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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섭:특별기고③]-근현대 한국문학을 이끈 ‘러시아문학’-기획<3>박기섭/전 러시아 프리마미디어 한국특파원/전 월간거제 발행인

“한국 문학소녀치고 푸쉬킨· 톨스토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글 싣는 순서
①조선을 사랑한 레닌
②연해주의 눈물,조선의 눈물
③근현대 한국문학사를 이끈 러시아 문학
*이 기획기사는 기고문으로 본사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편집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시 ‘삶’은 한국인들의 정서에 깊숙이 녹아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시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어서는 이 시를 인용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했다. 특히 고단한 산업화시대를 거치던 한국인들에게 있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푸쉬킨의 시 구절은 격려와 위로를 주는 활력소였다 “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 보상도 요구하지 마라/ 네 자신이 너의 최고 재판관이다/ 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 푸쉬킨의 또 다른 이 시는 산업화시대의 끝물에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민주화의 출발선상에서 고민하던 한국의 대학생들은 푸쉬킨이 전하는 ‘고독’ ‘자유’라는 단어에 고뇌 하면서 삶의 방향을 정립하기도 했다.

나타샤!’, 한국의 문학소녀들은 이 이름만 들어도 영화 ‘전쟁과 평화‘를 떠올리며 가슴이 설레었다. 한국의 문학청년들은 ‘안나카레리나’의 비극적 결말에 슬픔을 같이했다. 이들은 다른 한편으로 톨스토이 소설의 명대사를 인용하며 나름 문학수준을 뽐내기도 했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촛불을 꺼버려도 되지 않을까?” “내가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하고 있기에 이해되는 것이다”라는 톨스토이 소설의 명대사들은 그 시대 청춘 남녀들에게 최고의 유행어였다.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트예프스키, 체홉에 이르는 러시아문학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세계문학의 중심에 위치했다. 특히 한국 근대문학의 초기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 거의 100년에 걸쳐 한국문학을 인도했다.

한국의 문인들이 러시아문학에 빠져든 이유는 러시아문학이 내포하고 있는 ‘전 세계적 보편성’과 연관이 있다. 러시아문학의 타스카(우수 또는 향수) 정서와 한국인들의 ‘한’의 역사가 동질성을 같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문학은 러시아인의 멘탈리라고 일컬어지는 러시아인들의 ‘전 세계적 반응’에 바탕 한다. 러시아인들은 타인, 타 종족, 이민족의 감정 나아가 그들의 사상을 마치 자신들의 것 인양 받아들이는데 있어 세계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다. 그 이유는 다민족국가로 이루어진 러시아의 특성과 십여 개가 넘는 국경이 가져다주는 지리적 요인에 있다. 이러한 특성이 톨스토이, 푸쉬킨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다. 토스트예프스키는 푸쉬킨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응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푸쉬킨이다.”

한국의 대문호, 한국의 천재라 불리우는 이광수는 톨스토이를 매우 사랑했다. 톨스토이 소설에서 나타내는 인본주의는 그를 매료시켰다. 그는 톨스토이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고 그의 작품 속 곳곳에서 톨스토이의 흔적이 발견된다. 1909년 무렵, 젊은 청년 이광수는 톨스토이를 처음 접했다. 1910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톨스토이 추모제를 여는가 하면 자나 깨나 학생들에게 톨스토이를 소개했다. 1920년대 이광수는 조선 문단에 우뚝 서자 여러 신문사나 잡지에 톨스토이 인생관을 소개하는 ‘톨스토이 전도사’를 자처했다. 이처럼 톨스토이에 빠져든 이광수는 그의 역작 ‘유정’을 통해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그려냈다. 이광수가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작품 ‘유정’은 1933년 조선일보에 76회에 걸쳐 연재됐다.

유정’의 배경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이다. 주인공이 시베리아 산림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주인공의 생은 히스테릭한 부인 때문에 말년이 불행했다. 의부증이 병적인 부인 때문에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죽기위해 조선에서 시베리아로 갔다. 부인 소피아와의 갈등으로 인해 가출했다가 시골 간이역 아스타도에서 죽음을 맞이한 톨스토이의 최후와 유사하다.

이광수를 톨스토이로 인도한 사람은 홍명희(조선독립운동가.전 북한 부수상)였다. 당시 이광수. 최남선(조선건국훈장.독립유공자)과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불리었던 홍명희는 톨스토이의 위대성을 이광수와는 다른 관점에서 논했다. 그는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탁월한 리얼리즘의 성취에 있다고 평가했다. 톨스토이의 민중적 리얼리즘을 동경한 그는 대작 소설 ‘임꺽정’을 생산했다. 소설 ‘임꺽정’은 식민지 조선의 불쌍한 민중들의 처절한 삶을 그려냈다. 나아가 주인공 임꺽정이라는 반골 혁명가를 통해 민중의 저항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다.

초창기 홍명희는 톨스토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홍명희의 냉담한 비판적 자세는 톨스토이 예술론을 깊이 연구하면서 핵심으로 접근했다. 제대로 된 번역본 ‘부활’ ‘안나카레니나’를 접하면서 홍명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턱이 떨어질 정도로 보고 또 보았다.”고 홍명희는 후일 회상했다. 홍명희는 결정적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톨스토이의 역작을 맞이하면서 그의 포로가 되다시피 했다.

