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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만 산문]]⑧'오래된 미래 '재부거제향인(일운면출신)/해운대구중동행정복지센터근무/시인/수필가./소설가

                      ⑧ '오래된 미래' 
                                                   김      경      만 

한가함으로 맞은 휴일 아침에 펼쳐 든 지역 신문의 문화면에 실린 ‘100일의 화려한 유혹, 여름 꽃 백일홍’이란 제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훌쩍 집을 나서 다녀왔던 선운사 경내에 붉게 피어 있던 백일홍 나무를 그대로 지면에 옮겨 놓은 듯한 사진이 나를 그날로 이끈다. 조금은 단순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갈바람 떠올리며 소풍 가는 소년이 되고 싶었다. 풍요를 준비하는 따가운 여름 들판도 누비고 꿀벌이 되어 백일홍의 연분홍빛에 숨어 있는 달콤함도 탐하고 싶었으리라. 높고 낮음을 개의치 않고 자유로운 바람처럼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은 힘겨운 내 미소는, 유랑하는 바람 나그네에게서 고움을 얻으려 하였다. 매년 도돌이표를 찍는 물빛의 향연, 이제 빗방울은 여름을 모두 삼킨 채 물의 감옥을 만들며 인간에게 고통과 시련을 안기고 있다. 그래도 빗방울 수만큼 행복을 지어내야만 하는 것은 어쩌면 과학에 의존하는 인간이 지니는 숙명이리라. 하여, 새벽하늘 드문드문 비추는 별 하나보다 미미한 한 존재는 자연 일부가 되어 보려 짙은 어둠 속으로 나아간다.

여행의 시작이다. 여행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양식을 키우는 활동이리라. 허물어져 가는 육체와 정신을 오감의 충족으로 존재감을 확인해야겠기에 사색적 여행을 해야겠다고 정하고 내면의 여행을 깊숙이 하리라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정신을 살찌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도 좁은 생각 틀에 갇혀 있다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방안에 갇혀 있는 이보다 나을 게 없기에 한껏 자유를 느끼는 여행을 하리라 다짐하였다.

이른 아침, 약속된 시간을 조금도 넘기지 않고 모두 모여들어 휘파람으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가 답사할 곳은 얼마 전 텔레비전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소개하여 널리 회자하는, 선사시대 숨결을 느낄 수 있고 고색창연하면서 흙냄새 가득한 전북 고창이다. 함께 한 이들은, 독서 단체에서 모은 30여 명 규모의 여행단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고장이라 소개되어, 자못 큰 기대감으로 매양 행복한 마음이 되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는 문명비평서인 ‘오래된 미래’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했다며 농경사회의 공동체적 삶의 양태가 작금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역기능을 해결할 대안임을 이미 책을 통해 역설한 바 있다. 왠지 이곳이 이러함을 느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 들녘 풍경처럼…….

일행을 태운 버스가 흙길에 멈추어 선 곳은 동학혁명의 고장 고창에서도 청동기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인돌 유적지였다. 그곳에서 옛 조상의 마을 모습과 삶의 채취를 누리고 새로

