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56]
   '표정(-人像石展에서-)'  

   윤   윤  주  

 오얏꽃 이울던 날
 대면한 돌사람들

 백이던가 천이던가
 말 없는 군상 속에

 나 또한 돌사람 되어
 지친 몸을 앉혔다.


 시상에 잠겨있는
 망월의 李白이며

 이빨이 하나뿐인
 해맑게 웃는 노승

 우리네 사는 이야기
 햇살 아래 정겹네.


 한참을 헤맨 끝에
 용케 만난 나 닮은 돌

 속내를 건네어도
 딴청만 부리더니

 살갑게 돌이 웃는다
 시간 밖의 저 생명.

◎ 명예와 명성
 우울한 계절 탓인지 개화를 앞당긴 벚꽃이 서둘러 꽃잎을 떨구었다. 뒤이은 신록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세상이 멈춘 지금 행여 자연에도 변화가 있을까 눈여겨 살펴보았다.
시끌벅적한 4.7 재보궐 선거도 끝났다.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天作孼 猶可違, 自作孼 不可活)은 서경(書經)의 상서(商書)에 실린 말씀으로 하늘이 내리는 재화(災禍)는 혹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은 모면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孼’자는 서자‘얼’, 재앙‘얼’자다.

4.7 재보궐 선거가 있게 한 두 사람을 떠올리며 명예를 헤아려 보았다. 인간에 있어 오욕(五欲)은 재욕(財欲), 색욕(色欲), 음욕(飮欲), 명욕(名欲), 수욕(睡欲)을 말하는데 법화경(法華経)이 출처다. 인간의 욕망 중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재욕(財欲), 권력욕(權力欲), 명예욕(名譽欲), 이 세 가지가 꼽히리라 본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소유하는 과정이나 그 결과에서 좋지 못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를 멸시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즉 재욕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거나, 권력은 남을 모함하거나 권모술수를 동원하기도 하고, 명예는 허세와 위선을 감추고 있는 등, 그 내력이나 내막을 알고는 많은 실망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많고 적고 간에 이 세 가지 욕망에의 유혹에 빨려들기 마련이다. 아무도 이것에 초연하다고 장담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어떤 욕망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이 세 가지 욕망은 가속도가 심한 것 같다. 부(富)에 있어서는 ‘아흔 아홉을 가진 사람이 하나 가진 사람 것을 넘본다’는 말이 있듯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부이다. 남이 말을 타는 것을 부러워한 사람이 막상 말을 타고 보면 종자를 두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고 보면 부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는 것 같다.권세는 어떤가?

 그것을 한번 쥐고 나면 놓지 않으려 함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낫고 높은 것을 잡기 위해 혈안이다. 부룩할트는 ‘권력은 어떠한 자가 그것을 행사한다 해도 그 자체에 있어서는 악이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어떤 권력이건 행사하지 않는 것이 선’이란 말도 된다. 자고로 현인은 권좌에서 물러날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시기를 놓치고 나서는 그 자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살상을 가져 왔으며 끝내 이름을 욕되게 하였던가.

 명예는 또 어떤가.명예나 명성(名聲)은 인간만이 추구하는 것으로 가장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번 얻은 성가(聲價)를 지키기 위하여 노심초사함은 물론 더 높은 명예나 명성을 얻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명예나 명성에 속박되어 사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과 어느 것이 나은지는 그 자체가 우문(愚問)일 따름이다.우리는 주변에서 물거품 같은 헛된 명예를 쫓아 달음질하고 있는 속물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 결과 가짜박사가 나타나고, 학위논문이 표절되고, 로비로 상을 받는 등 종국엔 사회의 지탄을 받아 오욕의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병가(甁歌)』에 나오는 박팽년(朴彭年)의 시조 한 수를 감상하여 보자.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메라
      야랑명월(夜郞明月)이 밤인들 어더우랴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줄이 있으랴.

 호를 취금(醉琴)이라 일컫는 박평년은 단종 복위의 일에 연루되어 목숨을 바친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이다. 가마귀가 눈비를 뒤집어쓰고 흰듯하지만 검은 본바탕이야 어찌 감출 수 있으리오. 밝은 달이야 어찌 어둡겠는가, 님 향한 일편단심, 여기서 가리킨 「님」은 폐위된 단종이다. 그 충절이 오백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빛나고 있다.

 명예란 쫓는 것이 아니고 선(善)과 덕(德)과 재능과 노력에 의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히 형성된 것이어야 한다. 평범한 가운데에서의 비범, 특출한 성공이 아니라고 해도 오랜 세월 비바람 속에서 피어난 바위옷 같은 가식 없는 명예야 말로 오만과 자기도취의 늪에 빠지지 않고 남에게 시기 당하거나 고립 되지 않으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다.
 명예가 선과 덕을 위주로 오랜 기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명성은 능력과 노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단기간에 얻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특히 명성을 경계해야 한다. 예술가와 명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으나 그럴수록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이에 집착 하다 보면 대중에 영합하기 쉽고, 소중한 예술적인 본능이 퇴색되어 종국에는 예술에 대한 사랑을 잃기 때문이다.과실을 꽁무니에 달고 산다는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명예는 얻기 어렵고, 생전에 유지 하기는 아주 어렵고, 사후에도 보존되기는 더욱 어렵다」고 한 F· J· 하이든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명예나 명성을 얻을 자질이나 덕(德)도 없는 나는 그들과 무관하나 불명예 하나만은 피하여 살고 싶다.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이 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표정>은 윤윤주 시인의 작품으로 비대면의 현실에서 돌사람을 대면한 감흥을 3수 연작으로 읊은 서정시조다. 돌사람은 ‘-人像石展에서’란 부제에서 보듯 사람의 얼굴을 닮은 돌을 소재로 제작한 작품을 일컫는다.
 
