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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정순] 괜찮아, 괜찮아이정순/수필가/길 위에서 저자/거제수필문학회 회원

낙엽이 지고서야 겨울을 느낀다.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보낸 세월이 계절만 잊은 게 아니고 절필과 무기력이 함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축 져진 내 모습에서 나를 건져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첫 시도가 다시 글을 쓴다.

글이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활기와 내 자존감을 지켜 왔으니 잊은 듯 내재된 이 열정이라도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노트북을 연다. 하지만 삶 어느 길목에서 내 용기는 이리도 철저히 꺾이고 만 것인가.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나 자신은 작고 초라한 존재로 서 있다.

어느 이름도 성도 없는 들꽃처럼 빛을 잃고 그냥 이렇게 이 들꽃 옆에 머물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다 말라 가는 들꽃 한 송이를 꺾어 쥐고 차가운 돌부리에 앉는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은 무기력으로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에 시선을 꽂는다.

어쩌면 이 알 수 없는 감정과의 싸움은 눈 감는 그 시간까지 동행하려니. 어느 장소에 가느냐에 따라 노인이 되기도 하고 중년이 되기도 한다. 이런 복합적 요소로 결국 정체성이 흔들린다. 추구하는 사물도 삶의 방향도 버리고 정리하며 세상 변화에 맞추기보다 포기하는 것도 문화라 변명한다.

자주 일관성도 주관도 없어지니 사회에서는 노인 취급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 활동을 꺼리게 된다. 돌아보면 치열하게 산 세월도 있었고 몰라서 놓친 것도 많다. 열심히 산 시간도 즐겼던 시간도 상처투성이다. 그런데도 큰 후회 없는 지난날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한 순간에 지나 버린 각자 개인의 삶이 모두에게 서로 비슷한 상처가 있을 테고 비슷한 희열 또한 있을 것이다.

굳이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 버린다. 수많은 군림체로 형성된 몸도 여기 저기 쑤시고 의지력은 약해질 때가 잦다. 그때서야 낸 몸을 함부로 혹사시킨 후회도 온다. 산다고 발버둥 친 시간이 제 자리에서 공하고 공한데 깨닫기에는 항상 한 발이 늦다.

이런 생각과 발상과 희로애락이 주는 고뇌가 깊은 날엔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게 상책이다. 그러다 보면 이 마저도 삶의 무상함 그런 삶이 켜켜이 쌓일 것이다. 예순도 청춘이었다고 위로하며 칠순을 넘기고 팔순을 맞은 어느 지점쯤에서 굴곡진 삶이 결국 잘 다듬어진 평행선을 그을 것이다.

하루를 헛되니 보내지 않으려 계획하는 건 천방지축 살기보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함부로 살지 않을 의지도 키운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질 때는 옷이 젖을까 봐 움츠리지만 온 몸이 젖으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하여 현재 몸이 다 젖지 않은 한 두 방울의 비를 맞는 중이니 괜찮아 괜찮아.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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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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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취 2020-02-04 21:32:26

    결국 굴곡진 삶이 평행선을 그을 것이다. 예순도, 일흔도 청춘이었다고 위로하며....
    잘 읽었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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