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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28]'신데렐라'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신데렐라의 꿈
                                                                심 인 자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글을 깨치면서부터 오라비가 빌려오는 책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오라비가 놀러나가면 그 틈을 노려 슬금슬금 훔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녀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얘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읽은 책이 신데렐라입니다. 언니들에게 밀려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너무 안됐습니다. 그녀를 향한 소녀의 눈빛은 연민으로 젖어듭니다.
  이후로 독서에 열을 올렸습니다. 교실 뒤편에 있는 문고의 책을 학기 초면 다 읽어버립니다. 백여 권이 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녀는 도서실에 갑니다.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책 속에 빠져듭니다. 바보스러울 만큼 말이 없고 자신감 또한 부족했기에 소녀의 친구는 늘 책이었습니다. 수업도 받지 않고 종일 책속에 묻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간혹 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지요. 시작종이 울린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초등학교 오학년 때입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문학을 좋아하셨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셨습니다. 동시와 작문을 가르쳐 주셨지요. 아이들은 글 쓰는 게 힘들다 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틈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동시가 설렁설렁 잘 써졌습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이 소녀가 쓴 동시에 곡을 붙여주셨습니다. 동화 한편을 써서 발표하면 친구들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던 소녀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어찌 되었는지 소녀가 쓴 글은 전부 뽑혔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더 이상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소리쳤는지 모릅니다. 그 때부터 소녀는 꿈을 꾸었습니다. 꼭 이름난 작가가 되어야하겠다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누군가의 글을 바탕으로 또 다른 글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녀가 사는 곳에는 서점이 없었습니다. 안타까웠지요. 새로운 책을 읽고 싶었지만 읍내까지 나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사실 문학책 한 권 사는 게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수학시간인가 봅니다. 선생님이 흑판에 열심히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삼학년이니만큼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긴장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해야 합니다. 소녀의 눈길은 흑판과 선생님을 향합니다. 하지만 공부에 열성적인 그런 눈빛은 아닙니다. 한 시간 내내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녀의 꿈은 확고해졌습니다. 드디어 쓰기에 욕심을 내었습니다. 노트에 중편소설 분량만큼 스토리를 엮어나갔습니다. 소설의 발단, 전개, 갈등 운운하면서요. 글을 써 나가는데 가장 힘을 얻었던 것은 ‘황순원의 소나기와 심훈의 상록수’였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였습니다. 마치 소녀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이 아렸습니다. 좀 더 뒤에 읽은 상록수도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어 무기력한 농민들에게 무지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결국 주인공들은 헤어졌습니다. 큰 것을 위해 둘만의 사랑을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너무 가엾어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독자들의 꽁꽁 언 마음까지 녹여주는 그런 글을 쓰리라 소녀는 마음먹었습니다.
  틈틈이 습작을 했습니다. 신춘문예에 낼 작품을 겨냥해서 말입니다. 시인도 되고 싶고 소설가도 되고 싶은 욕심이 너무 컸습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대서특필 하게 될 날만 꿈꾸었으니 말입니다.
  서점 유리문에 붙여놓은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탐독하면서 그들의 글귀를 흉내 내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애꿎게 원고지만 버렸습니다. 순수했던 마음이 없어진 때문도 있었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비로소 안 것입니다.
  한계가 왔습니다. 심금을 울릴만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슬펐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한동안 꿈을 가졌다는 것조차 들먹이기 싫어 일기도 쓰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책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정신없이 글을 읽기 시작했지요. 이 무렵 또 한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펜을 잡게 해준 은인이며, 지금껏 챙겨주시는 스승님이시지요. 그 분의 독려와 관심이 아니었다면 소녀의 삶은 지금껏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소녀는 일어섰습니다. 그녀의 눈은 연민으로 가득 찬 예전의 눈빛이 아닙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신데렐라를 향해 소녀도 해맑게 웃어줍니다. 드디어 소녀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수필가가 되어 펜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소녀는 글귀 하나를 두고 고뇌에 빠져듭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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