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26
개망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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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옥 배
장거리 여름 여행 조금은 지루한데
요란한 소나기는 오히려 청량하다
새롭게 음악을 틀고 기분 다시 내 본다.
모퉁이 돌아들자 들꽃들 지천이다
한눈에 살펴봐도 개망초 분명한데
무리로 펼쳐진 풍경 꿈결같은 별밭이다.
저렇게 자랑없이 무심히도 피었지만
소꿉놀이 반찬하고 학예회 땐 꽃다발로
모두가 생생하구나 개망초꽃 추억들.
◎소박함의 미덕
절기상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가 지난 일요일이었는데 폭염은 절기를 비웃기라도 하는 양 맹위를 떨치고 있다. 수도권에는 100년 만의 집중호우라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 어수선한 세상, 그야말로 풍진세상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른다. 거기다 모기는 극성이다. 예년엔 폭염에 맥을 못 춘 모기이련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이열치열이라던가. 궁한 나머지 더위를 잊을 요량으로 작품 제작에 매달렸다. 나는 오랫동안 석부작에 열중하여 왔다. 근간에 와선 수마가 잘된 원형석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소재는 수입석으로 해결한다.
원형석은 소박미(素樸美)와 고졸미(古拙美)가 넘친다. ‘소(素)’는 원래 염색되지 않은 실을 가리킨다. 염색되지 않은 실은 흰색이다. 그래서 ‘소’는 ‘희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흰옷을 소복(素服)이라 하듯 난에서의 소심(素心) 또한 같은 의미이다. ‘박(樸)’은 갓 벌채한 원목을 말한다. 소박이란 가공되지 않은 사물의 원형을 가리키는 말로 기교가 가미되지 아니한 자연스러움을 뜻한다. 고졸미(古拙美)는 예스럽고 꾸밈없이 수수한 아름다움이다. 소박함은 단순히 사람의 품성이나 됨됨이를 일컫는 말일 뿐만아니라 예술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물살에 닳고 닳아서 남을 것만 남아있는 원형석에서 나는 소박미와 고졸미를 발견했다. 원형석의 한가운데를 코어드릴로 파내고 커터기로 다듬어서 돌화분을 만들었다. 돌의 크기는 한 뼘부터 두 자 정도가 대부분으로 이를테면 소형 돌확인 셈이다. 돌가루로 인한 폐질환으로 폐활량에 문제가 있지만 이에 열중하고 있다. 원형석이 보여주는 원시적 소박미에서 대교약졸(大巧若拙)을 떠올렸다. 대교약졸은 크나큰 기교는 유치한 듯하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 말의 원문(原文)은 이러하다.
대성약결 기용불패 대영약충 기용불궁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정승조 한승열 청정위천하정(大成若缺 其用不幣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淸靜爲天下正)
크나큰 이룸은 모자란 것 같지만 아무리 써도 낡지 않는다. 크나큰 채움은 빈 것 같지만 아무리 채워도 빈 곳이 남아 채울 수 없다. 크나큰 곧음은 굽은 듯하다. 크나큰 기교는 유치한 듯하다. 크나큰 말씀은 어눌한 듯하다.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긴다. 차디참이 뜨거움을 이긴다. 그래서 고요함은 천하의 바른 것이 된다. 대교약졸의 백미로 봉은사에 걸려있는 추사의 ‘판전(版殿)’을 치고 있다. 어눌함과 고졸미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 찬한다. 모든 기교를 버린 채 붓 가는 대로의 자연스러움만 남긴 것으로, 파격이라 하기보다 어린애 글씨 같은 천연스러움이 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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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의 ‘판전’ |
그림으로는 운보 김기창 선생의 바보산수시리즈이지 싶다. 조선시대 민화의 현대적 해석으로 풀이되는 바보산수화는 정형화된 일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환상적인 자연 세계를 핵심으로 담고 있다. 때문에 정교하고 화려하기보다 어찌 보면 고졸하고 졸박한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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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보의 ‘바보산수화’ |
주목할 점은 둘 다 만년의 작품이란 점이다. ‘판전’은 추사가 죽기 3일 전에 남긴 작품이다.
