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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만 산문⑭] '어머니의 기억을 만나다'재부거제향인(일운면출신)/해운대구중동행정복지센터근무/시인/수필가./소설가

⑭'어머니의 기억을 만나다'
                               
김    경    만

그리움을 앞세우고 비 내리는 길을 달려 도착한 고향 집은 텅 빈 낯섦으로 나를 반긴다. 어머니를 반가이 불러도 빗소리에 후드득 묻혀 버린다. 별다른 연락 없이 안개 자욱한 고갯길을 돌고 돌아 부모님의 화들짝 반기는 모습 속으로, 그 따뜻한 가슴에 안겨 보리라던 아들의 계획은 빗나가고 서운함이 인다. 궂은 날씨인데도 마실을 가셨나 보다. 이부자리 밑으로 손을 넣으니 온기가 남아 있다. 아마도 아픈 허리를 달래다 막 나가신 모양이다. 밀려드는 피곤함으로 이불 속으로 몸을 눕히니 스르르 잠이 밀려온다. 3시간 넘게  쉬지 않고 내달렸으니 지쳤으리라.

큰 정자나무 아래 아버지와 장기를 둔다. 매미 소리와 어울려 뚝딱거리는데 저만치 어머니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미소 지며 온다. 내려놓은 광주리엔 김이 모략거리는 고구마가 담겨 있다. 벌겋게 잘 익은 김치를 고구마에 얹어 입안으로 넣어 준다. 아버지 눈치를 보며 한입 가득 베어 문다. 꿀맛이다. 아버지 너털웃음이 뒤따른다.

누군가 내 몸을 만지는 느낌에 달콤함이 이내 가시며 눈이 뜨인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 듯 소리가 요란하다. 거칠지만 사랑이 가득한 손이 굳어 있는 내 팔을 분주히 오가며 주무르고 있다. 손에 더한 힘이 들어가며 다리께로 옮겨 주무르기는 계속된다. 부처님을 찾는 듯하다. 부디 원래대로 돌려 달라며 애원하는 그 마음속에 내가 들어간다. 아! 어머니, 죄스럽습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속울음으로 삼키며 한참을 더 사랑을 받는다. 얼마 후 짐짓 그제야 깬 듯 어머니를 부른다. 마주한 주름진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한이 되어버린 자식의 몸뚱이 앞에서 한숨 섞인 눈물을 흘리신 것이리라. 다시금 어금니를 깨물고 나서야 엷은 미소를 시작으로 막내의 응석이 시작된다. 철부지 막내아들이 되어 드리는 것도 그저 한순간 당신께 행복이길 바라며…….

일어나려는 몸을 다시 눕히며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우짠 일이고?  연락도 없이, 날씨도 궂은데. 집안은 편냐?"

 쉬지도 않고 묻는다. 이것저것 사는 모양을 더 묻고는 이불을 여며 주시곤 조금 더 쉬라며 나가신다. 부엌 쪽에서 상 차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당신의 품 안이라면 전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합장하며 가슴으로 빌어 본다. 어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연못이 생각난다. 체의 그물처럼 가는 물살이 곱게 이는 소담스러운 연못이. 내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정화수 떠놓고서 자식의 소생을 위해 새벽마다 빌었다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 붉히던 모습이 달빛 모은 연못에서 피어오르곤 한다. 지성으로 빌고 비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연못에서 아른거린다.

비 갠 다음날 어머니가 종종 들르시는 조그만 연못이 자리 잡은 암자인 영은사에 갈 생각을 하였다. 그곳에서 은은한 풍경소리, 깨우침의 목탁소리 들으며 부처님 큰 뜻을 담아 와야 하리라. 그곳에서 어릴 적 친구를 비구니 모습으로 만났다. 그저 눈을 맞추며 합장만 나누고 스치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 스님과 긴 대화는 어려움이 있는듯하여 그렇게 인사만 나누었다. 다음번 고향 찾는 길에는 들러 풍경소리 들으며 차 한 잔 나눌 수 있으리라. 산사를 내려와 그리 멀지 않은 외가가 있던 동네에 가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하였다. 지금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연고는 없지만, 어머니 어릴 적 추억이 머물고 있을 그곳에 가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옛 얘기를 들을 요량으로. 어머니에게 예 친구를 만나는 기쁨을 드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잠깐 들른 가게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가 어머니 소꿉동무라고 한다.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세월을 느낀다. 어머니 추억을 더듬어 드리고 싶은 것은 늙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안타까운 마음이리라. 기뻐하는 모습에서 덩달아 즐거운 마음이 된다.

세대 간 문제나 삶과 죽음에 관해 다룬 작품에 수여되는 크로노스 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에르베 자우앵의 ‘할머니의 기억’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열세 살 소녀의 시각으로 할머니의 치매를 가족의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 통해, 따스한 사랑과 굳건한 희망을 만난 기억이 떠올랐다.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고 내 부모 이야기이기에 작가의 문제의식이 절절하게 다가왔었다. 기억은 살아가며 겪은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기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할머니의 알츠하이머병 극복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 사무치게 아름답게 다가왔었다.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에서는 영원한 기억을 가진 죽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는 없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삶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며 살다가 영원한 안식처로 가는 삶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된다. 열세 살 소녀의 말이 울려온다.
‘나는 할머니의 기억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 내가 기억을 잃을 차례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란 멈추게 할 수 없고, 흐르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만, 흘러간 시간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기억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더욱 선명해지는 것도 있다. 우리 가슴에 숨겨져 있는 예 추억이 그러하고 영혼 속에 피어 있는 어머니 사랑이 그것이다. 그 사랑이 날마다 나를 일깨운다. 어머니 기억이 가지는 소중한 의미다. 삭막하게 변해 가는 세상이지만 그 사랑의 기억이 절절하게 남아 있기에 떨어져 있어도 세월을 견딜 수 있다. 사람들은 세월을 닮아간다. 인고의 세월이 나에게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흐르는 세월 속에서 사랑했던 것을 잃어버리는 우리가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억으로 그것을 다시 찾아야 한다. 언젠가 다시 찾을 그 기억을 위해 다녀왔던 고향 길을 회상하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당신을 떠올리며 지쳐 가는 삶에 힘을 넣어 봅니다. 부디 사는 동안 기억을 놓으시진 마소서. 영원한 안식 후에는 못난 이 자식이 어머니의 기억을 대신 해 드리리다. 내 기억을 잃게 되는 죽음의 그날까지는.”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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