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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 윤정희] '현금'윤정희:거제 출생/수필과 비평신인상 수상(2012)/계룡수필문학회원/거제대학평생교육원 수필 창작반 수료 /눌산문예창작교실수강

밖에는 모두 어렵다고 난린데 나만 좋아해도 되나 싶다. 함박웃음에 엉덩이춤으로 들이대니의아한 남편,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다그친다. 나에겐 가뭄에 반가운 소나기가 내렸다. 계절이 바뀔 때면 언제나 그렇다. 옷장에 입을만한 옷이 한 벌도 없는 것 같다. 옷 가게를 지나칠 때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 일쑤다. 또 나이 들어가면서 사치스러워서가 아니라 사람들 속으로 나갈 때는 산뜻하고 깨끗한 새 옷차림은 자신도 즐겁고 남에게도 경쾌함을 준다고 생각한다. 새 옷을 마련할 때면 언제나 혼자서 화장을 말끔히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한껏 거드름을 피워 본다. 혼자서 거울에 서 있는 여인에게 생긋한 미소도 보낸다. 그 즐거움은 일 년에 계절이 바뀔 때 겨우 몇 번밖에 안 되어도 나를 들뜨게 하는 한순간이다. 혹자는 허울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어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은 어쩔 수 없어도 겉이라도 깨끗해야 세월의 흐름을 조금은 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속도 희고 겉도 희면 금상첨화지만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으니. 날씨가 따뜻해지고 바람도 온기가 돌면서 다시 그 병이 도졌다. 남편과 봄놀이도 가고 싶고 예쁜 옷 입고 친구들과 웃으면서 여행을 떠나고도 싶다.

얼마 전 딸들과의 카톡 방에서 넌지시 올해 봄옷 유행이 어떠냐고 물었다. 분명한 말이지만 딸에게 뭘 바라고 한 건 아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딸들의 대답이 빗발치듯 들어왔다. 큰딸은 “엄마 올 봄옷은 큰 사위가 책임진다.”고 걱정 놔라 했다. 예상에도 없던 뜻밖의 횡재에 움찔했다. 괜찮다고, 아니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속으로는 ‘웬 횡재야’ 보이지 않으니 내 표정을 딸들은 짐작도 못 했을 테다. 며칠을 은근히 기다렸다. 봄은 깊어 가는데 물어볼 수도 없고 내심 조바심이 났다.

어느 날 갑자기 금일봉을 송금했다고 전화가 왔다. 일단은 남편한테 얼마쯤 분배하고 이렇게 저렇게 쓰다 보니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사위가 장모님한테 용돈을 주었다는 그 자체가 고마웠다. 한 벌의 수수한 옷으로 끝냈지만, 나의 봄은 화려했다. 현금과 물품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몇 년 전에도 다른 사위들한테 오늘처럼 선물을 받은 때가 있었다. 지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긴 해도 그때마다 백화점에서 엄마가 원하는 의류 구매를 권했다. 어쩐지 손을
쑥쑥 내밀기가 체면이 없고 미안하기까지 했다. 마음도 썩 내키지 않고 까닭 없이 망설여졌다. 결국에는 원하는 걸 다 얻어 고맙고 기뻤어도 오늘만큼 환호성은 나오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즉답이 나왔다. 바로 현금이다. 현금이라야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현금에 너무 욕심이고 노티를 부린다고들 할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돈 쓸 일이 좀 줄어들까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젊었을 때는 정말 돈 쓸 일이 많아 아껴 쓰고 자린고비 짓을 해도 누구도 그러려니 보아 주었다. 지금은 지나치게 궁색하고 찌들은 모습으로 내 인생 후반을 보내기엔 스스로 용서가 안 된다. 오십대였던가, 애들 셋이나 객지에 내어 공부시키느라 한창 힘들었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앉은 내 얼굴이 삶에 지치고 힘든 모습에 차마 보기 조차 민망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살자고 노력했다.

운명은 자기가 만든다고 말들 한다. 내 능력 밖의 어려운 일도 다 보듬어야 얼굴을 펴고 살 수 있는 것이 또한 우리들의 삶이 아니던가. 어느덧 세월이 많이 흘렀다. 평생을 헤어지지 못하는 인연이라도 그에게 전부를 주지 않는다. 인생 후반의 나의 지론이다. 요즈음 내 생활은 오히려 나이 젊었을 때보다 마음도 몸도 안정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다 공돈이 생겨도 이 십 퍼센트는 평상시 못했던 마음에 두었던 곳에 쓰자고 나에게 약속을 했다. 그건 우연이 아니다. 내 어머니 생전에 자식들이 용돈을 드리면, 정말 내가 드리는 보잘것없는 액수라도 마을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나누며 즐기셨다. 그 공은 자식들에게 돌리고. 연로하신 부모님은 세월이 모시고 가셨다. 만약 지금의 형편쯤이면 용돈을 좀은 넉넉하게 드렸을 텐데 후회 막급이다.

언젠가 나의 큰딸이 많이 힘들 때가 있었다. 좀 과한 용돈을 주었다. 극구 말렸지만 “엄마 지금 드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요.” 라면서. 딸이 주는 순간의 교훈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이후로 용돈이라 이름 붙이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넙죽 받아 유용하게 잘 써 주는 것도 자식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또 훗날 자식들의 작은 후회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 자식 형제 친구도 나름으로 나누어야 가슴에 회한을 남기지 않고 관계도 돈독해진다는 걸 살면서 알았다.

내가 살아가는 이 소소한 이야기 거리는 특별함이 아니고 누구나 다 있을법한 일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자식이 주는 아주 작은 선물도 부모는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아마 나의 어머니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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