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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金曜巨濟時調選]
[금요거제시조選-48]신종만-'나 그 네' ▲신종만:거제둔덕출생(1963년)/통영상고졸/사회적기업(주)연연칠백리근무/거제고려사연구회원/가덕도신공항추진위원/거제사회적기업협의회사무국장/현대시조등단(2020년)/능곡시조교실수강/

[금요거제시조-48]
    '나 그 네'  

 

 

 

 

 

   
    신
     만   

태백을 떠돌다가
늦게야 다다랐다

운무가 시샘하는
해금강은 한 폭 절경

천년송 사자바위에
갈매기로 앉고파라.

절처에 터를 잡아
서불*을 반긴 석곡

마디마다 향을 지닌
장생초가 너로구나

영생은 꿈이었던가
또 바람이었던가.

어둠이 내리는 섬
절경도 잠이 드네

아쉬움 남겨두고
돌려야 하는 발길

어디서 무적이 운다
나그네를 울린다.

*서불: 불로초를 찾아 왔던 진시황제의 신하 


今之他事(금지타사) 
  
설 대목이건만 스산하기만 하다. 어릴적엔 낮밤을 헤아리며 설날을 기다렸다. 설빔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푸짐한 먹거리도 기다림의 이유였다. 이제는 설을 쇠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기에 그러하다. 거기에다 병치레까지 겹치고 보니 나이 헤아리기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차차 노인으로 변해 간다. 빈부나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늙어간다.
 ‘100세 시대’는 요즘 많이 듣는 말이다. 100세 장수가 현실화 되고 있는 지금, 노인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덕이 깊어지고 성숙해 가는 과정이다. 지혜가 무르익은 노년의 거장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삶의 하나이련만 노인 홀대는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노인을 비하하는 말 중 대표적인 것은 꼰대와 틀딱이다.보통 꼰대는 늙은이를 말하며 가끔 융통성 없는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를 지칭하기도 한다. 60대 이상의 노인 중에서도 여자는 별로 해당이 되지 않고 남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들이대는 잣대이다.

 꼰대라는 말은 대체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구분한다. 그래서 고루하고 구시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즉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곧 꼰대가 되는 것이다. 뜰딱은 틀니와 딱딱이라는 말의 앞글자를 따서 합친말로, 말그대로 틀니에서 딱딱 소리가 나는 나이 많은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흔히 우리들이 무심코 일컫는 수구꼴통이 곧 꼰대요 틀딱이다. 어느 의미에서 기성세대는 곧 현실무대에서 저절로 퇴장하는 세대이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위적으로 강제로 퇴출당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노인을 공경하는 건 옳은 일이다. 인생 선배로서, 스승으로서, 가정과 사회적으로 공경하고 예우하는 것은 옳고 좋은 일이다. 나도 늙고, 너도 늙고 우리 모두가 늙어 간다. 늙어서 천대받는 것 보다는 공경 받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반듯하고 곱게 늙어야 공경을 받는다.

 농경 사회에선 노인 공경 의식과 관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노인들의 경험과 연륜에서 비롯된 지혜가 반드시 필요했기에 어른을 섬기는데 모두가 공감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즉 늙은 말의 지혜라고 하는 고사가 있다. 한비자 세림(說林) 상편(上篇)에 나오는 말로 춘추시대 오패의 한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으로 이름나 있는 관중(管仲)과 대부 습붕(拾朋)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는 도중 산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병사들은 지치어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그때 재상 관중이 “늙은 말은 비록 빨리 달리지는 못해도 길을 찾는 능력은 출중하니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환공은 즉시 늙은 말을 풀어 놓았다.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또 한 번은 산길을 행군하다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에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에 산 남쪽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 쯤 쌓인 개미집만 있으면 그 땅 속 일곱 자 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은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자는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을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다.지금도 노인의 연륜에서 배여 나오는 지혜는 배울만 하지만 가치관이 달라지고 보니 노인의 지혜와 지식이 절대적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부터 400여 년 전 송강 정철(1536-1593)은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

라고 읊었다. 늙기도 서러운데 짐까지 졌음을 안타까워했다. 정철이 읊은 늙은이의 짐은 단순한 짊 보퉁이 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날 노인들이 짊어진 짐은 단순하지 않다.사람이 자존감을 지니고 살아가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많은 앎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이를 먹으며 성숙해지고 원숙해져 어른으로서의 풍모를 지닐 수 있다. 아무런 노력없이 그저 살아가며 터득한 눈치와 요령만으로는 꼰대와 틀딱의 자화상을 그릴 수밖에 없다.성찰하고 자기 자신을 다듬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 저 꼰대 또 잔소리네”가 아니라 “네”라는 대답을 듣는 어른이 되리라 믿는다.
 13세 초등학생이 지하철에서 노인을 폭행하는 패덕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패덕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하여야 할 올바를 도덕과 의리를 허물어뜨림을 말 함이다.
 今之他事가 後之我事 라 하지 않던가. 그렇다 오늘 남의 일이 뒷날 내 일이 된다.
 스산한 세모, 하지만 어쩌랴.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나그네〉는 신종만 시인의 작품으로 타관을 떠돈지 수 십 년, 이순의 나이에 이르러 찾아간 해금강에서의 감회를 3수 연작으로 읊었다. 筆者는 해금강을 조금알기에 ‘나그네’라 題한 시인의 흉중을 엿볼 수 있었다.

