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04」
 소나무 영정(影幀)

    윤 혜 반

   한여름 성난 폭우
   밤중에도 쉬지 않아

   벗했던 소나무의
   큰가지 꺾어놓고

   계곡의 물 울음소리
   유리창을 뚫었다.

   곤궁한 일상속에
   한 계절이 지나가고

   때맞춰 시름시름
   낙락장송 앓더니만

   누우런 솔잎을 닮아
   내 마음도 시드누나.

   날 새면 함께 했던
   우리 이제 이별인가

   진작에 네 모습을
   화폭에 담아둘걸

   늦게사 영혼을 담은
   네 모습을 그린다.

◎ 시련과 명품 • 1
名자 돌림이 있다. 명문가•명문대•명승지•명곡•명차•명품•명인 등 名字 돌림 말이다. 유명세 때문에 더러는 짝퉁, 즉 가짜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도 나왔다.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이다. 2022년 뉴욕 경매시장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한 대가 1,543만 달러(약 201억)에 팔렸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의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가 만든 바이올린을 말한다. 현재 550여 대가 남아 있으며 실제 연주되는 것은 100대가 채 안된다고 한다. 201억에 팔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단순한 명품 악기가 아니다. 음악계의 한 역사를 상징하는 유물이며 예술품이다. 
 
도대체 이 바이올린이 무엇 때문에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악기의 가치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악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이 빚어내는 소리인 것이다. 아무리 고가의 악기라도 악기의 고유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당연히 악기로서의 가치는 무의미할 것이다. 근래에 와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원인을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밝혀내었다. 바로 그 비결은 그 나무의 재질이 가지고 있는 밀도에 있었다. 이 나무는 로키산맥이 있는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대, 일명 수목 한계선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생한다. 수목 한계선은 바람이 매섭고 눈보라가 심하며 강우량이 적어 그 이상의 곳에서는 수목이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어진 선이다. 그렇다면 왜 여기에서 자생하는 나무가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가 될까.
 
먼저 이곳 나무는 아주 거세게 불어오는 강한 칼바람과 눈보라에 맞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람의 저항을 최소로 줄여야 했다. 최대한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만이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 낮은 자세가 마치 무릎을 꿇은 형상이었다. 나무 본연의 자세를 취했다간 견디지 못해서였다. 이런 혹독한 기후 환경이 나무의 재질 밀도를 강하게 할 수 있어서 그 나이테는 공명이라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였다. 이 나무를 사람들은 ‘무릎 꿇은 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나무는 악기의 소리를 잘 진동시키기 위한 공명이 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상당히 고가의 악기가 된 것이다. 이 나무는 그런 외부의 혹독한 기후 환경이 없었더라면, 또한 있었더라도 그런 환경을 극복해서 생존했기에 명품 바이올린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로키산맥에서 초라하게 자라고 있는 무릎 꿇은 나무가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수목의 한계선인 로키산맥 삼천 고지

