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김경만 산문
[김경만 산문집2]②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것'재부거제향인(일운면출신)/해운대구중동행정복지센터근무/시인/수필가./소설가

②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것

해운대 달맞이언덕을 따라 송정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포구가 청사포이다. 동해의 시작점인 해운대와 송정 사이에는 미포, 구덕포와 더불어 아름다운 청사포가 해안가를 수놓는다. 이곳의 일출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해안을 따라 지나던 동해남부선 열차는 영영 회귀하지 않을 심산이다. 파리하던 포구에 황홀경이 내려앉았다. 그 고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하얀 카페 3층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몇 날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오늘은 퇴고할 요량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커피 향이 고소하다. 바다의 풍요가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경이로운 저 윤슬이 나를 기쁨으로 미소 짓게 한다. 바다 앞에선 모두가 파랑….
 
천성산 남쪽 기슭에 웅장한 폭포를 머금은 청룡사에 벗들과 나들이를 하였다. 바다에 살 물고기가 목어로 잠든 산사. 비 갠 뒤라 거대하게 내리꽂는 폭포 물줄기가 청량감을 더한다. 계곡에서 발 담그고 늦봄의 정취를 맘껏 즐기고 내려오는 길에 해우소에 들러 시름 내려놓는데 시선을 빼앗는 글귀가 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버스에 올라서야 지갑을 놓고 온 사실을 깨닫고 쩔쩔매는 아주머니에게 ‘다음에 두 배로 내세요.’라고 말하며 선하게 미소 짓는 기사 아저씨의 넉넉함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우연히 접한 글이 나를 기쁜 마음으로 이끈다.
‘살아가며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화두다.

내가 읽는 책은 늘 웃고 있었다. 그래서 내 문학은 미소다. 더불어 삶이다. 가슴속에 부풀었다가 터지는 그 무엇이다. 끝내는 눈물이다.
혼자 걷는 길에는 그리움이 있다. 어제도 오늘도 눈을 뜨면 길을 나선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자꾸 하늘을 본다. 하늘 냄새가 너무 좋다. 가녀린 잎새의 떨림은 그대 눈물인가. 걸음을 멈추고 빨간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담아 본다. 하늘과 논다. 어찌 이 아름다운 하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이 좋다. 파란 화선지에 그려지는 구름이 너무도 예쁘다. 자연의 선물이다. 이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감동할 수 있는 감성에 감사한다. 오늘따라 하늘 냄새를 풍기는 이와 함께 걷고 싶다. 눈으로 보고 마음 통해 무한히 넓은 공간 느끼니 마음이 탁 트인다. 어느 순간 갑갑함이 느껴진다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내가 머문 공간 너머로 드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을 가두는 것이 내 마음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시선을 마음으로 돌리니 지금껏 발견 못 했던 여러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금을 사랑해야 희망의 미래가 있다. 새해 첫날 동해에 힘차게 떠오르는 해가 가슴을 붉게 물들이면 절로 뛰는 가슴이 되며 우리를 벅차게 만든다. 지난날 모든 어둠 먹고 앳된 얼굴로 말갛게 떠올랐다. 저 해가 떠 있는 시간만큼은 정의로워야 할 것이다. 불타는 태양을 향하고 있으면 내 어두운 기억은,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호랑지빠귀 한 마리, 내 그림자 향해 휘파람 소리로 운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에서 피어나는 그 황홀함은 정녕 우리에게 희망을 건넨다. 겨울 온기 짊어진 바다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햇살처럼 맑게 들려온다. 저 대나무 숲에 숨어있는 봄처럼. 순결한 설렘으로,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너와 더불어 긴 삶의 여행을 떠난다.
 봄이다. 꽃이다. 봄꽃이 안차게 피어난다.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다. 산수유가 노랗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개나리만이 봄이 되어 더 노랗게 웃을 수 있다. 진달래도 피었다. 목련도 피어난다. 수선화도 튤립도 붓꽃도 피었다. 온통 꽃 천지다.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벚꽃 축제가 나비를 초대한다. 찔레꽃은 벌을 부른다. 조팝이 길옆에서 터져 흐드러졌다. 바라보는 사람들 미소가 송골송골 피어난다. 콧노래가 각인되고 있다. 찻잔에 국화 다섯 송이가 정답게 미소 지으며 피고 있다. 너를 마시며 봄 향기에 젖어 든다. 이 봄이 농익으면 메꽃이며 접시꽃과 백합도 그리고 화려한 능소화도 덩달아 피어나겠지. 백일홍도 연하게 피어나 여름을 부를 것이다. 내 곁에서 꽃피는 당신,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시인은 노래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고. 얼어 있던 세상이 화들짝 흔들리며 꽃

을 틔웠다. 순수와 평화가 넘실거린다. 이 산 저 들녘, 산속 옹달샘에도. 등대처럼 외로운 사람들 다 모여든다. 정신없이 흔들리며 걸어가는 삶. 그들을 온전하게 보듬는다. 봄꽃 테라피. 손으로 즐긴다. 눈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맡는다. 이 환희의 봄에 안겨 전율한다. 내 오른손엔 ‘금정산’만한 긍정을, 내 왼손엔 ‘낙동강’만한 기쁨을 안는다. 꽃도 한 철 사람도 한 생. 좋은 것은 쉬 지는 것. 화들짝 피었다 진들 어떠하리. 마음에 고운 꽃물 들였으니 이만큼이면 족하다. 이제 꽃비로 지고 나면 푸릇한 이파리가 새하얀 미소를 지으리라. 생을 다해가는 너를 위로하며 그래도 웃는다.

