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 박선아씨, '문장 21 신인상'으로 시인 등단

서정윤 기자
승인 2021.03.17 01:53

프리랜서 교육강사, 한국타로학회타로마스터, 한국타로학회장 박선아씨가 계간 '문장21'의 2021 봄 호에 '그집' 외 4편의 시로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녀는 청소년상담사로 활동하기도 했었며,눌산 윤일광 문예창작 교실에서 수강하며 열심히 시를 갈고 딲아 시인이 된 것이다. 수상소감에서 "우중충한 방콕생활에 무지개가 떴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며 뜸을 잘 들인 밥이 맛이 있듯이 뜸을 잘 들인 제대로 숙성된 시를 지어보고 싶다"고 했다.
<아래는 그의 등단작품과 수상소감이다>

'그집' 외 4편

오래된 집에 갔지요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처마 끝
늘어진 거미줄 사이로
늙은 전등이 눈 먼 새처럼 졸고 있고
바람이 등을 휘어
삐꺽거리는 대문을 흔들며 지나가네요
솜털햇살 놀다간 자리를 둘러보는 발길에
죽었다 살아나는 흔적들
누가 심었는지
돌담을 따라 걸려 있는 허물 같은 호박잎에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떨어지네요
아,
발이 붙고
속이 떨리고
숨이 차
세상이 멎을 때 보았지요
굴뚝에 연기 피어오르고
참새들 빨랫줄에 줄지어 짹짹거리는
창창하던 그 집

가을 서정

가을로 간다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열꽃이 나부끼는
붉은 독 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사랑 속으로

눈이 멀어진다
귀가 닫힌다

그저 얻는 기쁨의 희열
알 수 없는 깊은 뜻 너무 커
기도로 말하고 싶은데

어정거리지 않아
더 아린 스침이여!

그대가 비처럼 쏟아져

그대를 보내고 난 후
뭘 해도 헛헛한 날

곁이 비고 나서야
알게 되는 소중한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스쳐 지난 것까지도
각기 의미를 달고
또 새로운 이름으로 점점이 박혀
그 무엇이 된다

구멍 뚫린 창공으로
그대가 비처럼 쏟아진다

비어 있어도 가득 차는
그대

그리운 그 시절

서산마루에 매달린
바알간 석양을 바라보니
어릴 적
우리집 앞마당 감나무에 남아있던
까치밥이 생각나네

자고나면
하나씩 없어지던 까치밥

밤마다 배고픈 까치
급하게 먹고 간 후
미처 감추지 못한 꼬리는

이른 아침
골방에 걸려있던
할아버지 지팡이에
불을 붙였지

닳도록 비비는 손
빨간 까치밥을 닮아 갈 때
터트리던 너털웃음
홍시처럼 터지는 석양에
하나 둘 걸리는 그리운 날들

한 끗 차이에 살다

우리는
“그래 봐야 한 끗 차이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지요

주말이라 차들이 많았지만
저마다 속도를 내고 달려
마치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지요
가끔 제트기 소리를 내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싫지 않았고요
나도 기분이 좋아 저절로 허밍이 나왔지요

차선 하나가 더 생긴다는 표식이 보이자
바로 옆으로 매끈한 얼굴 하나가 머리를 흔들면서
사정없이 들이대더군요
순간적으로 손목을 아슬아슬하게 꺾었지요
등골에 서늘한 계곡이 드리워질 때
‘그래, 한 끗 차이였어.’ 라고 외치며
무심코 했던 이 말을 되돌아보았지요

그러고는
알고 보면 가장 근소하게 보이는
이 한 끗 차이에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도무지 알 수 없어 헛웃음만 지었지요

당선소감

혜정 박선아

가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슴이 설렌다면 그 길은 분명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가 봐야 한다는 것이 평소 좌우명이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문예 교실에 대한 정보를 듣고 따라갔던 날 또 다른 장르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가슴이 뛰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벅찼다. 그 벅참으로 길을 따라 묵묵히 걷다 보니 우중충한 방콕생활에 무지개가 떴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혼자서는 힘든 길에 두꺼운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
함께 공부하는 문우님들
뭘 하든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
고맙습니다.
뜸을 잘 들인 밥이 맛이 있듯이 뜸을 잘 들인 제대로 숙성된 시를 지어보고 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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