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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을 여는 시(213): 김복언] '시인의 길'김복언) 거제면출생 / 국립목포해양대 졸업 / 경상대대학원 / 삼성중공업 32년 근무 / 거제대학 교수 퇴임 /&

월요일 아침을 여는 시(213)

시인의 길

 

 

 

 

 

 

         김복언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연인들은 해맑게 웃습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속에도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뒤덮은 흰 눈 속에서
아이는 웃음 짓기 시작합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언제나 희망은 태어나고 자라나고
다시 시작합니다
시 하나 글자 하나 붙들고
씨름한 기나긴 세월은
언제나 기쁨이었습니다
지새운 밤만큼 무거운 삶의 무게 조차도
이기지 못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나씩 태어나는 글귀를 보며
또 하나의 사랑을 만납니다
산마루로 기어가 홀로 허물 벗고 나면
서녘하늘 노을이 열반에 들 듯이
버려도 버려도 다시 벗어야하는 애벌레 허물처럼
그렇게 세월은 지나가고
함은상*은 그렇게 시인의 길로 인도합니다

*함은상은 함축, 은유, 상징의 합성어 

 

     윤일광 시인

감상) ‘시인(詩+人)’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까지 시인이라고 하면 시를 쓰는 사람을 의미했다. 더 좁게는 문단에 등단한 사람만 시인이라고 불러 주었다. 아무리 좋은 시를 쓴다고 해도 등단하지 않았다면 시인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 자신의 프로필에 ‘시인 아무개’라는 이름표를 붙이지도 못한다.
그럼 등단은 하였지만 일 년 동안 시 한편 발표하지 않는 사람도 시인인가? 등단이라는 과정은 거쳤지만 시의 수준이 아직 습작에 불과하다면 그도 시인이라고 불러주어야 하는가? 등단이라는 타이틀은, 이 사람은 습작의 단계를 벗어나 자기만의 시적세계를 구가(謳歌)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공인된 증명이다. 시인이라면 그 이름에 걸맞은 수준의 시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농면허’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 하나는 시인이란 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독자도 시인이라는 것이다. 현대시의 개념은 시란 시인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 의해 완성된다. 작금의 우리 문학은 독자교육에 실패했다. 소비(독자)없는 생산(시인)은 스스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요즘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 이유는 첫째, 상품(시)의 질이 떨어져 소비자를 유인하지 못하고, 둘째, 시를 소비해줄 수준 높은 독자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복언 시인의 <시인의 길>은 ‘시 하나 글자 하나 붙들고 씨름하는’ 시인의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작 시인이라면 ‘문을 미는 것이 좋은가(퇴推) 문을 두드리는 것이 좋은가(고敲)’하는 글자 한 자 때문에 밤을 새는 사람이어야 한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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