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업 불황으로 무너진 거제,
회사 또한 가족이었던 중공업 도시 노동자·엔지니어·주부 등
다양한 집단의 성쇠 과정 관찰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불황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있는 표현인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양승훈 지음/오월의봄·1만6900원

에서는 그 말을 뒤집어놓는다. ‘기회는 위기’. 위기가 왔을 때 잡아야 할 그 기회는 구조조정이다. 2010년대 중반, 매출 50조원을 벌어주던 수출 대기업이자 10만명을 직접 고용하고 십수만 사내하청 노동자와 수십만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던 제조업의 선두주자 조선산업이 어려워졌다. 2013년 현대중공업은 직원 2천명을 감원하고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이듬해에는 삼성중공업에도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두 회사와 함께 조선산업계 ‘빅3’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의 회계부정이 드러났다.

양승훈은 이 이야기를 산업도시 거제의 가족 이야기로 풀어 책으로 썼다. 서울 아닌 모든 지역을 ‘지방’으로 부르고, 압도적으로 많은 자원과 지원이 서울집중형인 나라 대한민국에서 부산, 울산, 경남의 동남권은 ‘산업도시’로 기반을 갖췄다.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로 있는 양승훈은 조선소에 취업해 일했던 경험으로 시작해 거제의 사람들과 중공업 엔지니어들을 이야기한다. 제목의 ‘가족’은 회사와 가족 모두를 포함한 개념이다.

지난해 12월 <한국방송2></div>에서 방영된 드라마 <땐뽀걸즈>는 구조조정이 한창인 쇠락하는 조선업의 도시 거제에서 춤을 추는 여상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출처 한국방송 아침에 아빠가 조선소에 출근하기 위해 탄 버스를 밤이 되면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이 탄다. 

조선소 사람들은 퇴근하고도 소속과 이름이 쓰인 작업복을 입는다. 작업복을 입고 술집에 가고, 상갓집에 가고, 결혼식에 가고, 돌잔치에 간다. 미혼인 직원들은 작업복을 입고 소개팅에 나간다. 작업복의 위상은 활황기(~2014) 기준, 거제시 생산직 평균소득이 7000만원 혹은 그 이상이었다는 데서 왔다. 돈이 다는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열린 노동조합 운동의 주축에 조선산업이 있었다. 많은 ‘학출’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시도했다. 그 시도가 온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으나, 금속노조, 민주노총 등이 조직되는 데 힘이 되었고 투쟁 경험이 그들을 한데 묶었다.

한편 이곳의 ‘가족’을 보면, 생산직의 99%가 남성이며,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남편은 조직 생활을, 아내는 살림살이를)이 일반적이다. 여성들을 위한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거제의 딸들은 대학에 진학하는 스무 살쯤 대도시로 떠나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잘 돌아오지 않는다. 20대 여성은 신규 전입도 많지 않다. 남성 쪽은 공부를 목적으로 부산과 수도권으로 떠난 20대 초반 남성들보다 10배 많은 20대 후반~30대 초반 남성들이 일자리를 위해 몰려들었다.

조선 엔지니어들의 노력과 그로 인한 생산성 향상, 한국의 ‘하면 된다’ 시절(박정희 정부)부터 누적되어온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2장도 흥미롭다. 현장 중심으로, 즉 ‘쟁이 근성’에 기초해 문제를 해결해온 시절부터 랩실 엔지니어들이 투입되는 현재까지, 목소리를 키워 온 ‘산학연계’는 쓸모가 있는가? 

이 책은 엔지니어들이 일터 안팎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조직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총체적인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다양한 인력 충원, 그와 관련한 여성 엔지니어 채용에 주목한다. 공대 신입생의 4분의1 가량이 여학생인데 취업에는 그 비율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력과 관용적인 제도를 겸비한 조직에서 더 높은 생산성과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조직론의 상식이다.”

책 뒷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땐뽀걸즈>의 가족은 왜 뿔뿔이 흩어졌을까?” 사회현상의 많은 부분을 우리는 ‘결과’를 통해 인지한다. 어느날 갑자기 십대 아이들이 가족을 이루어 성범죄부터 살인사건까지의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어느날 갑자기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 모녀가 죽은 채 발견된다. 아니다. 갑자기가 아니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다, 아주 지난한, 인간들을 갈아넣은 세월이. 이 책이 중요한 것은 한 시대와 한 지역사회가, 골리앗 같은 존재감을 보이다 천천히 쓰러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이 일의 결과들을 사회 곳곳에서 만나게 될 때, 이 책은 유효한 통찰을 제공하리라.[한겨레신문 게재/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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