 첫 수에선 오얏꽃이 이울던 어느 날 마스크를 쓴 시인은 돌사람들과 대면했다. 마스크를 착용해서 조금은 쑥스러웠으리라.돌사람들의 숫자가 / 백이던가 천이던가 말 없는 군상 속에 / 함께 하다 보니 / 나 또한 돌사람 되어 지친 몸을 앉혔다./ 살다보면 지친 나머지 전부를 내려놓고 싶은 때가 안 있던 가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이다. 그렇고말고, 그것도 해탈한 표정의 돌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는 곳이고 보면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둘째 수에선 돌사람들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모습에서 정겨움이 읽혀진다. 세상이 와이라노하고 절규하는 나훈아가 찾는 테스형도 보이고, ‘月下李白’이라 이름붙인 인상석을 보고는 / 시상에 잠겨있는 망월의 李白이며, / 또 그 곁에는 / 이빨이 하나뿐인 해맑게 웃는 노승 /이 보인다. 모두가 이웃사람들이길래 / 우리네 사는 이야기 햇살 아래 정겹네./ 라고 종장을 마무리 했다. 욕심을 버리고나면 저리 고운 인상이 되는 것을, 아무렴 욕과 심청(慾寡心淸)이라 하지 않던가. 암 욕심이 적으면 마음이 맑아지고말고.

셋째 수에선 시인은 자신을 닮은 돌을 찾아내어 속엣말을 건네 본다. / 한참을 헤맨 끝에 용케 만난 나 닮은 돌 /을 마주하고 마스크를 내리고 / 속내를 건네어도 딴청만 부리더니 / 이윽고 다시 보니 / 살갑게 돌이 웃는다 시간 밖의 저 생명 /이다. 해탈의 저 표정, 시간 밖의 생명이란 결구에 오싹 한기를 느낀다.

수석문화(壽石文化) 난문화(蘭文化)의 발상지인 중국에선 “수석은 물형(物形)에서 시작하여 물형에서 끝나고 난은 송매(松梅)에서 시작하여 송매로 끝난다.” 는 말이 있다. 수석에 입문하게 되면 기묘한 물형석에 매료되어 물형만 찾다 이윽고 어떤 경지에 도달해도 급기야는 물형의 진수에 매료된다는 얘기다. 난에 있어서도 처음 송매에 혹 하였다가 난선(蘭仙)의 경지에 이르러도 송매의 진중미를 탐애한다는 얘기다. 물형석(物形石)은 사물의 형상을 닮은 돌을 일컫는다. 인상석은 물형석의 일종으로 사람의 얼굴 형상을 닮은 돌을 말하는데 인상석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그야 말로 천태요 만상이다. 제대로 생긴 인상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딱 떨어지는 인상석은 하늘의 별따기로 한 자 내외의 규격석에 이목구비가 제격이라면 그 가격이 억대를 호가 한다. 

 시인이 대면한 인상석들은 필자가 20년 가까이 제작한 인상석 작품들이다. 시조 작품 〈표정〉의 감상에 참고가 될까 싶어 제작 경위를 설명 드린다. 웰빙과 웰다잉 시대인 오늘 날 불로장수를 꿈꾼 徐福文化는 재조명 되고 있다. 나는 거제 해금강 서쪽에 있는 우제봉에 새겨진 「서불과차(徐市過此)」에 관심을 두고 이를 연구해 왔다. 서복과 서불은 같은 사람이다.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 본기에 서복이 동남동녀 3천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찾아 동도 하였다는 기록에 의거 그 3천명을 인상석으로 재현하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하게 이르렀다. 그렇게 하여 20년 세월 동안 얼굴 모양의 머릿돌과 그에 걸맞은 몸통돌,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받침돌 까지 6천 점에 이르는 돌을 수집 후 이를 연결하여 ‘인상석’이라 이름 한 작품 2,000여점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탤런트 박원숙씨가 사고로 아들을 잃고 쓴 자전 에세이집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를 페러디 하여 “2,000개를 제작한 놈이 3,000개는 못 만들어”하는 오기로 지금도 이를 제작하고 있다‘ (각설하고) 시인의 3수 연작 〈표정〉은 첫 수에서 셋째 수에 이르는 시상의 전개가 유연하고 각 수의 연계가 매끄러움을 잘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이 하나의 인상석이 되었는가 했더니, 2천 인상석이 제 각각의 사연을 노래하는가 하면 마지막 자신을 닮은 돌에서 시간 밖의 생명을 읽어 낸 혜안은 예사롭지 않다.비대면의 인간사를 비웃기라도 하는 양, 인상석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하다. 나도 그 표정을 닮고 싶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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