운 생명을 위하여 살았던 선사 인의 삶과 죽음을 그들이 남겨 놓은 문화 통해 공유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더불어 박물관에 들러 무한한 선사 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감동이었다. 다음으로, 조선 시대로 훌쩍 넘어와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고창읍성에 당도하니 푸릇한 숲과 잘 보존된 성곽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잠시 일행에서 벗어나 주변 볼거리를 찾으니, 판소리 여섯 마당 집대성자 동리 신재효 고택도 있었고 옆으로 동리 국악당을 비롯해 판소리 박물관이 현대 건축기법을 빌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분수대 옆에는 군립 미술관이 있어 들렀더니 무료로 관람하게 하여 주었다. 그곳에는 이 지역에서 배출한 근, 현대 걸출한 작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찾는 이가 많았다. 그곳을 나와 앞으로 향하니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 우뚝 서 있었다. 들어가 보니 고창 군립 도서관이다. 고창읍성을 뒤에다 두고 현대 건축물로 문화의 전당들이 조성되어 있어 신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대와 근대를 거쳐 현대를 아우르는 공존의 미학을 이루고 있는 고창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선운사다. 어느 시인이 노래한 선운사 동백꽃을 떠올리는데 버스는 홀연히 선운사를 지나친다. 도솔암 마애불을 먼저 만나러 간단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 놓은 부처님을 만나는 순간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하였다. 어쩜 그 형상이 다른 부처상의 근엄함은 쏙 뺀 채 선한 민중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곳이 예전부터 권력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었기에 탄압과 억압의 굴레에서 살았을 것이고 하여 이런 형상의 부처를 새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옛날부터 이 마애불 앞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숯덩이 가슴이 되어 복을 빌고 구원을 청하며 내세의 행복을 빌었을 우리 선조를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하게 저려왔다. 그들처럼 이 시간, 이 마애불 앞에서 가슴 속으로 반성의 마음을 가졌고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였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마음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를 경험한다. 고운 미소를 되찾아 삶에 온 힘을 기울이는 이가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여기에 서니, 이 세상에서 만나는 슬픔이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는 진리를 거두어 담게 한다. 사뭇 간절함으로 마애불의 그림자를 벗어나 종착지인 선운사에 도착했다.

주변 풍광이 아주 아름다웠다. 도솔천을 흐르는 물소리와 나뭇가지 사이로 스쳐 가는 바람 소리, 새소리 이 모두가 어우러져 청량감을 더한다. 입구의 도솔천이 흐르는 극락교 건너기 전 연리목 앞에 섰다. 연리목은 부모와 자식 간에 효를 상징하고 또 남녀 간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곳 연리목은 특이하게 느티나무를 사이에 두고 두 단풍나무가 뿌리로 연결되어 한 몸이 되어 있다. 가운데 느티나무가 질투하는 형상이다. 무언가 전설이 깃들어 있으리란 생각이 되었다. 몇 해 전 주례사에서 ‘하늘에는 비익조 날고 땅에는 연리목이 되도다.’라고 인용한 적이 있기에 연리목은 부부 금실의 표상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경내에 합장으로 들어서니 마당 한가운데 참으로 탐스럽게 백일홍이 피어 있다. 동백꽃 철이 아니어서 그 대신 배롱나무가 일행을 반긴다. 백일홍은 붉은 꽃이 100일 동안 피어 있다 하여 붙여진 다른 이름이라 한다. 꽃이 떨어지기 무섭게 꽃대가 생겨 꽃을 피우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무려 3개월 동안 꽃을 피운다고 한다. 다른 꽃들이 봄이면 다투어 꽃을 피우지만, 백일홍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한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붉게 피어 사람들에게 향기를 전하며 즐거움을 선물한다. 예전부터 청렴을 상징하기도 해 선비가 기거하는 집에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산중 산사에는 어김없이 붉게 피어 여름을 피해 산사로 찾아드는 속세 사람에게, 매끈한 줄기를 본받아 세속의 번뇌를 잊으라고 일러준다. 보는 것만으로 어느새 정화된 느낌을 가진다. 기쁨의 연속이다.

산사를 합장으로 벗어나 차에 오르며 마음을 갈무리해 본다. 이번 길 떠남을 통해, 조금은 식어가는 삶에 새로운 열정을 부여하고 싶었던 나그네는 오감을 통해 내면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일행을 잠시 벗어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가지기도 하였음을 고백한다. 고인돌, 읍성, 미륵불, 선운사, 백일홍, 문화 공간들, 이 모두와 어우러지니 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안내자는 연방 선운사의 꽃무릇을 자랑한다. 꽃무릇이 한창일 때 이곳을 다시 찾을 요량을 한다. 그리하여 겹겹이 둘러싸인 장막을 걷어내고 다시금 자아를 순수로 물들이리라.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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