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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박수경] 돼지국밥 한 그릇박수경 작가/ 계룡수필 회원

나뭇잎이 이리저리 나부낀다. 차창 밖이 어지럽다. 지지대에 얹힌 다리가 위태로워 보인다. 제법 멀리 떨어진 육지와 섬을 부여잡고 버티고 있다. 잠시 후면 그 위를 지나가야할 터인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바람이 분다. 수면을 빠르게 훑어 내리며 다가온다. 잔뜩 성이 난 듯 대기를 휘젓는다. 작은 차가 비틀거린다. 제 주인 덩치만큼이나 옹색한 바퀴가 안간힘을 쓴다.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에 부산으로 가는 걸음이 더 더디다.

최근 몇 달 동안 일요일마다 지나가던 곳이다. 익숙한 주변 경치가 그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비바람에 차체가 요동을 치는 것이 처음도 아니다. 평소보다 천천히 달리면 그만이다. 강철과 유리에 몸을 의탁한 채 그냥 갈 길을 가면 된다.

흔들린다. 몸도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빗방울은 어느새 줄기로 바뀌었다. 앞 유리를 향해 사정없이 달려든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와이퍼가 끽끽거린다. 괜히 고집 피웠나싶다. 그냥 집에 있을 걸 하는 후회가 그 뒤를 따른다.

아침 내내 남편과 투닥거렸다. 매번 혼자였던 길인데 남편은 안전을 운운하며 굳이 함께 간단다. 열시까지 교육장에 도착해야하는데 여덟시가 훌쩍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집에서 편히 쉬면되는데, 남편은 기어코 날씨를 들먹거리며 운전대를 부여잡는다. 시동을 켜는 순간까지 동승을 거부하는 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하다. 불평은 밀폐된 공간에 막혀 크게 울려보지도 못하고 사그라진다. 오후 여섯시까지 하는 긴 교육이다. 여덟 시간을 견뎌야 할 남편이 신경 쓰인다. 마땅히 있을 곳도 없다. 기껏해야 커피숍이나 북카페다. 쏟아지는 비에 그것마저 편치 않을 터이다. 그의 선택이지만 월요일에 출근 할 사람을 고생시키는 것 같기만 하다.

더 큰 걱정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다. 외동이라 덩그러니 홀로 남아 있어야한다. 게다가 두 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라면을 끓이거나 간단한 파스타 정도는 해먹는 아이지만 혼자 두는 것이 걸린다. 집에서 나올 때 손에 만오천을 쥐어주었다. 한 끼 정도는 식당에서 해결하랬다. 편의점 도시락도 맛이 괜찮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비가 올 줄 알았다면 배달음식을 시키라고 할 것인데 잘못했다 싶다. 휴대전화기라도 빼앗지 않을 걸.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해본다. 제 아빠가 집에 있을 때는 며칠도 걱정 없이 이곳저곳 다녔는데 아이 혼자라 생각하니 고작 열두어 시간이 지독히 길게만 느껴진다. 걱정이 꼬리를 문다. 곁의 남편에게 투덜대보지만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이미 교육장 안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생님도 수업 준비를 하며 분주하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산, 창원 등지에서 모인 이들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꾼다. 아이러니하다. 지금 순간이 힘들다. 수업 중간 중간 남편과 아이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어떻게 하고 있을지 염려된다. 치밀어오는 상념을 커피 한 모금에 목구멍으로 그 아래로 밀어낸다.

불현듯 잊혔다 여겼던 이전 기억이 떠올랐다. 불과 몇 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일이다. 굴 구이를 먹고 아이는 지독히도 아팠다. 일주일 정도 상태를 지켜봐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병원에 입원을 시켰지만 일을 가야했다. 업무 특성상 오전엔 아이 곁을 지킬 수 있었지만 오후가 문제였다. 막막했다. 몇 시간 후면 직장을 가야하는데 도움을 구할 데가 없다. 간병인도 여의치가 않다. 남편 역시 당장 올 수가 없단다. 기진맥진해서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아파 고생하는 아이를 혼자 두고 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옆 병상의 보호자가 딱했는지 자기가 봐줄 테니 얼른 다녀오란다. 다른 보호자들도 한마디씩 보탠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상황을 설명했다. 타인들로 가득한 낯선 병실이다. 아이는 설움을 토해냈다.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며 목 놓아 운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며칠 동안 열로 잠식당한 몸이다. 힘이 다했는지 축 늘어진다. 빨리 다녀오겠단 말을 뒤로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뗐다. 계속 뒤돌아보며 아이를 쳐다봤다. 침대가 크게 느껴진다. 구석에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눈물만 흘리고 있는 모습이 살이 되어 가슴에 콕 박힌다. 후벼 판다. 두 번 다시 혼자 두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더 이상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떠나는 엄마에게 가지 말란 말도 못하고 울음만 삼켜야했던 아이가 어른거렸다. 동그랗게 말린 작은 몸뚱이가 처연하다. 숨이 턱 막혔다. 곁에 있어줘야 했다. 그렇게 두면 안 되었다.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육장 문을 나섰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전 병원으로 가던 마음만큼이나 바쁘다. 혼자 남겨져 두려움에 떨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까 봐 무섭다. 그 외로움에 치떨며 현관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겁난다.

아이가 놀랬다. 어두워서야 돌아올 줄 알았을 터이다.
“밥은 먹었어?”
의아해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돼지국밥 사 먹었어.”
순간 맥이 풀렸다. 굶던지 아니면 기껏해야 라면을 끓여먹고 있을 거라 여겼는데 돼지국밥이라니. 게다가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마다않고 먹으러 갔단다. 나이 마흔이 넘어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사먹는 것이 쉽지가 않다. 고작 열네 살 사내아이다. 괜스레 곁에 서 있는 아이에게 다가서 어깨를 나란히 해본다. 높이를 재본다. 이젠 비등하다. 키만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어린애로 남길 바란 건 내 욕심인가 싶다. 눈높이가 비슷하다. 별 차이가 없다. 이전엔 항상 내려다봤다. 작고 연약한 존재였다. 보호가 필요하다 여겼다. ‘착각이었구나.’ 비로소 깨닫는다. 여러모로 고마운 아이다. 해준 것도 없는데 잘 자라줬다. 늘 사랑한다고 쉽게 말로만 때웠다. 남들처럼 비싼 옷을 사준 적도 없고, 누구처럼 학원을 보내준 적도 없다. 심지어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했다. 미숙하고 어설픈 엄마다.
“아…… 그랬구나. 잘 했어. 맛있었어? 국수사리는 몇 개나 먹었니?”
오만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부러 소리가 커진다.
“국수사리는 두 개 먹었어. 비가 와서 그런지 뜨뜻한 게 맛있더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에 마음이 놓인다. ‘그래, 그랬구나.’ 안심이 된다. 아이는 이미 저만큼 컸다.

환기를 시킨다. 하루 내내 굳게 닫힌 창문이다. 온종일 내린 비에 집안이 꿉꿉하다. 제습기를 켰다가 이내 껐다. 빠르고 쉽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거슬린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다. 온몸을 휘감는다. 괜찮다하고 토닥여준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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