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08」

        착  각

     강 민 진

   앙상한 가지마다
   꽃눈을 깨우고자

   바람에 몸을 맡겨
   힘겹게 살랑이고

   연못은 아른거리는
   그림자에 일렁인다.

   창 넘어 텃밭에선
   까마귀 떼 쪼그리어

   올무에 걸렸는지
   퍼덕거려 나가보니

   아뿔사! 멀칭*비닐이
   펄럭이고 있었네.

   착각이 다반산데
   소문엔 귀가 여려

   제눈을 못 믿는데
   지레 짐작 말아야지

   자세를 곧추세우고
   옷깃 여며 보누나.

 ★ 멀칭 malching : 농작물을 재배할 때 흙이 마르거나 비료 유실, 병충해, 잡초 따위를 방지하기 위해 볏짚, 비닐 등으로 땅의 표면을 덮어 주는 일.

◎혼자 웃는 웃음(獨笑)•1
셀 수 없이 많은 소장석 중에 ‘형부석’이 있다. 형부석은 신유사옥(辛酉邪獄•1801년 발생한 대규모 천주교 박해 사건)에 형틀로 사용되었던 돌로 알고 있다. 형부석의 입수 내력은 이러했다.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수석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수석 가게를 섭렵하였드랬는데 서울 인사동의 석물(石物) 가게 축대 주변에 쌓아 놓은 돌무더기에서 쉽게 형부석을 발견했다. 형부석에 관한 내력을 대충 알고 있던 터라 일반 습싯돌(수석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평범한 잡석 무리)과 섞여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이 내심 안스러웠다. 입수를 작심하고선 주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여기서 잠깐 수집에서의 불문율을 얘기하여 본다. 수집의 불문율 제1장 제1과는 공짜로 얻는 것이요, 제2과는 싸게 구입하는 것이다. 이는 수집의 모든 분야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것으로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싸게 구입하는 것도 공짜로 얻는 것 못지않게 좋아들 한다. 물론 싼 게 비지떡이란 말도 있긴 하나 제값보다 싸게, 그것도 주인이 그 가치를 못 알아보고 터무니없게 싸게 판다면, 이는 신바람이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수석을 주인이 진가를 모르고 10만 원에 팔았다면 좋아서 죽고 못 산다. 100만 원짜리를 제값 다 주고 샀다면 달포 정도 즐기다 신참에게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10만 원 주고 샀다면 평생을 끼고 즐긴다. 이는 허튼 말이 아니다. 다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다.

 형부석의 가격을 주인은 5만 원이라 했다. 너무 싼 값이라 ‘예?’하면서 주인을 바라보았더니, 비싸서 ‘예’하는 줄 알고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우기면 한 2만 원 깎아 줄 것 같았다. 5만 원을 얼른 건네고는 동행한 운전기사와 함께 겨우 무거운 형부석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는 꽁지가 빠지게 내빼었다. 형부석은 5천만 원으로 평가될 정도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돌인 셈이다(필자의 주장임). 형부석은 형틀이었기에 절구통처럼 가운데를 파내고 맞구멍을 내었다. 맞구멍을 낸 것은 목을 묶은 밧줄을 뒤에서 댕겨 절두(切頭)하기 위함이었다. 무게는 100㎏ 정도이고 폭이 50㎝, 두께가 30㎝나 된다. 세월이 흐른 뒤 재수 없는 돌이라고 냇가에 내다버려 어느 정도 수마(水摩), 즉 물씻김도 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승포의 선배인 여무남 형은 마당발이었는데 어느 날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셨다. 박홍 신부께선 이 형부석 앞에서 성호를 긋고 10여 분 묵념을 하셨다.

형부석

   썰물의 갯가에서 건져 올린 오석 한 점
   군살은 물이 먹고 옹골찬 뼈만 남아
   몰골은 초라하여도 범접 못 할 그 기상. 

   조탁의 물살 속에 급기야 모가 죽어
   아리고 설운 정을 안으로만 다져 넣고
   굽 도는 산자락 베고 말문 닫고 누웠는가.

