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내 기

                                                          이 혜 영
 

고향이 낯선 타향보다 못하다. 도시에서 벌어서 고향에 땅을 사 두었다. 급하게 팔려고 내놓은 땅은 마침 어머니가 살고계신 곳과 가까웠다. 남편은 어려서 추억이 많이 쌓인 고향에 땅을 사 두어 여간 든든해하지 않았다. 남들은 벌어서 은행에 저축을 하였지만, 우리는 고향에 사 놓은 땅을 개간하며 그곳에 들어가는 돈을 저축으로 삼았다.
  주말마다 이웃집 아이들은 부모들과 도시근처로 놀러 가는데, 우리 가족은 남편의 고향마을에 내려와 할머니도 만나고, 우리 땅을 둘러보며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다른 집처럼 도시 구경 가는 것이 더 부러워 불만이었다.
  저축대신 땅에 투자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개간 작업하고 나무와 과실수도 종류별로 구입해 심고 남편 혼자 즐거운 마음 이었다. 아파트 이웃집 아이들은 풍족한 생활을 경쟁하듯 과시하는데, 우리는 매번 쪼들리는 생활이니, 아이들은 괜스레 풀이 죽어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틈틈이 가꾸고 투자한 만큼 나무들은 커가고 과실수도 사람 손길이 자주 가야했다. 시간 할애를 하지 못하니, 풀 뽑기 작업과 나무 손질하기는 일일이 고향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고향에도 젊은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버리고 나이 드신 보모님들만 지키고 계신 형편이었다. 나이 드신 노인에게는 소일거리와 용돈벌이가 되어 오히려 농사일을 반갑게 여기셨다. 그렇게 힘들게 가꾸어 이젠 제법 농사다운 모습으로 꾸며졌다. 불만 많던 아이들도 장성해서 모두 출가를 하고, 어느덧 남편도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미련 없이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어머니가 계신 고향마을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이제는 남들도 부러워 할 만큼 값진 농장이 되었다.`땅은 거짓말 않는다.`던 어머니 말씀처럼 심고 가꾼 만큼 풍성한 수확으로 보답을 해 주었다. 막상 고향을 찾아 들어와 살고 보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일 시급한 것이 농로로 좁은 길을 넓혀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좋게만 지내왔던 고향 사람들이 길을 낸다고 하자 강한 반대를 하고 나섰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이 좁아 농기구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지게로 모던 것을 힘들게 운반하며 지내는 형편이었다. 한 뼘의 땅값까지도 돈을 지불하고 오랜 설득 끝에 길을 내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막상 농로를 넓히는 작업장에 드러누워 방해를 하며 죽어도 길 못 낸다는 억지를 부려대는 노인도 계셨다. 우리만 좋을려고 하는 일이 아니건만, 옛것을 지키려는 고집 탓인지 혼쭐이 나고 길 넓히는데 힘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넓혀진 길은 정작 우리보다 당장 고향 분들이 편리를 누리게 되었다.  농사기구로 논과 밭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농기계들을 길에다 방치하고 일을 하느라 우리는 오히려 눈치를 살피며 양해를 구하고 차가 지나야하는 형편이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노인들도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들어와 농사를 짓게 되었다. 다시 넓은 길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차량통행이 늘어나자 외길인 좁은 길은 불편을 넘어 불안하기까지 하다. 오가는 차가 서로 맞닥뜨리면 피할 길이 없어 후진으로 좁은 길을 운전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느 때는 서로 비킬 수 없다고 고집을 세우며 싸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옛 어른들이 지금의 젊은이들보다 더 관대했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절대 허락 할 수 없다는 강력한 주장이다. 이제는 보상을 해 준다 해도 돈도 필요 없다고 배짱들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만 넓히면 된다는 생각이 암울하다. 언제 부터  이렇게 사람들 마음이 막혀있는 것인지. 고향이 이제는 타향보다도 더 낯선 곳이 되어버린 느낌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도로를 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정작 사람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할 일이 태산보다 더 높아 보인다. 그래도 포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노력을 하고 있다. 돈을 많이 쓰게 되고 길을 내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섭섭한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고향사람들에게  실망해야 되는 절망감이 더 큰 것이다. 이익 앞에선 의리도 이웃도 없는  세상이다. 이익 앞에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살벌해지기만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색해진다. 이제라도 서로 화목하게 가까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부터 먼저 내야 할 것 같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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