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442
                                                        우광미
 
  출입문이 닫힌다. 조명이 켜지고 무대 위로 올라온 단원들은 자리를 찾아 앉는다. 저마다 악기

를 점검한다. 민낯의 소리들이다. 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자리에서 일어선 악장의 신호의 의해 오케스트라는 조율이 시작되고, 악기들은 잠시 소음을 일으킨 뒤 정일한 내면을 맞춘다.
  전체 음정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그 기준음은 442Hz다. 전체를 이끌어 가는 약속이기도 하다. 현악기는 운지(運指)를 하지 않고 관악기는 밸브를 움직이지 않고 내는 음으로 맞춘다. 이 과정을 통해 가장 안정적인 악기 상태를 유지한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442는 음이 명료하고 화려하게 들리는 높이다.
  듣는 귀가 자신이 없으면 조율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단번에 들리지 않는다 하여 이것에 의존하면 음감이 떨어질 수 있다. 음감이 떨어지는 연주자는 테크닉이 아무리 좋아도 한계를 빨리 느낄 수밖에 없다. 늘 주변의 소리를 듣고 맞추어 나가야 하는 작업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연주가 시작되면 곡 전체에 대한 각자의 역할은 정해져 있다. 파트별로 나누어져 전체 하모니를 생각해야 한다. 내 파트도 마찬가지다. 1바이올린이 돋보이도록 넘치지도 떨어지지도 않게 화음을 넣어준다. 이처럼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린다 하더라도 빠른 곡은 테크닉을 요구하고 느린 곡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다른 소리에 묻히지 않는 자신의 소리가 오롯이 들리기 때문이다.
  휘몰아치는 삶의 여정은 그 흐름에 맞게 대처한다. 그와 달리 변화 없이 느리게 가는 순간들은 어떤 감성으로 채워가야 하는가. 되풀이되는 일상에 잠식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심연의 밭을 가꾸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오고 비로소 좋은 소리도 찾아온다. 가다 보니 느린 곡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기교를 넘어서는 따뜻한 서정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  
  연주 도중에 누군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면 주어진 기준에서 그를 무시하고 가거나 같이 연주하는 걸 거부할 수 있다. 단원으로 살아남는 길은 끊임없는 반복의 연습을 몸에 배게 하는 것이다. 낮은 곳에서 제 몫을 다하는 성실함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최고의 방패다. 드러나 칭찬받지 못하는 자의 갈증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이렇듯 노력을 해도 사는 일에 서열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더라도 유능한 인재가 들어오면 배경이 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가끔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단원이 새 단원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 중 하나가 악보를 넘기는 일이다. 연주 도중 왼쪽에 앉은 사람이 해야 한다. 이것이 서열이다. 실력에 따라 앉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식과 같은 연배의 동료에게 자신을 내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일시적인 열등의식으로 잡음을 내기도 하지만 곧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단원은 중요한 연주를 앞두고 종종 자신의 감정에 취해 전체 흐름을 깨는 소리를 낸다. 혼란스럽다. 한편으론 지난날 쉽게 내리지 못한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철없던 시절 내 음만 맞으면 되는 줄 알았다. 때로는 감정에 몰입되어 소리를 박차고 악보 밖으로 이탈한 적도 있었다.
  자신을 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깊이 생각해 보면 불협화음이란 것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합을 향해가는 과정이다. 계속되는 연습으로 지쳐 있지만 그간 오랫동안 함께 해 왔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더불어 가다보면 얼마지 않아 그들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갈 거란 신뢰를 가져본다.
  442에 맞추어 연주를 시작하지만 조금씩 어긋나는 소리는 모두 감수하며 간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연주 도중에 악기들은 환경에 의해 미세하게 음이 변한다. 무대 위의 조명 때문에 연주 시간이 길어지면 현악기는 줄이 느슨하여 소리가 떨어지고, 관악기는 음이 높아진다. 맞춰 놓은 음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442는 유동적이다. 시간이 흐르고 근사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거 외에는 알지 못한다. 연주 도중에 어긋난 음을 조율 할 수는 없지만, 운지에서 조금씩 높이 잡는다거나 숨을 조절하면 된다. 연주가 불확실하고 가변성을 가졌듯이 삶도 어느 길목에서 뜻밖의 변수를 만날지 모른다. 그것은 각자의 가변성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주변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는 연주를 마친다.
  마지막 음을 켜고 악보 속의 멜로디는 끝났다 해도, 악기를 내리지 않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침묵 속에 멀리 퍼져나가는 여음을 듣고 있다. 그 여운은 나의 가슴 깊이 되돌아온다. 442는 그 곳에 있었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