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김경만 산문
[김경만 산문]⑨ '기억 저편에 잠시 머물러'재부거제향인(일운면출신)/해운대구중동행정복지센터근무/시인/수필가./소설가

⑨기억 저편에 잠시 머물러

선물 

 

붉게 타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으러 베란다 문을 열어 맑은 기운을 마신다.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정원의 모과나무 위에 까치 한 쌍이 사랑을 나누며 도심의 아침을 열고 있다. 상쾌한 기운이 몸을 감싸며 왠지 좋은 기분이 된다.

잠시 외출을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아이가 소란을 피웠다.
“아빠 소포 왔어요.”
하며 즐거움을 내밀었다. 열어보니 요즘 유행인 듯한 연한 하늘색과 베이지색 옷이었다. 내 눈에도 멋스러워 보였다. 소포 겉표지에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이웃에 살았던, 20년도 더 전에 소꿉장난하던 어릴 적 친구임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서울로 시집가 살고 있다는 소문만 들은 터라 놀라움과 함께 반가움이 묻어났다. 옷을 집어 들자 연한 분홍색 엽서 한 장이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놀랐지?’라는 첫말과 함께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자기가 옷 만드는 기술이 있어 직접 만든 것이라면서 우정의 뜻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모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되는 장애 극복 사연을 듣고 어릴 적 고향친구라 직감하고 방송국에 전화해 어렵게 알게 되었다 한다. 내가 겪은 시련에 가슴이 많이 아팠으며 무엇보다도 그동안 나를 뒷바라지한 아내의 고생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무언가 위로의 선물을 하고 싶어서 긴 시간 고민하고 준비한 것이라 했다. 이런 고마움과 분에 넘치는 사랑을 이렇게도 받을 수 있구나 싶어 가슴이 울렁거렸다. 얼마 전 다녀온 고향이 다시 그립기만 했다. 그 아이가 보고 싶고 같이 어울려 놀던 시냇가며 뜀박질하던 논두렁 밭두렁도 떠올랐다. 옛 벗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나 혼자 변한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되며 금세 고향으로 마음이 향했다.

옥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옥녀봉 산자락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거제도 한 마을. 바다 냄새가 종일토록 코끝에 와 닿아도 별다른 감응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육 형제 모두 장성하여 도회지로 나가 살고 덩그러니 큰집에 한가로이 노년을 즐기고 계시는 노부모가 계신다. 자식들 도시생활 권유를 철저히도 뿌리치시고 ‘여기가 최고여, 도회지에선 못 산다’고집하시는 통에 자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퍽이도 순박하신, 평생을 농군으로 사신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나눠 줄 쌀농사 조금과 토종벌을 기르시며 노익장을 과시하신다. 그런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자식들의 나들이 장소가 고향 집이기

를 고대하는 마음을 숨기고 살고 계신다. 그러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 우리 또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말해 무엇하랴. 다만 이 막내만이 씻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가 주신 몸을 다스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과로에 의한 뇌출혈로 쓰러져 한쪽 팔과 다리를 못 쓰는 지경이 되었으니…, 수술 후 뒤늦게 찾은 의식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는 부모님 비통한 모습, 마음이 고향으로 향할 때마다 그 모습이 떠오른다. 장애인이 된 후 친구를 붙잡고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형제들 앞에서도 서러운 눈물을 흘렸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눈물을 숨기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세월이 많이도 흐른 지금, 아내의 지극한 노력과 나름의 극복으로 행복에 겨운 모습은 보여주지 못해도 불행하게 사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삶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얼마 전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이들 독서 지도를 하며 봉사 정신으로 살아가려 다짐한다. 이런 나를 대신하여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억척스러운 여인이 되어버린 아내다.

‘당신 선물’이라는 짤막한 내 한 마디에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를 조용히 앉히고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이 옷이 내 손에 들려있는 사연을 설명했다. 그제야 고마운 눈을 하고서 입어보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갈아입고 나온 아내는 패션모델이 된다. ‘어찌 그리 꼭 맞춤인가.’ 즐거운 마음이 된 아내를 슬며시 안았다.
“여보 생일 선물이야.”
내일이 아내의 생일이다. 눈물 머금은 아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여보 고마워요.”

내일의 조촐한 생일상을 위해서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실로 행복한 마음이 되었다. 옛 친구가 보내준 고운 빛 담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임을 다시 느꼈다. 오늘도 내일도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날들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의 내 육체, 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굳세게 살아가리라. 마주한 이 행복이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소망하여 본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