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나프탈렌'
 
                                                          우     광     미
  

마땅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복잡한 생각에 오후 시간을 소진하고 해질녘이 되어서야 버스를 탔다.
  이미 좌석은 앞서 탄 승객들의 차지였다. 뒤쪽으로 가서 의자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격한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앉아 있는 남자에게서 날아 올라온 것이다. 좀약인 나프탈렌이다. 장롱 속에 넣어두면 의류를 좀 벌레로부터 보호해준다. 간혹 변두리 공중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데, 강력한 향으로 방향제의 역할도 한다. 지난 날 옷을 꺼내려 서랍을 열면 곳곳에 박혀 있던 것들이다. 유달리 후각이 예민해 집안 곳곳에 놓아둔 나프탈렌들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 직접 닿지 않아도 섬유 올 속 깊이 밴 냄새를 털어내기 어려웠다. 급히 옷을 입고 나가려면 선풍기를 틀어 놓거나, 헝겊을 대고 다리미로 다렸다. 가시지 않는 냄새. 습기 찬 장마철이면 그것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그가 입원한 요양병원은 시가지를 벗어나 외곽지대에 있다. 도착했을 땐 어둠이 내린 지 한참이나 되었다. 병원 복도는 고요했다. 간호사는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중앙 스테이션 알림판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한 후 국경을 넘는 망명자 같은 초조함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다가서자 그는 일어났고 형광등 아래 얼굴은 유달리 창백해 보였다. 그의 환자복에선 경미한 나프탈렌의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처음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초점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기억하지 못함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 지가 오래 되었다. 한때 멀리 떨어져 있는 그와의 거리에 서운하기도 했다. 기억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억압해 가두어 버리기 때문일까. 우리 사이엔 살가운 감정이나 간직할 만한 추억이 별로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무료함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그간의 얘기들을 쏟아냈다. 조금의 치매 증세는 기억의 세트 장을 순서 없이 바뀌게 한다. 간간이 끊어지는 그의 기억이 휘발을 멈춘 나프탈렌처럼 환자복 안에 걸려 있는 듯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왔다. 면회가 늦다며 관계를 물었다.
  “가족 되십니까?”
  “저, 그게, 그러니까 ……”
  미리 준비해 둔 대답을 채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아닙니다. 가족은 무슨.”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늦은 시각이라 환자에게 방해가 된다며 돌아가라는 간호사의 말에 병실을 나올 무렵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메마른 온기는 나의 혈관을 타고와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부르는 음성처럼 들렸다. 그때 그의 동공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날 유학생활을 하며 언론사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며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노후를 맡길 작정으로 모든 것을 내어 준 아들을 향한 믿음은 견고했다. 가족 중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들은, 연이은 사업실패와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재산을 탕진했다. 결국엔 그 충격으로 쓰러졌고 다급해진 아들이 지인에게 사정하여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이곳이 간신히 들어오게 된 병원이다. 부양할 자식들이 없어야 입원이 가능한 곳이다. 면회를 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자식이란 사실을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며 신신 당부하던 오빠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병원 밖은 밤의 적요가 스민다. 별은 더욱 가까이 쏟아지고 바다는 호수처럼 정적이 인다. 저 멀리 제 온도가 식어 채도를 잃어가고 있는 별빛이 가까스로 바다에 몸을 누이고 유영한다.
  병원을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자신을 가두던 플라스틱 고리로부터 승화했다. 지난 시간의 회개였을까. 오빠는 아버지를 손수 단장(殮襲)했다. 그런 의식 속에서 자신을 씻어 내리려 했는지 모른다. 염습을 끝내고 입관을 할 때, 오빠는 미리 준비해 온 굵은 나프탈렌 덩어리를 시신 주위에 촘촘하게 놓았다. 창호지를 손바닥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오려서, 나프탈렌을 한 덩어리씩 싸서 관 안쪽을 삥 두른 것이다. 마치 영원히 상하지 않고 그 모습대로 있게 하려는 듯.
  나프탈렌은 적당한 거리에 두면 세상의 좀으로부터 의류를 지켜 주지만, 때로는 강력한 향으로 사람들의 후각을 마비시켜 악취를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날 아끼던 흰 옷이 서랍장 속에서 나프탈렌에 닿아 누렇게 변색되어 버린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 나프탈렌에 닿아 옷 위로 번지는 얼룩처럼, 아버지에게 오빠는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장롱 속의 옷과 같았던 존재가 아닐까?
  때로는 판단의 기준을 떠나 존재만으로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가 있다. 병실을 나서며 본 아버지의 눈빛이 허허로운 날에 떠오른다. 자신의 몸을 소멸시키는 희생. 나를 가족이라 밝히지 않은 건 나의 몫으로 돌아오게 될 부담을 생각한 마지막 배려였을까. 나는 무엇을 부정하고 인정했는가.
  생전에 거리감으로 서운했던 아버지로 인해 나의 삶도 좀으로부터 격리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혼자 시조를 짓고, 누가 듣거나 말거나 길게 창하시던 당신. 유달리 지적 방황이 심한 내가 문학의 길로 들어서면서 이제야 알게 되는 깨달음. 내가 가진 정서가 아버지에게 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세월이 가도 삭지 않을 슬픔 하나가 나프탈렌의 향을 무시로 바람에 실어올 것만 같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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