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도 공식이 있을까. 공식에 따라 숫자를 대입하면 쉽게 답이 나오듯이 말이다. 나에게는 그런 공식이 있었다.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좀 별로라는 공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어떤 지인은 나에게 사람을 가려서 만나는 것 같다고 말했고 어떤 지인은 까칠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좋은 사람 만날 시간도 없는데 불편한 사람을 굳이 만나야겠느냐고 답했다. 그렇게 만남의 공식은 가끔 불편했어도 별 탈 없이 살게 해 주는 방어벽이 되어 주었다. 그 방어벽이 나를 외롭게 하기도 했지만,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잔잔히 지내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파문을 일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심각해졌다.

A를 처음 본 순간 반했던 것 같다. 나름 친해지고 싶어서 살갑게 굴었다. A가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미리 하면 좋을 일들을 하기도 했다. 모임에서 지심도로 여행을 갔을 때 함께 걸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나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함께 듣는 수업을 마치면 같이 점심을 먹고 차를마셨다. 함께 있어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혹시 나를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조바심 내면서 A의 주변을 맴돌았다. 같이 걷는 길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A는 단아한 분위기에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내가 투정을 부리듯이 말하면 적절한 조언으로 나를 달랬다.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고 힘든 일도 잘 해냈다. 인생이라는 것이 계단을 오르는 일이라면 A는 한참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것처럼 보였다. A는 나의 의지처였고 인생의 모델이었다.

A가 먼 도시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처럼 막막했다.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점심을 먹고 편의점 커피를 마시며 몽돌 해수욕장을 걸었다. 헤어져 돌아올 때는 눈물이 흘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운전하면서도 내내 눈물이 났고 영원한 이별인 듯 슬펐다. 그 이후로 나는 A를 만나기 위해 먼 도시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A가 불편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락조차 조심하게 되었다. 드물게라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족했다.

B는 A와는 다른 만남이었다. 처음 본 순간 절대로 친해질 수 없다는 내면의 경고음이 울렸다. 외모는 아름다웠지만, 그 속은 알 수 없었다. 전생에 좋은 인연이 아니었을 거라는 핑계를 만들었다. 같은 모임에 속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경우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슬그머니 몸을 사렸다. 서로 약간의 언쟁이라도 생기면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실제로 사소한 문제로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나는 그저 듣기만 했다.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한 대 때리면 맞아주고 말자는 마음이었다. 그 후에 B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마음의 선을 그어놓은 지 오래였다. 나는 더 적극적으로 피했다.

B가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이 돌면 내심 질투가 나기도 하고 나쁜 소문이 돌면 슬쩍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부딪치지 않고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시간이 흐르기만 바랬다. 그러다 B가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B는 사라졌지만, 그동안 불편해했던 감정은 마음 한편에 남았다. 내 삶의 한 부분을 너무 옹졸하게 살았다는 자책이 나를 괴롭혔다.

A는 보고 싶어 힘들었고 B는 보기 싫어서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두 가지 다 힘든 마음이었다. 둘 중에 마음의 힘듦을 무게로 단다면 어떤 마음이 더 무거울까. 가끔은 그리움이 더 크기도 하고 가끔은 미움이 더 크기도 했다. 이런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올 때 어쩌지 못하고 동동거리기만 하는 내가 너무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름의 관계에 대한 공식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런 허우적거림의 원인을 알게 되고 평온을 어느 정도는 찾게 되었다.

A는 어머니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고 분명한 가치관에 맞게 스스로도 엄격한 행동 양식이 있었다. 자그마한 외모도 비슷했다. 나의 어머니. 너무도 사랑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사랑에 항상 배고 파하는 아이였다.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A에게 받고 싶어 매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A가 좋았고 그래서 힘들었다. B는 나처럼 결핍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B를 볼 때마다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껄끄럽고 싫었다.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 나와 B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 한 여자로 이해하게 되면서 애정결핍의 욕구는 나아졌다. 어머니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으므로 딸에게 넉넉한 사랑을 베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A에 대한 열망도 B에 대한 불편함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민함도 덜해졌다.

나에게 만남의 공식이란 어쩌면 어머니처럼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좋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싫다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A와 B는 상처투성이인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주었고 그들을 통해 조금은 성장한 듯하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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