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Outside The Box(“고정관념을 깨라”)
                                                                      황양득

1999년 봄, 출장 뷔페에서 토요일 12시간 근무에 100달러를 준다는 광고가 눈에 쏙 들어왔다.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 지역의 Penny Saver(벼룩시장 같은)에 올라온 한글 광고였다. 가든 그로브에 있는 La Catering(엘에이 케이터링)이라는 중식 식당에서 올린 구인 광고로 광고주는 부산 초량에서 이민을 온 2남 1녀를 둔 화교였다. 주 임무는 토요일 한인 교회에서 올리는 결혼식 하객에게 출장 뷔페를 차려주는 일이었다. 그 식당은 주중에는 홀 손님을 받아서 파티 행사를 치르고 가끔 중국이나 베트남 이민자들의 결혼식장으로 대관해주고 뷔페 음식을 제공하는 지역의 웨딩홀 같은 운영 방식이었다. 그러나, 화교임에도 주말에는 한인 결혼식을 주 고객으로 하고 LA 중심가와는 1시간 떨어진 곳에 식당이 있으면서도 LA 카운티 한인들이 주 고객이었다. 한인 유학생들이 절실히 필요했었고 주말이면 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모두 사용하는 세 자녀를 중심으로 한두 명의 한인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동행하였다.

 필자는 주로 큰아들과 함께 중국 화교들의 댄스 연회장에도 자주 갔었고 많은 하객의 한인 교회 결혼식에도 주로 불러 가곤 했었다. 토요일 출근은 8시나 10시였다. 도착하면 먼저 후식으로 나가는 오렌지를 한입 크기로 자르는 일이었다. 그다음으로 식사 장소에 갈 원형 테이블과 의자를 트럭에 올리는 일을 마치고 나면 팀별로 가져갈 장비와 식사 도구를 챙기는 일이었다.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Tong이라는 집게를 잊고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 외 냅킨이나 음식을 다르게 가져가는 등 여러 실수를 대비해서 여분의 준비물을 싣고 있는 차량도 한 대가 늘 대기 중이었다. 여러 팀이 식장으로 가기 전이나 마치고 와서는 세 남매가 가끔 언성을 높이는 일들이 있는데 이때는 중국말로 싸운다. 그 광경을 볼 때면 이들은 확실히 “중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행사를 다 끝내고 나면 인근 식당에서 소주 한 잔을 다 같이 하는데 필자는 한 번도 참석을 못 했다. 

다음 일터로 직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일 예배를 위해 사찰 집사라는 직함에 교회 청소의 일로 생활비를 일부 충당했었다. 가끔은 토요일 8시 출근에 12시 자정이 넘어서 마칠 때면
 시간당 10불씩 추가 일당을 받았다. 그러나 1시 이후의 야간 청소는 평상시면 3시간 전후로 끝나는 일이 아침 6~7시까지 이어졌다. 청소 중간에 힘이 들어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가면서도 졸음운전이 이어지지만, 다행히도 교통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 결혼식 출장 뷔페 식사비에는 사전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 알바생들의 팁까지 포함되어 따로 혼주가 결혼식 당일에 팁을 주는 예는 없었다. 성수기 비수기를 거쳐 1년쯤 지났을 때 큰아들로부터 독립을 부탁받아 필자가 부사수 한 명을 데리고 2~3백 명 규모의 출장 뷔페를 책임지게 되었다. 불가능하겠지만 팁을 받아도 좋다는 허락도 함께 받았다. 

가져간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부사수에게 맡기고 먼저 오늘 음식을 주문한 혼주를 찾아간다. 음식 계산은 결혼식마다 신랑 측일 때도 있고 신부 측일 때도 있다. 그래서, 밥값을 계산하는 혼주는 군단장 전속부관이 군단장을 모시듯 깍듯하게 대우받는다. 금액에 따라서 메뉴에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돼지나 소고기 찜과 한인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30인분 정도의 추가분을 가지고 갔었다. 이러한 배려(?)를 바탕으로 음식에 대한 브리핑에서부터 생각하고 계시는 음식 테이블 세팅까지 미주알고주알 물어보면 예상치 못한 유쾌함에 혼주는 대부분 필자에게 상차림을 일임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곤한 혼주나 바쁜 신랑 신부의 음식까지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서 대기를 하면 흐뭇한 혼주는 사돈댁 보란 듯이 지갑에서 100달러를 척 필자에게 건네준다. 사수없이 힘들었던 부사수와 일당 이외에 팁으로 또 50불씩 나누어 가지니 부사수도 불만은 없었다. 짜다고 소문난 중국인의 야외 선상 요트에서 열린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팁을 받을 궁리 끝에 피로연을 주최한 신랑에게 내가 유념해야 할 주의 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요트 바닥에 음식물이나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옳거니! 허리춤에 냅킨을 서너 장씩 끼우고 신랑 주변에서 이곳저곳 바닥을 열심히 닦으니 중년의 신랑이 웃으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선물했다.

“Think outside the box”라는 구절은 “고정관념을 깨라” 혹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과도한 규제를 담당하는 관료사회나 전시 작전을 수행해야 할 군인에게서나 범죄 및 치안 업무를 맡은 경찰 공무원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는 공복의 자세로 적절한 경구이다. 그러나 먼저 질문에서 흔히들 답의 범위를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 대각선을 그으면서 상대방에게 사각형 안의 대각선까지 포함해서 한 번도 중첩되지 않고 단번에 사각형과 그 두 대각선을 그리라고 하면 답을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잘못된 질문에 잘못된 해법을 보여주면서 답은 미궁으로 빠진다. 결국, 해결책은 네 모서리 중 한 모서리를 벗어나 사각형 상자를 넘어 곡선을 그리면서 옆모서리로 가서 나머지 대각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유형의 산적한 문제들이 SNS 시대를 살면서 여러 당사자의 요구 사항에 고려 사항을 염두에 두면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딜레마이자 역부족이다. 

2년 전에 소개한 Mucho Trabajo Poco Dinero(고노동 저임금)라는 칼럼에서 거제 조선 산업의 하청 근로자들이 직면한 급여 문제를 언급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구조적인 저임금 문제에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 조선 산업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정규직 채용이라는 해답과 조선 산업 직불제라는 해법이 대우조선 매각 위협이 불러온 저가 수주의 악순환과 정부의 최저 임금 인상, 그리고 주 52시간이라는 규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선 현장 주변의 “달라지는 얼굴색과 목소리(changing colors and voices)”가 더 뚜렷해지고 명확하게 들린다.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 각 후보는 어떤 조선 산업 정책공약으로 또는 해결책으로 표심을 얻을는지 두 눈은 부릅뜨고 두 귀는 쫑긋 세우자.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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