 운명의 순애보가 그땐 왜 그렇게 시리던지.

무쇠솥에 밥물이 끓어 넘치면 어머님은 타고 있는 장작을 더 깊숙이 찔러 넣으셨다. 또 마른나무 둥치 서너 개로 덧불을 올렸다. 가장자리에 남은 잔불로 밥 뜸을 들이면서 양은 냄비에 된장찌개도 걸쭉하게 끓여 내셨다. 그리곤 석쇠에 생선을 얹어 사그라드는 숯불 위에다 올려두셨다. 생선의 한 면이 노릇하게 익었다. 부지깽이로 죽은 불을 뒤적여주면 다시 살아나 일렁이는 불씨 위에 생선을 뒤집어 놓으셨다. 어머님은 아궁이와 한 몸이었다. 나는 나를 얼마나 더 태워야 저렇게 불꽃과 조율할 수 있을까. 불이 숨죽은 숯은 속으로 자신을 뭉근하게 품어 뜸을 들이고 끓여내고 구워낼 줄 알았다. 

“아가, 고기는 먼 불에서 구워야 한다.”
먼 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스물세 살 새댁은 어리둥절했다. 아궁이 맞은편에 가스레인지를 두고 불을 때는 시댁의 부엌은 번거롭고 낯설다. 또 잘 해내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급했다. 자주 치맛자락을 태우는 며느리를 은근히 타박하는 중일 것이다. 불 위에 두기만 하면 익혀질 줄 알았던 생선은 속은 익지 않고 겉만 새까맣게 탔다. 굳이 이렇게 위험하고 복잡한 저녁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궁이와 타협하지 못한 내 속은 다 써서 식어버린 부탄통처럼 싸늘하기만 했다. 

아궁이도 자신에게 싸늘하게 대하는 새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불길은 바깥으로 방향을 틀어 머리카락을 태우고 손등에 화상을 입히며 세력을 과시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제대로 타지 못하고 뜨겁기만 했는지. 아궁이를 잘 다루지도 못하면서 교만함과 미숙함으로 저녁 찬을 태우고 어머니를 태우고 나를 태웠다. 

이제 아궁이의 주인은 불길 따라 떠났고 세월은 재가 되어 날아갔다. 아궁이 속에서 숙성되어 나온 것들은 모두 깊은 맛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야 그것들의 소중함을 알겠는데, 구들장은 내려앉았고 입구는 막혔다. 그 깊고 뭉근한 정만 먼 불 되어 깜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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