이곳의 나무는 일년내내 불어오는 세찬 바람 때문에 곧게 자랄 수 없어 키를 낮추고 몸은 바람을 등진 채 휘어져 그 형상이 마치 무릎을 꿇은 것 같아 사람들은 ‘무릎 꿇은 나무’라 일컬었네. 뉘 알리오 이 나무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재료가 되는 줄을, 그래서 위대한 예술품을 두고 시련을 견디고 피어난 꽃이라고 말한다.
                           -拙詩, ‘시련과 명품’, 전문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 ‘악출허(樂出虛)’가 나온다.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텅 빈 대나무 통 같은 속이 빈 악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속이 빈 악기라고 해서 전부 명품 악기는 아니다. 이곳 바닷가의 바람이 맞닿는 절벽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법이 없다. 사스레피는 위를 향하여 바위에 납작 엎드리고, 돈나무 따위는 만세를 부르듯 하늘을 향하고 있다. 강풍에 살아남기 위한 요령이다. 그러나 이런 나무들은 쓰임새가 별로 없다. 고작해야 땔감 정도다. 무릎 꿇은 나무에 비하면 그 고통이 보잘것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련을 버텨내어 거칠대로 거칠어진 껍질 속으로 다져진 나이테만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최고의 명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춘란은 엄동설한을 견뎌내었기에 애란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어둡고 차게 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꽃을 기대할 수 없다. 설중매가 그러하고 인동초가 그러하다. 고통을 감내해야 아름다움과 향기를 떨칠 수 있는 것이 어찌 자연뿐이겠는가. 사람도 그렇다. 맑은 영혼을 지니고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여건에서 살아 온 사람이 아니라 한겨울 눈보라 같은 역경과 난관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다. 입춘이 갓 지난 지금 조팝나무 가지 끝에 쏭알쏭알 맺힌 망울을 보면서 무릎 꿇은 나무가 전하는 의미를 헤아린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소나무 영정>은 세찬 바람을 동반한 폭우에 큰가지를 잃은 낙락장송이 끝내는 고사하고 말아 늦게사 화폭에 담는 아린 심사를 3수 연작으로 읊은 윤혜반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시작 노트’를 옮겨 본다.

‘그 모습이 장승같이 든든하였기에 벗했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세찬 바람을 동반한 폭우에 그만 큰가지가 부러지고 그나마 버티던 솔잎마저 변해가는 모습에 같이 아파하고 이별의 설움에 내내 우울한 심사입니다. 풍성한 솔잎으로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기, 그 모습을 영원히 남겨 놓아 봅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거의 전 지역에서 자라고 있으며, 그 품종과 쓰임새도 다양하다.

소나무는 정착성이 유별난 수종이어서 옮겨심기가 까다롭다. 소나무 뿌리의 기운을 돕고 유익한 박테리아를 증식시키는 데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한 말 정도의 막걸리를 먹은 소나무의 솔 빛은 윤이 나고 수세가 왕성해진다. 한국인의 심성을 닮아 막걸리를 즐기는 조선 소나무, 그래선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래서일까, 애국가에도 올려지고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독야청청한 소나무의 절개와 지조를 읊었다. 소나무는 장수의 영물 십장생으로도 여겨져 사랑을 받았다.

찬바람 서리에도 변하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기에 소나무를 노래한 시인들이 많았으나 조선 초기 한성부윤을 지낸 운학제(雲壑薺) 정구(鄭矩)의 시가 그중 뛰어났다. / 가난한 사립문 앞 늙은 소나무 / 백 년 동안 눈비 맞아 수염 긴 용이 되었네 / 저문 날 깊은 골짜기 눈서리가 다 메워도 / 살펴보니 빼어난 그 모습 늠름하구나 / (原詩, 松山幽居) -청렴한 마음과 변하지 않는 절개를 그린 심경이다.

세찬 바람을 동반한 / 한여름 성난 폭우 밤중에도 쉬지 않고 / 몰아쳤다. 어찌나 드셌던지 자고 나면 늘 함께했던, 아름드리 소나무의 큰 가지를 꺾어 놓았다. / 계곡의 물 울음소리 유리창을 뚫었다. / 삽시간에 불어난 계곡물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크고 우렁찼던지 유리창을 뚫었단다.코로나 팬데믹 속에 일상은 늘 곤궁했다. 그러구러 한 계절이 지나가는데 / 때맞춰 시름시름 낙락장송 앓더니만 / 푸르기만 했던 솔잎도 누렇게 시들어 갔다. 이를 지켜보는 시인의 마음도 시들어 간단다. 이때 애주가라면 장취불성(長醉不醒)하련만.

자고 나면 마주했던 소나무였건만 이제 이별이 눈앞이다. / 진작에 네 모습을 화폭에 담아 둘걸 / 후회가 가슴을 저미는데 / 늦게사 영혼을 담은 네 모습을 그린다 / 그래서 태어난 <소나무 영정>이다. 오늘도 소나무는 산야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한 켠에 우뚝 서 있다. 늘 푸른 추억으로,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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