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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33] '마트로시카'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마트로시카
                                               심 인 자

  

문을 여는 순간 무거운 기운이 양어깨를 누른다. 암울하다. 웃음소리가 없다. 고요하여 적막감이 나돈다. 조용한 가운데 소음이라면 낮게 흘러나오는 드라마속의 연기자 목소리다. 텔레비전을 보는 이가 없다. 아니, 간간이 간병하는 아주머니의 눈길이 화면을 쓸다갈 뿐. 이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면 주검들이 누워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잠이 들었는지 아님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은지 미동이 없다.
  친구어머니를 찾아야한다. 몇 호실인지.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오다 보니 병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헤맨 끝에 겨우 찾았다. 간호사에게 진작 물어볼 것을. 노인들만 수용한 병실이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음이다.
  여덟시를 조금 넘겼기에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잠든 듯 누워있는 얼굴들을 훑어나가는데, 병실 끄트머리에 친구어머니가 누워있다. 이름이 낯설다. 누구어머니가 당신의 또 다른 이름이었기에 이름을 안다는 것이 어쩌면 무리였는지 모른다.
  작은 인기척에 눈을 뜬다. 다행히 알아보시곤 손부터 내민다.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숱한 세월 일에 묻혀 살아온 어머니다. 구부정한 허리와 뭉툭한 손가락이 그간의 노고를 대변하고 있다. 혼자 힘으로 자식 건사는 물론이고 백세를 넘긴 시어머니 봉양에 꼬장꼬장한 지아비 수발드느라 기력을 다해버린 당신. 그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잘 알기에 가슴이 저려온다.
  따끈한 국물을 한 숟갈 권한다. 마침 옆자리에 누워있던 할머니가 몸을 일으킨다. 이름과 나이를 훑는다. 아흔을 바라보건만 간간이 핀 검버섯을 제외하면 살결이 참 희고 곱다. 원래부터 고운 건지 아님 오랜 시간 병상에 있어 햇볕을 못 봐서인지 가늠이 안 된다. 치매환자라 이름도 나이도 자식도 못 알아본다며 슬며시 귀띔을 해준다. 바위 하나가 쿵하고 가슴에 떨어진다.
  친구 어머니도 이 병에 걸렸다. 중증은 아니지만 좋았던 지난 삶의 기억들은 놓아버리고 정작 떨쳐버려야 할 어두운 기억들만 편린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히는 모양이다. 끊어진 기억들을 아스라이 떠올리며 했던 말을 되뇌고 또 되뇐다. 할 얘기가 태산 같은데 행여 가버릴까 잡았던 손을 놓지 못한다.
  자는 듯 누워있는 노인들. 얼굴에 핀 검버섯이 그들의 얼굴을 더 어둡게 만든다. 대부분 치매나 뇌졸중 환자다. 혼자서는 힘들어 남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 두 명의 간병인이 열 개의 침상을 돌아다니며 수발을 든다. 노인 한 분 한 분을 돌보는 간병인의 마지막 보살핌을 뒤로하며 병실을 나선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들의 얼굴 위로 겹치는 영상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십여 년 전 러시아를 다녀 온 지인으로부터 받은 목각인형이 떠올라서이다. 어머니 인형이라 불리는 마트로시카, 참 생소하고 특이했다. 몸통을 비틀면 그 안에 작은 인형이 들어있고 그 인형을 비틀면 또 작은 인형이 차례차례 들어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가장 큰 것이 어머니고 나머지는 모두 자식이라고 했다. 온화한 얼굴 표정에서 자애롭고 후덕한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가끔 자식을 꺼내 어머니 옆에 나란히 세워두기도 하고 도로 몸속에 넣어두기도 했다. 마치 어머니 품속에 있는 듯 포근했다. 언제 봐도 그 모습 그대로인 어머니인형에 정이 푹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토우를 알게 되고 거기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표정의 인형들이 해학적이며 활기찼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틈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거실 중앙에 있던 어머니인형은 자연스레 구석진 자리로 밀려났다. 점점 토우와 같이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후덕해보이던 인상이 어느 사이 추레해 보이기까지 했다. 급기야 서랍 한구석에 밀쳐둔 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머니가 누워있다. 그 자세로 몇 년을 꼼짝 않고 있었으니 얼마나 삭신이 쑤시고 저렸을까. 먼지가 앉아 뽀얗다. 손으로 털어내니 얼굴선이 살아난다. 그런데 처음의 그 얼굴이 아니다. 군데군데 얼룩이 져 검버섯이 피어있다. 닦아도 좀체 없어지지 않는다. 진한 눈썹이 옅어졌고 볼그스레하던 볼도 핏기가 없다. 미안함에 문질러 검버섯을 떼어내려 하지만 오히려 생채기만 생겼다. 토우에 정신이 팔려 어머니를 팽개치고 있었음이다.
  생각이 깊어간다. 치매, 참 슬픈 병에 걸렸다.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병. 밥도 받아 먹어야하고 기저귀를 차야하는 병. 그래서 아기가 되는 병. 막무가내로 투정부리고 떼쓰고 밖에 나가자고 보채는 병, 이름표 없이 나가면 미아가 되는 병. 평생 살아왔던 집을 나서면 혼자서는 다시 찾아오지 못하는 병. 깊어갈수록 내 속으로 난 자식까지 놓아버려 바라보는 가족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슬프디슬픈 병이다.
  덜컥 겁이 난다. 치매, 슬픈 이 병에 걸리면 어쩌나. 나이도 이름도 기억 못하는 병에 걸리면 어쩌나. 자식 얼굴도 몰라보고 허공만 바라보는 슬프디슬픈 병에 걸리면 정말 어쩌나. 제발, 사력을 다해 자식을 지켜온 이 땅의 어머니들이 온갖 것 다 놓아버리는 슬픈 이 병만큼은 비껴가길 기도한다. 
  세월의 때가 흠씬 묻은 어머니가 장식장 한켠에 구부정하니 서서 나를 바라본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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