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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황설수설⑭]'영어는 대머리다'황양득:육사48기졸/전 서울대학군단교관및훈육관/에이펙아카데미 & 어학 원장

                     ⑭영어는 대머리다     

지금은 미국의 인명사전에 한국인을 찾으면 제법 많은 인물이 등장할 것이다. 1999년에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의 대학(local college) 도서관의 인명사전에는 딱 세 사람이 나왔다.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문선명이었다. 경제계의 정주영, 이병철 회장이 없는 것이 의아했다. 예상외의 인물인 문선명은 Moonie라고 표현이 되었고 통일교를 따르는 신도들은 Moonies라고 불렸다. 80년대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수많은 해외 통일교 신자들이 성지수호를 위해서 참전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던 셈이다. 박통은 쿠데타와 경제 부흥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이승만 박사는 딱 세 단어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Command of English”.

 기록에 따르면 1905년 2월 조지워싱턴대학 2학년에 편입하여 학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석사를 마친 이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1910년에 받았다고 한다. 물론 당시 미국의 학위 수여가 우리 대학의 학위 과정과 차이가 있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토플 시험도 없었을 것이고 도미 전 영어 학원도 다니질 않았을 터인데 놀라운 학업 능력으로 불과 5년 만에 일부 학사와 석사 그리고 박사 학위까지 마친 것은 지금도 불가사의 한 일이다. 해방 이후 미 군정하에서 권좌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6.25사변 후 UN군 참전을 이끌고 또 전쟁 후 1954년에는 한국전에 참전한 아들과 남편을 잃은 미국의 수많은 어머니에게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를 의회에서 연설한 능력을 “Command of English”라고 말한다. 번역하자면 “영어의 구사력”, 쉬운 말로 “영어를 꽉 잡고 있다”라는 말일 것이다.

 영어 좀 하느냐고 물어보면 영어를 못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미국에 사는 한인 교포들이다. 이 엉터리 같은 대답에 왜 못하냐고 더 물어보면 핑계가 다양하다. 학교를 안 다니고 돈 만 벌어서 그렇다는 둥, 학교만 나왔지 실전 경험이 없어서 영어가 도무지 늘지 않는다는 푸념 어린 반응도 들을 수 있다. 영어가 그만큼 어려운 언어이기도 하지만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를 배울 처음부터 듣기보다는 알파벳이나 문법을 먼저 익힌 세대들에게는 영어는 난공불락이다. 최근에는 필자에게 영어를 기본이라도 하는 방법이나 좀 더 잘 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면 영혼 없는 대답처럼 “영어는 대머리입니다.”라고 둘러댄다. 의외의 대답을 듣고 상대방은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더는 질문을 이어가지 않는다. 노년에 탈모 때문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는 것이 현명하듯이 영어도 학창 시절을 훨씬 지난 후에는 쉬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조금 마음을 비우자는 얘기다. 그러나, 요즘은 영어 교육이 예전과는 달리 실용적이고 실질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조급한 마음에 글을 읽고 쓰기보다는 듣고 따라서 말하는 것이 우선으로, 충분한 교육과 반복이 병행된다면 영어 정복의 길이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해외 유학이 많이 줄었지만, 그간 누적되어온 유학생들과 현지 영어권 직장인들의 증가로 국내의 영어 교육의 인프라 및 학생들의 실력도 과거와는 천양지차이다.

 본인은 1997년 2월 말 5년 차 전역 후 부산 하단동 동아대 앞 적자투성이 당구장을 운영하면서 결혼을 하고 6개월 만에 당구장을 되살려 결국 권리금을 받고 팔아 드디어 영어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영어 공부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학원 강사의 도움으로 교육용 미국영화를 빌려다 공부했으나 알아듣는 대사는 “I love you” 외는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혼자서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백일도 지나지 않은 아들을 두고 1년 후 필요한 토플 점수를 따서 온다고 가족과 약속을 하고 무작정 날아갔다. 미국으로 건너가 첫 2개월은 어학연수과정의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현지 미국 학생들과 각국 유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98년 초는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환율이 거의 1900원대로 금전적 부담 때문에 저렴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해 가을쯤 운이 좋게 가족도 동반 비자가 나와 함께 살게 되었고 1년이 지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첫 발표 시간에 짧은 영어 구사력을 만회할 목적으로 서두에 농담을 준비했다. “Who is the coolest and hottest professor in the U.S.?” 한국식 아재 개그가 교수와 학생들을 당황하게 했다. 누구도 답을 못하고 여자 교수는 자기를 가리키는 줄 알고 하얀 얼굴이 빨갛게 홍조를 띠었다. 갸우뚱거리는 동료들과 착각의 여교수를 계속 지켜볼 수 없어 답을 말했다. “It’s Dr. Pepper.” 박장대소는 아니더라도 금방 반응이 올 줄 알았는데 4~5초가 지나서야 얼굴에 미소를 띠는 학생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학생들도 있었다. Pepper가 고추로 번역되기보다는 후추나 피망이고 red pepper나 chili라는 표현이 있어야 고추에 가깝다. Dr. Pepper는 음료수니 냉장고에 있어서 물리적으로 시원하고 고추니 맵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고 박사이니 멋질 것이고 고추니까 성적 분위기를 풍김에 걸맞다는 콩글리시 개그를 미국인들과 이방인들이 어여삐 봐준 것이다, 

 발표란 발표에는 모두 다 이 조크로 분위기를 띄우고 발표 내용이 부실하고 외운 영어가 막혀도 후한 점수를 달라고 조르는 압박용 농담이었다. 영어에서 대머리를 bald라고 한다. 님과 남처럼 bold는 “용감한, 대담한”이라는 뜻이다. 영어 말하기는 용감하게 말을 해야 말하기 실력이 향상된다. 그러고 보면 대머리는 태양에 맞서는 용감한 사람이다. 우리 거제시의 영어 교육도 좀 대담하게 영어 혼용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길 것을 주문하고 싶다. 더 나아가 삼성이나 대우조선소 자체적으로 하는 선주들과의 파티 외에 거제시에서도 주관하여 모두 한자리에 모여 같은 하늘 아래에서 국적과 회사는 서로 다르지만 자주 모여 친분과 우정을 쌓는다면 다음에 재발주 계획이 있을 때 바람의 언덕 커피숍이나 어느 호텔 연회장에서, 장평이나 옥포의 술집에서 다음번에는 우리 울산바위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할 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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