또 다른 천재 최남선은 1908년 잡지 ‘소년’을 창간하면서 첫 회부터 온통 톨스토이 이야기로 도배를 했다. 제 2권에는 톨스토이를 “현시대 최대 위인=그리스도 이후 최고 인격”으로 소개했다. 민족주의자 최남선은 톨스토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민중들에게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던져주고자 했다. ‘안나카레리나’의 조연 농부 플라톤을 통해 수백만 민중들이 소리 없이 만들어 가는 역사를 깨닫게 했다. ‘부활’을 통해 “한사람을 구하는 것이 전 인류를 구하는 것과 같다”라는 인본주의를 전파했다.

톨스토이,‘창조적 반항’ ‘금지된 것에의 도전’정신 전파

톨스토이의 사회성과 인간성을 담고 있는 참여적 작품들은 당시 조선의 내노라 하는 문인들에게 크나큰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창조’ ‘폐허’ ‘백조’에서 필명을 날리던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 한국의 대표 문인들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전율을 느꼈다. 톨스토이는 이 책에서 “신은 종교인들이 말하는 절대자 조물주가 아니라 진실에 가까운 존재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서구의 기독교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던 이들 문인들은 톨스토이로부터 ‘창조적 반항’과 ‘금지된 것에의 도전‘정신에 눈을 떴다. 나아가 도덕적 무소유와 비폭력 정신을 배웠다. 인도의 간디가 톨스토이로부터 비폭력 독립운동의 영감을 얻었듯이, 한국의 많은 문인들은 시, 그리고 소설을 통해 톨스토이 예술론을 조선 민중들의 계몽운동으로 승화시켰다.

1920년대 초에 들어서자 조선 문단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문학가들 사이에 개인의 일상사, 가정문제 등을 주제로 하는 다소 허무주의적 분위기가 일소되고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비판적 사실주의 경향으로 급격하게 변했다. 김동리의 ‘배따라기’ 현진건의 ‘빈처’등이 대표적 작품들이다. 1920년대 말에는 계급주의적, 사회주의적 경향의 소설 최서해의 ‘탈출기’가 발표돼 문단의 이목을 끌었다.

톨스토이의 한국문학 길잡이는 연대를 이어 계속 이어졌다. 1930년대에는 이효석의 ‘깨뜨리는 홍등’ 이기영의 ‘부역’등 계급 이념적이며 당대시대를 고발하고 사회적 모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실주의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1940년에는 김동리가 소설 ‘역마’를 써 보편성에 토대를 둔 인간상과 사회상을 그려냈다. 해방이후에도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계승되어졌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인간성 상실의 역사적 체험을 통해 인간주의를 표방하는 황순원의 ‘학‘등 실존주의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1960~1980년대까지 톨스토이의 자취는 한국문단에 대하처럼 거대하고 묵묵히 흘러갔다. 권력에 대한 비판, 소외계층, 빈부격차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의 주제가 한국문단의 대세였다. 특히 1970년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은 톨스토이의 인본주의, 저항주의의 결정판이었다. 이처럼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근 100년의 세월동안 한국문학과 호흡을 같이했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문학의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토스토예프스키는 어떤가. 톨스토이 문학이 인본주의를 깔고 있는 대 서사시적 소설이었다면, 토스토예프스키는 다소 보수적이고 통속적이나 드라마틱 했다. 그것도 비극적으로 드라마틱 했다. 톨스토이보다는 사회성 ,이념성은 덜했지만 여러 명의 주인공들을 소설속에 등장시킴으로써 소통과 평등을 강조했다. 그의 걸작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독자들에게 현실적인 화두를 던짐으로써 당시 조선 문단에 화제를 모았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묻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1920년대~1940년대 조선 문단을 휴머니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탐구하는 휴머니즘적 문학 작품이었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한국 사람들은 영국의 세익스피어나 미국의 헤밍웨이는 희미하게 기억하지만, “톨스토이” 하

프리마미디어 한국 특파원 박기섭 기자 (ajr328@naver.com)

면 어렵지 않게 떠올린다, 소설 ‘전쟁과 평화’와 ‘안나카레리나’ 때문이다. 이 소설들은 한국인들이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문학교실을 통해,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오랫동안 이웃했었다.

한국의 한 유명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무인도에 단 한권의 책을 가져가야 한다면, 소설 ‘안나카레리나’를 갖고 가겠다.” 또 다른 소설가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이처럼 러시아문학은 수많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대하처럼 거대하고 묵묵하게 흐르고 있다.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 또한 100년의 시공을 넘어 아직도 한국인의 삶속에 녹아있다. 전쟁의 시대든, 냉전의 시대든, 어느 시대든 러시아문학은 한국문학의 심연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박종소(2010), 레프 톨스토이 생애와 문학의 현재적 의의(지식의 지평 8)
엄순천(2010), 한국문학 속의 러시아 문학(인문학연구 35-1)
김진영(2017), 시베리아의 향수(이숲)
김진영(2017), 톨스토이냐 도스토옙스키냐: 근대기 러시아문학 독법과 수용의 문제(비교한국학 25-2)
이현우, 로쟈의 러시아문학기행 II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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