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심인자 수필
[심인자 수필19]'한 삶에 대하여'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한 삶에 대하여
                                     
                                  심 인 자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인간극장’이라는 프로다. 난 이 프로그램에 푹 빠진 열렬 팬이다. 드라마는 연극이고 허구지만 인간극장은 꾸며진 드라마가 아니다. 실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과 애환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참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장수프로그램이 된 것이고 나 역시 변하지 않는 애청자가 된 것이다.
   인간극장의 주인공은 어둠 속에 피어난 한 떨기 꽃이다. 태양 빛이 스며들지 못할 만큼 깊고 어두운 곳에 주인공들이 힘겹게 서 있다. 지치고 힘든 세파가 몸과 마음에 배어있지만 그들에겐 지니고 있는 절대적 힘이 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래서 꽃인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닥쳐오는 운명을 가감이 개척하는 그들이기에 오히려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는다. 어떤 이는 마음이 아파 채널을 돌린다했다. 그러나 난 아니다. 그들의 삶 속에 끼어든다. 매주 바뀌는 사람들 모두가 내 가슴에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잊지 못하는 것은 ‘친구와 하모니카’다. 요청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방송과 특별방송으로 친구와 하모니카는 두세 번 더 방영되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친구와 하모니카 속엔 하늘이와 두한이, 그리고 석현이가 산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도 나랑 상관없는 그들을 오래도록 내 속에서 놓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정리가 되지 않았는지 몇 줄 적지 못한 채 눈물만 앞섰다. 써야지 하면서도 미뤄둬 늘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오늘 밤 문득 늦은 시간에 켠 텔레비전에 그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리움이 밀려왔다. 지금 현실에서는 사라진 한 사람과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며 지낼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밀쳐 두었던 묵은 원고를 끄집어냈다. 오늘은 속 시원히 그들의 얘기를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하늘이와 석현이는 노숙자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사고무친 비렁뱅이다. 비바람을 피해 지하철 바닥에서 신문지를 이불 삼아 밤을 보내는 무리와 생활한다. 직업도 없다. 이름 대신 붙여진 ‘노숙자’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확실한 이력이다.
   하늘이는 한쪽 팔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다. 말도 어눌하다. 먼 하늘을 하릴없이 쳐다봐 하늘이라 불려진 게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그는 자신만이 아는 곡조로 특별한 사람에게만 하모니카소리를 들려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불명의 곡이지만 듣는 이에겐 큰 활력이 된다. 낡은 연습장에도 역시 정체불명의 그림과 글이 쓰여 있다. 무엇보다 하모니카를 불면 행복하다는 하늘이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티가 역력하다.
   두한이는 노숙자가 아니다. 가족도 있다. 그럼에도 거의 그들과 생활하다시피 한다. 스무 살이 넘은 건장한 청년은 틈날 때마다 어두운 지하를 찾는다. 불편한 하늘이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를 돌본다. 호주머니의 용돈을 털어 밥을 사 먹이고 어눌한 하늘이의 말을 항시 들어준다. 그 역시 말이 조금 어눌해 보인다. 하늘이가 어림잡아 사십대라면 두한이는 이십대로 턱없는 나이 차이다. 나이 차를 초월한 돈독한 우정이 정말 눈물겹다.
   또 한 사람, 석현이다.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찡해온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가 나타나 반가웠지만, 예전의 사람이 아니다. 석현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고 산발한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다. 일년 사이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하게 했는지. 놀랄 정도로 망가져 버린 그는 시중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해댄다.
   이 프로는 2002년 2월과 4월, 두 번에 걸쳐 방영되었는데, 예전의 그는 멋졌다. 노숙자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색이 말쑥하고 귀티 나는 얼굴이었다. 논리 정연하여 똑똑했고 비굴한 기색 없이 당당해 보였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기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한탄하지 않았다. 자신도 오갈 데 없는 노숙자이면서 먹을 것을 챙겨들고 굶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살폈다. 며칠 굶다 보면 남을 위한 배려는 이미 상실돼 나 밖에 모른다는데. 고달프고 어두운 길모퉁이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거리의 천사였다. 불편한 하늘이를 늘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노숙자인 그를 처음 보면서 참 잘 생긴 남자라는 생각을 했다. 밉지 않은 얼굴이었다. 남자인데도 눈이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슬퍼 보였다. 석현의 출생을 알게 되고, 무적자(無籍者)로 살아온 삶을 보면서 왜 그토록 슬픈 눈빛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그는 자꾸 울었다. 왕방울만큼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야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감지했던가. ‘죽지 못해 사는 산송장...인간거지 김석현...’ 두서없이 내뱉는 혼잣말은 철학이 담겨 있는 자학이었다. 앞전 방송과 달리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황폐해져 버린 까닭이 무엇인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내 마음을 아리게 하던 석현이가 가버렸다. 이제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갔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 사망신고도 없는 마흔 하나의 생이 끝났다. 무연고자 묘지에 한 뼘 땅을 차지하고 누웠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이제 완벽하게 흔적이 지워지는 순간이다. 세상에 태어나 당연히 남아야 할 흔적이 그에게만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슬픈 일인지 석현이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없이 슬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건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난 친구와 하모니카를 잊지 못한다. 하늘이와 두한이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그러나 곧 석현이를 떠올리게 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른 이는 살아있고 그가 세상을 떠나서 만은 아니다.
   석현은 현대판 김삿갓 인지도 모른다. 그의 등엔 멍에가 씌워져있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알 길 없으나 아버지가 목매달아 자살을 했다. 여섯 살 된 어린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고 어머니 또한 개가를 했다. 그런 어머니가 석현이 나간 후 자책감에서인지 자살했다는 불행한 가족사를 걸머진 채 방랑 걸인으로 사십 생을 살다 이제 떠나갔다.
   그는 호적이 없는 대신 자신의 흔적을 사람의 마음에 새겨두려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제 석현은 무적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였다. 인정 많은 천사였으며, 멋진 철학자였음을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시키고 떠난 것이다. 나 혼자만 그를, 그의 순수하고 바른 마음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모두가 그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안 것은 네 번째 방송을 보고서였다.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막을 내릴 때까지 난 영원한 팬으로 남을 것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다. 즐겁기보다 가슴이 절절(切切)한 사연뿐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꺼지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이웃의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또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라마가 아닌 참 이야기가 켜켜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