   流轉의 세월이사 한량없는 고초였네
   강골을 향 그리는 쇠소리 나는 삭신
   실실히 풀어 놓으면 전설되고 남을 속내.
       拙詩 ‘뼈만 남은 돌’, 전문

 절두산(切頭山)은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에 위치한 한강 변 언덕이다.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 성지다. 본래는 산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峯)이란 이름으로 불렀으며, 경치 좋은 한강의 명승지 중 하나였으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잠두봉에서 약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으로 목이 잘리고 시신은 한강에 던져 넣는 집단처형(순교)이 벌어진 후 머리 자르는 산이라는 뜻인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절두산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천주교 측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특히 선참후계라 하여 심문 과정 없이 바로 처형했기 때문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은 성당•박물관•경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양화진에는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한국선교에 헌신했던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있는 외인 묘지가 있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나 간혹 형부석 앞에서 성호를 긋고 묵념을 하곤한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착각〉은 일상에서 다반사인 착각을 연못에 아른거리는 그림자와 멀칭 조각을 예로 들고, 조신하는 다짐을 3수 연작으로 읊은 강민진 시인의 작품이다.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 본다.
“시골에 살다 보니 착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연못에 비치니 물결이 이는 듯하고, 방치한 멀칭 비닐이 바람에 퍼덕이는 모습이 까마귀 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지구 곳곳에 버려진 산업 폐기물은 동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생태계 순환 속에 우리 모두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기상 이변은 경고의 메시지이기에 반성하고 성찰해 봅니다. 사람의 마음 또한 소문만 믿고 현장을 가보지도 않은 채 자기 생각만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당사자의 전후 상황을 직접 들어보고 살피거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기에 오해와 착각으로 소원한 관계가 되고 상처를 주기도 하기에 자신을 돌아보며 창작하여 보았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한 불멸의 고전으로 알려지고 있는 〈안씨가훈(顔氏家訓)〉은 북제 때 안지추(顏之推, 531-591)가 지은 책이다. ‘안씨가훈’엔 때로는 훈계하고, 때로는 예화를 들며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밝혀 쓴 256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중 78번째 이야기로 〈공자위동가구(孔子爲東家丘)〉가 나온다. “세상 사람의 흔한 병폐는 귀로 들은 것은 귀히 여기고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천히 여기며, 멀리 있는 것을 중히 여기고 가까이 있는 것을 가벼이 여긴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사이에, 그 들 중에는 어질고 명철한 사람도 있으려니와 그런데도 매양 서로 찬압하고 모욕하여, 예와 공경을 보태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다른 고을이나 다른 현에 사는 사람으로 조그만 명성의 풍문만 있다 해도 목을 매고 발돋움을 하여 목마를 때보다 심한 듯이 한다. 그 장단을 따져 보면 간혹 그런 자들이 오히려 자신과 함께 자란 이만 못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노(魯) 나라 사람들은 공자를 동쪽 이웃집에 사는 중니(仲尼)라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래서 ‘공자위동가구’는 먼 곳은 중히 여기고 가까운 사람은 하찮게 여김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丘’는 공자의 이름으로 이마가 뚝 불거져 나와 이름이 ‘丘’가 되었다고 한다.
 삭풍에 나목의 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두고 시인은 / 앙상한 가지마다 꽃눈을 깨우고자 / 한다고 했다. 발상이 자못 흥미롭다. / 바람에 몸을 맡겨 힘겹게 살랑이고 / 있다. 그 살랑거림이 마치 연못에 물결이 이는 듯하단다. 연못은 가만히 있는데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는 착각이다. 창 넘어 텃밭에선 까마귀 떼들이 쪼그리어 모여 있다. 이따금 퍼덕거려 올무에 걸렸나 하고 나가보니 / 아뿔사! 멀칭 비닐이 펄럭이고 있었다. 방치한 멀칭 비닐이 지천이다. 지구 곳곳에 버려진 산업폐기물, 시인은 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탄식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 공자위동가구를 떠올려본다. 제 눈을 믿지 못하는 세상 뜬 소문은 중히 여기고 가까운 사람은 하찮게 여기는 풍조를 탓하며 / 자세를 곧추세우고 옷깃 여며 보누나 / 하고 셋째 수 종장을 마무리했다. 조신은 끝없는 자기 성찰일지니, 교육자이신 시인의 성품이 오롯이 묻어나는 시를 감상하는 동안 봄볕의 유혹에 뜰에 나서 본다. 무슨 좋은 일이 있음 직한 孟春이다.- 능곡 시조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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