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10」

개개비 둥지에 낳은 알

     김 용 호

나에게 대단하신 형님 한 분 계셨다

새끼들 다 잘 키울 수는 없응께. 장남
한 놈이라도 잘 키워야제

아버지 그런 말씀에
서울로 간 우리 형님.

대기업 취직에다 인물도 훤칠하제
좋은 여자 천지 뱃가리라 골라감서 갈
장가를 어디 여시 겉은 뻐꾸기 한데 홀리서.
제 알을 개개비 둥지에 낳아

형님은 빨리도 가고
조카만 남았는데.

남 같은 서울 장손 차가 없나 전화가 없나

개개비 둥지나 엿보면서 평생을 살 것인지
성묘고 명절이고 대답도 일절 없고 제할배
남은 재산 헐값에 팔아 먹고

원통타 우리 형님아
개개비 둥지였다.

◎짐과 품격 있는 말
 춘분에 맞추어 진달래가 피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곳 예술랜드 입구에 마주 선 팽나무 두 그루도 봄 맞을 채비를 하는지 조금은 물오른 태가 난다. 팽나무는 나와 30년 세월을 함께하는 동안 어엿한 정자목이 되어 제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두 갈래 길 고향마을 입구에도 우람한 팽나무 두 그루가 마주하고 있었다. 고향 사람들은 이 두 그루를 암수나무라 불렀다. 이 두 고목을 누가 심었는지 수령조차 짐작이 안 가는 노목이었다. 해마다 정월 초이튿날엔 온 동민이 정성으로 동제를 지냈는데 으레 동구에 서 있는 두 팽나무에 온통 새끼 금줄을 치고 흰 창호지를 사이 사이에 끼웠다. 이 팽나무들은 축수의 대상만이 아니라 내 고향의 수호신이요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이 먹고 견디는 장사가 없다고 하더니 이 팽나무 중 암 팽나무가 한 줄기 두 줄기 생명을 잃어 가다 수년 만에 고향에 들렀더니 보호수란 팻말만 고즈넉이 남겨 둔 채 자취를 감추었다.

 나이 탓인지 탈이 난 지 오래인 몸인지라 자리보전하는 때가 많다. 병석에서 잔뜩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팽나무가 짐을 내려놓았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때였다. 조물주가 사람을 점지할 때 무거운 짐을 감당하도록 미리 든든한 양어깨를 만들었고, 짐을 안으려고 넓게 가슴을 만들었는가 하면, 짐을 이라고 머리를 위에다 두었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짐을 사전에서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챙기거나 꾸려 놓은 물건, 맡겨진 임무나 책임, 수고로운 일이나 귀찮은 물건’이라 풀이하고 있다.
 송강 정철은 무거운 짐을 진 늙은이가 안쓰러워

   이고 진 저 늙은이 짐을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어도 설워라거든 짐을 조차 지실까. 하고 읊었다.

 사람은 누구나 제 힘에 겹게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빈손이라지만 짐을 지고 태어났고, 빈손으로 갈 때도 짐을 놓지 못한다. 짐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야말로 짐 덩어리다. 짐을 많이 진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을 감당한다는 말이요. 어려운 일을 잘 감내해 낸다는 뜻이다. 짐은 그 무게만큼 시련도 많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시련은 대부분 입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숙치 않은 말들로 해서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을 어렵잖게 보고 있다. 때론 술김에, 때론 우쭐하는 마음에서, 때론 헛되거나 어줍잖은 공명심에서 순간적인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말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잦다. 물고기가 입을 잘못 놀려 미끼에 걸리듯, 입을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한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천수경의 맨 앞 구절이다. 우리가 입으로 지은 온갖 죄를 깨끗이 하는 참 고운 말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타우라스 산(Mount Tauras)을 넘는 두루미를 인용하여 쓸데없는 입놀림으로 화를 당하지 않도록 오래전부터 경고하고 있다. 터키 남부에 있는 타우라스 산 꼭대기에 독수리의 집단 서식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그곳은 그들의 먹잇감인 두루미의 이동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독수리들은 험준한 타우라스 산을 넘어가 두루미들을 공격해 배를 채운다고 한다.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는 두루미는 시끄럽게 우는 놈이다. 편대의 뒤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시끄럽게 우는데 이 우는 소리는 독수리들에게 먹잇감을 알리는 좋은 신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노련한 두루미는 거의 희생을 당하지 않는다. 노련한 두루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입에 돌을 물고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한다. 주둥이를 잘못 놀렸다가 독수리의 먹이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고 하였으니, 말을 적게 하고 볼 일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도 말을 적게 하는 한 방법이지 싶다.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은 말을 배우는 데는 3년이 걸렸지만 남의 말을 듣는 데는 60년이 걸렸다고 했다. 사람이 지닌 향기는 그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말을 함에 있어 한결같이 진솔함을 유지하여 섣부른 입방정을 삼가야 하리라. 굳이 말을 잘할 필요는 없다. 비록 어눌하다 할지라도 진실을 담은 말이라면 듣는 사람은 감동한다. 입(口)자가 세 개가 모이면 품수 品자가 된다. 말이 곧 사람의 품격이다.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 했다. 글이나 말의 품격은 그 사람과 같다. 근간에 망발이며 필화(筆禍)로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조신하고 볼 일이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몇 단체의 고문이란 직함도 짐이다. 더구나 「계간 현대시조」 발행인이란 짐은 무겁고 과한 짐이다. 벗기는 벗어야 하는데, 벗기는 벗어야 하는데….(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개개비 둥지에 낳은 알〉은 촉망받던 형님을 먼저 보내고 안타까운 심사를 제 알을 개개비 둥지에 낳은 뻐꾸기에 빗대어 엇시조로 읊은 김용호 시인의 작품이다. 탁란(托卵)은 자기가 직접 둥지를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위탁해 포란시키는 습성을 말한다. 탁란을하는 새로는 뻐꾸기가 유명하다. 뻐꾸기는 개개비, 휘파람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등 작은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자신의 새끼를 기르게 하는 이유는 자신이 철새인지라 먼 거리를 날아오기 때문에 육아할 힘이 없어서란다. 누가 그 이유를 붙여준 것인지 모르나 이유치고는 구차하고 경우가 없어 보인다. 철새가 어디 뻐꾸기뿐이던가. 탁란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기회를 엿보다가 삽시간에 남의둥지에다 알을 낳는 등 꽤나 공을 들인다고 한다.

 첫 수에 새끼들 다 잘 키울 수 없다는 아버지의 의지로 보아 시인의 형제분이 여럿인 것 같다. 아버진 장남을 집안의 기둥으로 삼고자 서울로 유학을 보냈것다. 장남인 큰형은 인물도 훤칠하고 거기다 대기업에 취직까지 하였으니 좋은 배필을 고를 수 있었는데 그만 여시같은 뻐꾸기한테 홀려서 제 알을 개개비 둥지에 낳았으렷다. 안타깝게도 형님은 먼 길을 먼저 떠나고 조카만 남았다. 아버지께 실망만 안기는 남 같은 서울 장손이다. 차도 있고 전화도 있건만 성묘 때고 명절에 대답도 일절 없고 개개비 둥지나 엿보면서 평생을 살 것인지 제 할배 재산만 헐값에 팔아먹었다. 기대를 저버린 형님, 개개비 둥지였으니 어찌 원통치 않으리오.

 모처럼 접한 3수 연작의 엇시조에서 시인은 특유의 기량을 사투리를 곁들여 잘도 보여주고 있다. 가족의 아픔을 탁란에 접목시킨 착상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제 세상 만난 봄,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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