첫 수에서는 해금강 절경 앞에 우두 망찰의 시인이 읽혀진다.
일찍이 출향하여 / 태백을 떠돌다가 늦게야 다달은 / 해금강이다. 비경임을 진즉 알았지만 / 운무가 시샘하는 / 그야말로 / 해금강은 한 폭 절경 /이었다. 그래서 세사를 잊고 천년송이 지켜보았던 그 사자바위에 / 갈매기로 앉고파라./고 관조의 심경을 읊조렸다.
 
 둘째 수에선 영생의 꿈은 바람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 서불을 반긴 석곡 /은 사람의 손길에 닿지 않는 절처에서 자란다. 한 뼘 크기에 짧은 마디마다 향을 지녔다. 장생란이라 일컬어지기에 불로초를 찾아온 서불을 반겼단다.
 불로장생은 꿈이었다가 또 바람이었더라고, 허공에 웃음을 날린다.
 
 셋째 수에선 무적이 나그네를 울리고 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절경도 어둠에 잠긴다. 절경을 가슴에 품은채 / 아쉬움 남겨두고 / 돌려야 하는 발길이다. 운무 속에 / 어디서 무적이 운다 / 무적은 운무 속에 들리는 뱃고동이다. 왈칵 슬픔이 밀려와 / 나그네를 울리고 / 만다. 너나없이 人生은 나그네다. 정처없는 나그네다.

거제 해금강의 원래 이름은 칡이 많다고 하여 갈도(葛島)였다. 1971. 3. 23 명승 제2호로 지정된 해금강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마치 금강산을 연상한다하여 해금강으로 불려 졌다고 알려져 있다.거제에선 서불에 관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진시황의 신하 서불이 불로초를 찾아 해금강에 왔다가 “徐市過此”라는 암각을 남겼다는 전설이다.
해금강의 서쪽 500여 미터 거리에 우제봉이라 이름 하는 바위산이 있다. 이곳도 절경이다. 갈곶리의 땅끝(串)에 해당하는 우제봉 절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의 “서불과차”란 마애각이 새겨져 있었다. 이 마애각이 1959년의 사라호 태풍때 떨어져 나갔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껏 남아 있다면 유네스코에 등재 될 문화재인데 말이다.

해금강엔 巨濟三蘭이라 칭하는 春蘭, 風蘭, 石斛을 비롯하여 620여종의 아열대식물이 자생하는 곳인데 여기서 주목할 식물이 石斛이다. 석곡은 오늘날 동양란 중 덴드로비움속(Dendrobium屬)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예로부터 금생(禁生) 임란(林蘭)등으로 불리운 생약(生藥)으로서의 한약재였다.석곡은 본초학(本草學)의 고전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석곡의 맛은 달고 평이하며 독이 없다. 주로 중초(中焦)가상하였을 때와 각기를 없애고 하기(下氣)에도 쓰여 지며 오장(五臟), 허로(虛勞), 여위고 지친 것을 보하며 음을 강하게 한다. 정력(精力)을 증가 시켜주며 신체가 허약하여 피와 진액(津液)과 기력이 끊기거나 부족하면 이를 보완하여 준다. 위를 편하게 하고 피부의 나쁜 열과 땀띠, 다리와 무릎이 아프거나 차갑고 각기로 인해 약해지는 것을 쫓아내는데 오래도록 복용할진데 장과 위를 두텁게 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몸이 가벼워지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두려움을 없애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초강목은 다윈의 진화론의 원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명나라 이시진(李時珍)의 저술이다. 우리나라의 동의보감도 이 본초강목을 많이 인용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깊은 산중에서 도를 닦던 스님들이 석곡의 줄기를 햇볕에 말려 차로 마셨다고 전하며 이 차를 마시면 오래 산다고 하여 장생란(長生蘭)이라 부른다. 또한 고아(高芽)라고 하여 석곡의 마른 줄기 끝에서 새싹이 붙는데,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에서 장생란으로 이름 지어졌으리라 짐작된다.석곡의 이름난 자생지였던 해금강엔 풍란과 석곡이 도배하듯 널려 있었으나 지금은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해금강에는 예로부터 진귀한 식물들이 자생했다는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일례로 해금강 절벽에 천년 묵은 동삼인 더덕이 있었는데 천년이나 된 더덕은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또는 짐승으로 변하기도 하는 등 자유자재로 변신했다는 갈곶리 천년 더덕이란 전설이 그것이다.필자는 서불이 찾았던 불로장생초 중의 하나가 거제 석곡이라 설정하고 중·한·일 서복국제학술심포지움에서 거제 ‘서불과차’와 ‘석곡’에 관한 논문을 수차례 발표하여 거제 해금강과 ‘서불과차’를 알렸다. 그 결과 중국과 일본의 서불 연구가들의 거제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서불(일명 서복)은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음이 사마천의 「史記」 진시황 본기에 나타나 있다.

필자가 고문으로 있는 「거제서복회」에서는 창립 5주년 기념 「거제서복연구」 논문집을 펴낸바 있다.전설은 구전되어 오는 역사의 그림자이다. 소설 「관부연락선」을 쓴 작가 李炳注 선생은 ‘기록이 햇빛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역사의 그림자인 전설이 때로는 역사로 자리매김 되기도 한다.항노화가 인류 최대의 관심사인 오늘날 서불과 해금강 석곡을 주제로 한 거제 관광상품개발에 관심을 기울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무적에 눈물을 훔친 신종만 시인, 나그네란 詩題에 쓸쓸함이 배여 있기에 짠함을 느낀다. 그의 앞날이 해금강의 운무가 걷히듯 밝아지길 빌어 마지않는다. 설날, 옛날이 그립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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