삶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고향 내 바다에 해안가 따라 갈맷길이 길게 열렸다. 바람 따라 걷는다. 날아가는 갈매기여. 고뇌로 가득한 가슴으론 이 봄을 자유로이 날 수 없다. 크게 들숨을 마신다. 산그늘 아래로 졸졸 봄이 내려온다. 바다에 섰는데 나무 냄새가 난다.
바다에 서면 그리움은 내 몫이다. 길게 날숨을 뱉는다. 흔들거리며 걷는다. 세월이 지나간 자리는 내 몸이 아는데 저 푸른 바다는 더는 흔들리지 말라 한다. 은빛 윤슬이 수평선까지 멀찍이 빛나고 있다. 갯내음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그들과 함께하니 내가 바다가 된다. 여린 길이 되었다. 파랑이 내 몸을 물들인다. 스쳐 지나는 연인의 다정한 얼굴을 만난다. 이내 파란 미소를 나눈다.

누구에게나 병마는 찾아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암이라는 존재가 현대인의 삶을 위협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벗의 아내를 보며 마음이 뜨거워졌다.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정도의 그녀가 말이다. 친구 아내의 고운 모습에 안도했고 곁에서 정성스레 간호하는 친구가 존경스럽다. 아~ 이것이 부부구나. 한쪽이 기울었을 때 떠받쳐 곧추세워 나란히 가려 애쓰는 것. 위로하고 위안 받는 이들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성공적인 수술이란 말을 하며 그가 선하게 웃는다. 연한 미소로 친구의 어깨를 토닥인다. 빠른 쾌유가 있을 것이야…. 돌아서도 그녀의 하얀 미소가 지워지질 않는다.

어쭙잖은 시인이 되어 고향을 노래하는 사내의 안타까움이 애절하다. 어설픈 시가 잡혀 왔다. 그의 노래가 멀리 바다에 퍼지면 애잔한 미소가 지어진다. 신열을 앓아 뜨겁던 대지도 바람의 빛깔을 알아챈다. 달아오르던 시간 동안 자라서 영글었던 유성이 하필 밤바다에 퍼부어서 달 없는 봄밤을 밝힌다. 큰길이 없어 대처 사람들이 오가지 않던 바닷가마을, 산을 옮기는 기적같이 넓은 길이 파랗게 깔렸다. 하얀 포말이 별이 되게 해준 고향 바다. 달빛이 내리지 않아도 길을 따라 천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섬의 외로움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파리하게 웃는다. 향기로운 풀들 사이로 섬은 환한 별들로 가득하고 그 별들은 섬사람의 삶이 되고 흰 밥이 되었다. 오늘도 그 섬은 파랗게 피고 있다.’땅 위에 나 하나 밤하늘 별 둘. 너처럼 까만 눈 깜빡이는 멀리 아득한 섬. 고향 밤하늘 별 헤아리는 파란 눈 가진 중년 남자 하나. 그리움이 꽃으로 피어난다. 널 안아 본다. 너로 인해 누군가의 맘이 넉넉해질 수 있다면…. 빛나지 않는다고 무에 그리 서러울까.
 
시골 앞마당에 어미 닭과 노란 병아리 열세 마리가 종알거리며 줄지어 걷는다. 온 마당이 노랗게 물들었다. 한참을 어울린다. 정겨움과 따뜻함을 품고 돌아왔다. 늦은 아침 산책을 나서는데 길 가장자리에서 노란 모자를 쓴 아이 여럿이 엄마 손 잡은 채 재잘거리며 웃는다. 급히 지나던 하얀 배일을 한 수녀님이 걸음을 멈추더니 뽀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든다. 노란 제트비행기가 옆에 와 멈춘다. 엄마에게 뽀얀 고사리손을 흔들며 차에 올라 사회로 나선다. 묶이지 않아야 자유롭고 그래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 청순한 노랑과 정결의 순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낮은 밥상을 단둘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사랑을 느끼는 중년의 아들이 애틋함으로 미소 짓게 한다. 어머니 향기와 미소가 담긴 상차림은 따뜻하다. 꺾였던 용기가 되살아난다. 어머니가 차려 주시던 밥상이 늘 그리운 것은 따뜻한 그 마음이 그립기 때문이다. 별빛이 내려앉은 바다 앞에 서서, 어제를 회상한다. 함께 슬퍼하고 사랑하고 열정을 삭이던 곳, 우리의 바다. 반겨 들어 휴식을 청한다. 힘든 삶도 무거운 고독도 너에게 꺼낸다. 너는 넓기도 하다. 스르륵 단 한 번의 몸부림으로 편안함을 선물해준다. 다음에 마주할 땐 손이라도 잡자꾸나.