절경석(絶景石) 마다하고 몽돌에 눈이 갔다.
서투른 연장질로 진종일 매달리어
돌가루 뒤집어쓰도 맘은 이리 가볍다.
가장자린 남겨놓고 속은 온통 들어 내어
넉넉한 품세에다 석위＊가 자리하자
운보의 바보산수화가 벗하고자 보챈다.
- 拙詩, ‘돌확 하나 빚어놓고’, 전문
※석위(石葦): 고란초과의 상록 양치식물.
우리들의 삶에도 화려함보다도 소박함이 중요하다. 소박함은 그야말로 미덕이다. 지금에 이르러 우리들의 인위적 기교들을 덕지덕지 달고 살아간다. 가식적인 장식들을 걷어내고 소박함만 남겨 둔다면 진솔한 삶이 될지니, 이러한 삶이야말로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폭염 속에도 벼는 튼실히 자란다. 처서가 기다려진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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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곡 이성보 게간 현대시조 발행인 |
시조 작품 <개망초꽃>은 여행길에 만난 군락의 개망초꽃에서 느낀 감회를 3수 연작으로 읊은 심옥배 시인의 작품이다.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본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장마철이라 후덥지근하고 변덕스런 날씨에 피로하였지만 온 산천 군락으로 핀 개망초꽃에 그만 차를 멈추고 한참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개망초꽃은 어릴적 다정한 친구였는지도 모릅니다. 소꿉놀이에 반찬이 되었고 학예회 때 화환으로 때론 꽃다발로 다정히 어린 손을 잡고 놀아줬던 개망초꽃을 산천 군락으로 보니 그저 좋고 여전히 참 예쁩니다. 농사꾼에게는 잡초고 소먹이로 주는 풀이지만 천상의 꽃이요, 우리네 삶이요. 소망이고 화해의 꽃으로 여름 들녘에 핀 저 꽃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개망초는 버릴 것 하나 없는 들풀이다. 그도 그럴것이 전초는 약용으로,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이고, 꽃은 꽃차가 되고, 잎은 염료로 이용되니 말이다. 거기다 이렇게 시의 소재로도 줄곧 쓰이고 있으니 오죽 좋으리오만 너무 흔하다 보니 사람들은 좋은 줄을 모르고 있다. 개망초꽃의 입장에서 보면 분하고 서운한 일이다.
시인 이채는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이 아닌 사람 없으되
내가 잡초가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하략)
라고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에서 읊었다.그렇다. 개망초꽃도 곱게 보면 한없이 귀한 풀이나 밉게 보면 잡초 중에서도 잡초다.
장거리 여행, 그것도 여름 여행이면 조금은 지루하다. 장마철 어쩌다 만나는 / 요란한 소나기는 오히려 청량하다. / 그렇다. 청량하고 말고다. 지루함을 덜고자 / 새롭게 음악을 틀고 기분 다시 내 본다. / 경쾌한 음악은 기분을 새롭게 하고 졸음까지 쫒는다.
그때다. / 모퉁이 돌아들자 들꽃들 지천이다. / 그 들꽃은 한눈에 살펴봐도 개망초 분명/했다. / 그 아름다움이라니, 세상천지가 개망초꽃 이었다. / 무리로 펼쳐진 풍경 / 그것은 / 꿈결 같은 별 밭이었다. / 그 황홀한 풍경에 젖은 시인의 행복에 겨운 모습이 보인다. 시인도 한 포기의 개망초꽃이었을지도 모를레라.
꽃이 한 두 송이 피었을 때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하겠다. 하지만 / 저렇게 자랑 없이 무심히도 피었구나. / 그러길래 개망초꽃은 어릴 적 다정한 친구였는지도 모른단다. 소꿉놀이 할 땐 반찬으로 학예회 땐 꽃다발이 되었다. 어느 것 하나인들 잊으랴. / 모두가 생생하구나 개망초꽃 추억들. / 개망초꽃, 천상의 꽃이길래 너를 닮았으면 싶다고 한다.
잡초 되기 싫어 그대를 꽃으로 본다는 이채 시인처럼 말이다.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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