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형 카브리올레 

1999년 9월,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담임 목사님께서 자기 집에 있는 유럽산 승용차를 선물로 주면서 잘 관리하면서 타라는 조언도 보탰다. 98년 여름, 뒤늦게 아내와 6개월 된 아들이 625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IMF 시절에 비자가 어려울 것이라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유학생 동반 비자를 받아서 미국으로 건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가정이 꾸려지면서 교회를 통해 87년형 니산 맥시마(Nissan Maxima)라는 20만 킬로가 다 되어 가는 중고차를 2천 불을 주고 샀지만 둘째 딸 덕분에 두 대의 차를 굴리게 되었다. 

 기독 신앙심과는 별개로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이 미국 정착을 위해서는 한인 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은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이민 1세대부터 내려오는 배려와 전통일 것이다. 2000년 전후에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의 중고차 시장의 절대 강자는 토요타 차량이었다. 특히, 단출한 유학생에게는 픽업트럭이 최고의 인기였고 가정이 있는 집에는 캠리 차량이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뒤를 이어 혼다가 주목받았고 니산 차량이 계보를 이었다. 그 외에도 미쯔비시, 마쯔다, 수바루라는 일제 차들도 있었지만, 미국의 포드나 크라이슬러와 함께 인기 상한가는 아니었다. 현대의 소나타나 기아의 세피아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크게 한인들에게 중고차로서의 매력은 없었다. 이민자들은 또 다른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이민 생활의 편리를 도모한다. 번화가 외에는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어려운 미국에서는 생활의 필수품이 차량이었다. 첫 차량이었던 맥시마도 큰 고장과 수리 없이 3년 이상 잘 타고 1,400불에 히스패닉 이민 노동자에게 팔았다. 그 당시에는 거리의 정보지에 판매 광고하거나 For Sale $1400 1-714-123-5678 라는 글귀를 붙이고 다니면 연락이 오곤 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유럽산 차량이었다. 차체가 무거워 우리는 제너레이터라고 부르는 얼터네이터(Alternator)가 자주 고장이 나곤 했었다. 얼터네이터 수리가 잦다 보니 벨트도 가끔 빠지곤 했었다. 단종된 차량이라 재생 부품도 좀 의심스러웠고 가격이 비싸 정크 삽(폐차장)에서 부품을 직접 빼 오기도 했었다. 2년 정도 타면서 견인차는 4번 정도 불러 수리했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아들을 태우고 출구(Exit)가 있는 국도(Highway)에서 차가 멈춰서 당황스러웠지만 제법 먼 거리를 차를 밀면서 출구로 빠져나와 모텔에 차를 주차했던 기억도 있다. 선물로 받은 중고차였지만 팔 때는 또 아랍 이민자에게 500불을 받고 팔았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유학생에게서 혼다 어코드를 사고 연구원으로부터 닷지 니온을 사면서 그나마 불안감 없이 안정적인 운전과 유학 생활이 덜 피곤했었다. 

 혼다 어코드 중고차를 구매 후 주 6일 새벽마다 160킬로를 달리면서 한국일보 신문 배달을 할 수 있었다. 라디에이터에 금이 가서 시동을 켜고 끌 때마다 부동액이 폭발하듯이 분출이 되었는데 한 3주까지 교체를 안 하고 버텼던 적도 있었다. 교회와 학교 다음으로 많이 가 본 곳이 차량 정비소였다. 그런 기억과 경험 때문인지 내외는 중고차에 대한 선입견이나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유학생 시절,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었다면 사고 싶었던 중고 차량이 포드사의 웅장한 픽업트럭이었다. 구매비용만큼이나 기름값도 부담스러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잠시 선거용으로 샀다가 낙선 후 바로 판 코란도나 2인승 갤로퍼가 늘 관심사였는데 대기 환경보호 차원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차에 우연히 2007년 아우디 카브리올레라는 18만 킬로를 달린 중고차를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스포츠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유럽이나 독일에서는 카브리올레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는 컨버터블이라고 불린다. 우리에게는 스포츠카라고 주로 알려졌지만 소프트탑이라는 이름도 자주 쓰인다. 검은색 천 지붕이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차량이다. 우선 비가 오면 물은 새지 않을까? 천 지붕이 열리기는 할까? 유지비가 많이 들지는 않을까? 2007년? 굴러는 갈까? 430만 원이라는 판매가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차를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든 티를 내고 말았다. 아내가 좀 깎아 달라고 했더니 5만 원 할인해 주었다.

  함께 간 가족에게도 카브리올레는 첫선을 잘 보여 큰딸이 반을 부담한 덕분에 일사천리로 인도받았다. 애지중지 바람에 날아갈세라 비에 젖을세라 햇볕에 그을릴세라. 아파트 필로티 아래에 차량 커버까지 씌어서 보관하니 이웃 주민들이 웬 보물단지 모시듯 하냐고 물어본다. 커버를 씌우는 것이 익숙지 않아 자주 벗겨지자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자주 나와서 다시 덮어 두곤 했었다. 필자의 정성이 안쓰러웠었나 보다. 

 꿈과 목표가 생겼다. 거제 통영 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IMF라는 경제적 혹한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도로 건설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지난 여건에 비추어 보아 크나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거제 통영 고속도로 건설의 요원함을 간파한 둔덕 출신의 유승화(전 거제시장 후보) 건설부 도로 건설과장은 국도 14호선을 4차선으로 확장 공사하고 통영 거제 구간에 신호등을 없애고 지하통로로 수정 설계함으로써 고속도로에 버금가는 애정을 쏟았다. 그러나 이러한 애향심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낮은 수치로 통과를 어렵게 만들었다. 

 거제 통영 고속도로 35호선과 국도 14호선이 중복되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의 최우선 지표인 1일 교통량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로, 아! 예타 불(不)”이라는 칼럼을 기고했었다. 비록 경제성은 낮지만, 지역 경제 파급효과라는 항목의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부의 방침과 판단을 지역에서는 크게 기대하고 있다. 사통팔달의 거제에 고속도로로 달려와서 굽이굽이 700리 해안도로를 지붕을 열고 달리는 전국의 스포츠카 동호인들을 상상해본다. 

 2018년 시의원선거에서 칠천도에서 펜션을 하는 주인장들이 펜션 좀 잘되게 해달라고 필자에게 주문했었다. 선뜻 확답하기 힘든 부탁이었다. 20~30대의 스포츠카 운전자들도 지붕을 열고 다니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리고 60대 은퇴자들도 스포츠카에 대한 선입견에 “인생의 오픈”이라는 황혼의 매력을 아직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기회다! 전국의 스포츠카 운전자들을 거제로 불러보자 아마도 할리 데이비드슨도 따라서 올 거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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