별을 보려면 어둠이 필요하다. 상처가 스승이다. 어두운 길 위에서 주워 담은 묵은 그리움 하나. 몰래 꺼내고 다시 넣곤 했었던 시간. 다신 가져 볼 수 없는 체온과 감정. 엉켜진 무모한 이야기. 우연한 해후…. 서리꽃 눈썹처럼 하얀 마음이 된다. 추억은 서로 다르게 기억되어 있다. 서툰 헤어짐이 가져다준 애절함과 반가움. 양가감정으로 피어나는 능소화. 젊은 날 갈망의 대상. 수조의 파일럿 피쉬….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힘겨움이 그 사내를 응시한다. 찻잔을 건넨다. 마주한 눈이 깊어진다. 작아진 가슴이 그이를 맞는다. 무엇도 해줄 게 없다. 추억과의 헤어짐. 고속도로 위의 질주. 가슴은 회색 도화지가 된다. 휴게소 구석 자리에서 커피에 젖어 든다. 인생의 가을 자리, 빛바랜 옛날을 마신다. 긴 상념이 스친다. 조여든 가슴, 강물에 풀어두고 다시 고속도로에 몸을 굽힌다. 첫사랑 드라마 한 편 내 삶 모롱이에 남긴다. 광안대교에서 기어이 널 떠나보낸다.

벗과 노래연습장에 앉았다. 그가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노랫말이 참으로 좋다. 무거운 침묵만 가득 채운 술잔을 든다. 거품이 쓰디쓰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랑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면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시련의 달콤함이야 잊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슬픈 이별의 소나타. 낭만이 기어이 찾아들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새 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상념을 깨운다. 긴 가뭄 뒤에 내리는 단비다. 이 자연의 선물은 귀를 기울이게 한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억만년을 넘어선 존재의 힘을 지닌 빗소리에 젖어 들면 평화가 찾아든다. 이 비는 분명 우리를 기쁘게 한다. 빗소리가 좋다던 벗이 떠오른다. 오늘 하루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하소서. 행복은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에서 잊고 사는 순간의 사소함에 있다. 물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은 늦봄의 백사장을 손잡고 거니는 연인, 한 손에는 검정 구두를 벗어 하얀 손가락에 끼어든 모습은 우리를 가슴 뛰게 한다. 또한, 발길 멈춘 동해남부선 철길 위에서 순백의 드레스와 앳된 나비넥타이를 차려입고 웨딩사진 촬영에 한창인 예비부부의 부푼 희망을 만나면 우리는 기쁨으로 축하의 미소를 보낸다. 그대 사랑 영원하소서.

결혼식에 갔다. 아름다운 신부 손을 꼭 잡고 식장에 들어서던 아버지가 두 차례나 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 하객들은 아버지가 긴장해 그러는 줄 알고 웃으며 이를 즐겼다. 신랑에게 가까이 다가선 아버지는 신부 손을 신랑에게 건네지도 않고 신랑을 껴안더니 어깨에 고개를 묻고서 한참을 있다가 귀엣말을 길게 건네곤 그제야 사랑하는 딸을 신랑에게 손을 잡혀주곤 돌아서 붉어진 눈으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제야 아버지 아쉬움이 느껴져 모두 박수를 보냈다. 부정이 애틋하다. 먹먹해졌다. 맏딸을 떠나보냄이 너무도 아쉬워 결국 굽은 등을 들썩이는 아버지 마음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붉어진 눈으로 둘러보니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눈물은 표현의 극치를 나타내는 또 다른 언어이니 신이 건넨 선물이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감동의 표현 도구, 눈물.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애환의 정점에 도달한다. 눈물의 중력. 사람의 눈물은 무겁다고 어느 시인은 표현했다. 그러니 눈물은 고귀한 존재이다. 내 여린 감성에 살며시 미소 짓는다.

창문을 굳게 닫아걸수록 망초꽃 향기는 곤혹스럽게 더욱 비집고 든다. 공상에 빠지면 시간은 늪이 된다. 시작한 글을 완성하지 않고는 흐드러진 개망초 곁으로 갈 수 없다며 씁쓸한 커피를 마신다. 몽상가의 하루는 멀고 길다. 가녀린 초여름 더위가 덤덤히 몸을 파고든다. 길게 읽어 내린다. 숲의 적요가 오전을 넘어 오후로 향한다. 철없는 새들의 사랑 노래만 가득하다. 숲을 스쳐 지나는 여인의 분내가 사내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돌아서서 불어오는 후끈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는다. 백일홍 향기가 함께한다. 얼마 전 갈아 끼운 거실 엘이디 전등의 밝고 환한 빛 떠올리며 가벼운 전율을 한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