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총 카페에 공고 낸 거제시-경남도, 일감 몰아주기 징계
 사업 다시 시작해 일정 차질-도내 미술계 "예총만 예술하나"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 사업 참여 작가를 거제예총에 몰아줘 논란이 된 거제시에서 지역 예술인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거제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비예총 예술인을 거제예총 회장과 거제미술협회 회장이 명예훼손과 폭행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하는 등 사업 후유증이 커지고 있다.

거제 예술인 간 갈등 격화 = 정애순 거제예총 회장은 정홍연 갤러리 거제 대표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정 대표는 거제 공공미술 프로젝트 편법추진 범시민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 거제 공공미술 프로젝트 편법 추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거제예총에 소속되지 않은 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단체다.

정 회장은 정 대표가 거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단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보고 있다. 어론매체들이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예총은 지난해 12월 9일부터 거제시청 정문 앞에서 단체 명예를 훼손하는 방송을 한 점이 모두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다. 

거제예총이 해당 혐의로 정 대표를 고소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와 배경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거제예총 소속 곽지은 거제미술협회 회장은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정 대표를 고소했다. 지난해 11월 정 대표가 거제시의 잘못된 행정을 시민들에게 알리겠다며 거제 공공미술 프로젝트 추진을 비판하는 집회를 거제미술협회 정기전이 열리던 거제문화회관 전시장 앞에서 벌였는데, 이때 정 대표가 자신의 몸을 손으로 밀쳐 폭행했다는 주장이다.

곽 회장은 "매년 열리는 정기전에 와서 (정 대표가) 전시를 방해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전시장 입구 바로 앞에 현수막을 깔아놔서 1개를 치웠더니 욕설을 하면서 몸을 밀쳤다"며 "나는 (정 대표를) 밀친 적이 없다. CCTV를 통해서도 밀친 적이 없는 거로 나온다"고 했다.

이어 "본인이 100% 잘못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질 경우 고소를 취하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취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정 대표도 곽 회장을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거제시를 비판하는 집회를 벌여왔다. 거제미협이 정기전을 하던 날에도 지역에 공공미술 프로젝트 상황을 알리기 위해 퍼포먼스를 했었는데, 미술협회 회원들이 현수막과 작품을 걷어서 화장실 쓰레기통 옆에 치우길래 그걸 막다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회 당시 거제미술협회를 비판한 적은 없다고 밝히면서 "거제시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만 얘기하는 집회였다. 그런데 곽지은 회장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왔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고 덧붙였다.

거제 공공미술 담당자들 징계받을 듯 = 지역 예술인 사이에 갈등을 촉발한 거제 도시계획과 공공미술 담당 공무원들은 경남도로부터 징계를 받게 될 전망이다. 도는 감사위원회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거제 공공미술 사업 관련 추진 상황을 감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 담당자들을 징계한다. 징계대상은 거제시 도시계획과장과 도시계획과 주무관 등 모두 2명이다.

경남도 감사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사업 공고 내용과 선정위원회 작가팀 선정 절차 등을 살펴본 결과 시 공식 누리집에 참여자 모집 공고를 올리지 않고 거제예총 온라인 카페에 올렸던 점 등을 볼 때 전반적으로 공정성을 훼손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징계 대상자들에게 지난달 26일 감사 내용과 처분 내용을 통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감사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나 징계 수위는 밝히기 어렵지만, 아직 당사자들이 재심의 신청을 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도는 징계 처분 결과를 담당자들에게 통보하긴 했으나 아직 이의제기 기간이 남아 있어 결과가 확정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행정감사규정 제20조에 따르면 감사결과를 통보받은 감사대상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그 처분요구나 조치사항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 그 통보를 받은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주무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시·도지사에게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도가 징계 대상자들에게 징계 결과를 통보한 날이 감사가 끝난 당일인 지난달 26일이니까 통보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인 이달 말 전까지 처분 결과는 미확정 상태인 셈이다. 처분 결과는 오는 25일 확정된다.

경남지역 미술계 "이럴 줄 알았다" = 문화체육관광부가 내세운 계획대로라면 도내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 일정은 이달 말 모두 끝나야 하지만, 거제는 사업 기간을 4개월 연장 신청했다. 사업 기간이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사업을 다시 추진하고 있어서다. 거제시는 지난해 12월 선정된 작가팀(2팀·44명)이 앞으로 만들게 될 작품 제작 실행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했는데, 지역 예술인 간 갈등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도내 미술계에선 거제시의 이런 상황이 놀랍지 않은 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천원식 경남미술협회장은 "상황이 이렇게 변질된 건 예견된 일이다"며 "처음부터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예술성이 아닌 돈으로만 보고 접근하니까 논쟁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억만 지원을 받더라도 어마어마한 돈인데 (거제시가) 거제예총에 4억 원을 던졌다.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도 그렇지만 사업 진위부터 문제가 많아서 (미술계가) 진흙 바닥이 됐다"고 했다.

이상헌 전 마산미술협회 회장은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은 방법론적으로 잘못된 사업이다"며 "미술협회 회원들만 사업에 참여하고 밖에서 미술하시는 분들은 배제돼 말이 많은데, 단추가 잘못 끼워진 상태로 시작되다 보니 갈등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계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 부재가 문제를 키웠다는 견해도 있다. 강주연 창원미술협회 회장은 "돈을 쓰고도 욕먹는 상황이 됐다. 공무원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썼어도 갈등은 없었을 것"이라며 "지역에 여러 작가가 있는데 아는 사람들을 불러서 하니까 문제가 된 것"이라고 했다.

성춘석 민족미술인협회 경남지회장은 "예총이 모든 예술인을 대변하지 않는다. 거제 지역의 수많은 예술인이 있는데도 예술가가 예총에만 있다고 보는 게 문제"라며 "사업 담당 부서도 공공미술과 예술에 대해 모르는 도시계획과가 하고 있다. 거제시 공무원들의 예술계 이해 부족이 작용해서 조정 실패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사업 과정에서 논란이 빚어진 것에 대해 "더 이상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출발부터 부실했던 문체부 지원 사업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 228개 지자체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미술계 종사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 참여자로 선정되면 작가들은 지역에서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벽화를 그리는 등의 활동을 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게 된다. 정부 759억 원과 자치단체 189억 원 등 948억 원(지자체당 4억 원 투입)이 공공미술 사업에 들어간다. 

문화 예술지원 사업 중 예산상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사업을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모 기간을 포함해 지난해 7월부터 2월까지 6개월 동안 해당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짧은 일정 탓에 해당 사업을 진행 중인 도내 상당수 지자체가 사업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시군마다 공모를 거쳐 작가 팀이 선정된 뒤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건 지난해 9~11월부터다. 이달 사업종료 기한을 지키지 못하게 된 도내 시군들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4개월까지 기한연장을 신청했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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