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노동의 달이고 가정의 달이며 사랑의 달 오월이다. 훈훈한 봄바람에 너울대던 꽃들의 향연이 끝나고 열매를 맺는 생명력 충만한 날들이다. 온 들과 산이 연초록 이파리로 물든다. 가지마다 젊음이 솟아오른다. 한 마리 노랑나비가 외로이 이파리에 살포시 앉는다. 귀향인가. 애벌레를 품었던 이파리가 이제 귀여운 나비를 안아준다. 파리하게 내 마음도 열린다. 그리하여 오월은 온통 사랑이다.
감나무 가지에는 감꽃이 피어난다. 흰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녔던 어린 날이 떠올라 살포시 미소 짓는다. 싱그러운 햇빛 품은 가지들은 희망으로 차오른다. 벌떼 부르던 향기는 저만치 하늘로 향한다.  눈을 꼬옥 감는다.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아야 하는 가정의 달 첫날이다. 오월이 여러 순한 빛깔로 세상을 물들인다. 많은 시인이 유달리 오월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연초록 이파리들이 자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오월이 그들의 시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으리라. 이 순수함을 그저 불편 없이 바라볼 수 있어 좋은 오후, 문학지의 오월을 노래한 시 한 구절이 시선을 잡는다.
‘키 큰 서어나무 그늘 아래 발 담그는 오월 / 새어드는 햇살로 긴 상념을 깨운다 / 제법 초록물이 든 몸 / 이 푸른 계절이 떠나면 지친 몸은 단풍이 들 것이다.’
 가지 끝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 소리도 감미롭고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연한 구름 깃들인 푸른 하늘만 올려다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꽃 한 송이도 줄기와 잎과 뿌리가 한 몸이듯 가족도 한 몸임을 깨닫는 오월이면 좋겠다. 아름다워 서럽고 향기로워 서러운 계절 오월. 살랑거리는 바람이 초록을 더욱 짙게 물들인 이파리를 툭 건드린다. 그리운 모든 이가 톡 떠오르게 한다. 이 잎의 계절을 즐기는 사람은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긴다 하였다. 고향에서 지낸 향기 가득했던 봄날을 떠올리며 오월을 시작하였다.
드라이브 길에 만난 푸른 바다가 뿜어내던 고소한 짠 냄새, 길을 걷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의 포근한 기운 그리고 새것을 품은 야산들이 뿜어내는 천 년의 숨결 간직한 공기가 참으로 순하였다. 더불어 벗의 눈 속에 담긴 사랑과 어머니와 형제의 따뜻한 기운….
이 모두가 가슴에 머물고 있기에 오월을 아름답게 맞게 해준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닌 아이들이 푸른 하늘을 날면서 시작한 오월. 순수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린 마음으로 어버이를 생각하고 스승을 떠올리며 행복한 추억을 더듬는 마음이 푸릇한 신록과 더불어 그 울창함이 더해가기를. 이 땅의 어린 새싹들이 기를 펴고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토양이 되어 주어야 하리라, 기쁨으로.
 이른 눈뜸을 하였다.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산책로에 접어드니 풀잎에 연한 햇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뜨는 오월의 새벽 기운도 모른 채 곳곳의 바보스러운 외등들은 아직도 밝음을 뽐내고 있다. 산뜻한 풍경 속으로 뛰어드는 이가 많다. 순식간에 새벽공기를 가르려는 사람들이 어깨너머로 겹겹이 많아져 푸른 도심을 연다. 찬란한 꽃향기에서 벗어나 일순 순록을 예찬한다. 그리하여 오월의 이른 아침은 실로 청순하다. 천천히 흥얼거린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순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오월을 예찬한 이 글을 떠올릴 때마다 이 계절의 충만함이 온몸을 일렁이게 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오월을 호흡할 수 있음이 즐겁고 기쁘다.
 산책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이 되어 현관에 들어서며 집어 든 잉크 더미가 세상이 푸릇한 청순함으로 채워지지 않고 있음을 전한다.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 살해한 남매. 동료 살해 후 시신 토막 유기. 딸 카드빚 못 견뎌… 엄마 전철 뛰어들어. 장애인 손자 내다버린 비정의 할머니. 무너지는 빚더미 사회 등이 빼곡히 담긴 사회면. 세상의 못할 짓만 묶어서 담은 듯한 조간신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세상은 거칠고 날카로워졌다. 점점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되어 간다. 괴물이 너무 많다. 누군가를 칭찬하면 박수 정도를 보내지만 어떤 이를 비난하면 환호성을 지르며 동조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러함을 감당할 수 있음은 순하디 순한 많은 사람이 오월을 함께 하기에 가능하다. 아직은 동심 지닌 채 세월을 견딜 수 있음을 감사한다. 늦은 밤, 청사포를 찾았다. 푸른 물에 새로운 손을 담근다. 뭍으로 오르려는 물소리가 밤을 지나고 있다. 오월의 상념을 노래한 고은 시인의 시심을 떠올리며 잎새의 산뜻한 아침을 꿈꾼다. 청사포도 오월의 푸릇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안녕~

오월  -고은
벗이여, 큰 괴로움 하나 졸업하여라.
5월이다. 바람 하나 마련하여
새로 태어난 잎새 뭇 울음을 달래어라.
새잎들이여 어떤 괴로움이 잎새가 되었느냐.
밤 불빛으로도 이 세상을 넘치면 거기가 저 세상이다.
벗이여, 그대의 다정다감 오늘 밤이라도 여기 두고
이 세상의 참된 새로움이란 오월 밤 불빛이어라.
그대와 나 바보가 되어
새로움이란 오월 밤 불빛에 우는 잎새들이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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