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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미행] 쇠바우의 딸이미행/경남 거제 출생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2019,7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그날은 동네가 아니라 섬 전체의 잔치였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옹기종기 모여서 뒷산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그곳에선 마을로 들어오는 배를 먼저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 까치발을 하고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섬들 사이에서 오색 깃발을 단 배들이 보였다. “저기 온다.”는 소리에 모두 뛰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을 뛰다 보니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아픈 것도 아랑곳없이 뛰어오는 아이들의 맨 앞에는 내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제일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엄마도 동네에서는 내 이름으로 불렸고 우리 집 물건에는 모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동네뿐 아니라 근방에서 내 이름이 곧 우리 집을 뜻 했다.

바다에는 오색기를 단 배들이 우리 배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북과 꽹과리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뭍에서는 사람들이 배에서 던져주는 떡을 서로 줍겠다고 난리들이었다. 그것은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물이 숨겨진 떡을 줍기 위해서다. 모두가 떡을 주워서 뒤집고 있을 때, 나는 뛰어서 선창으로 갔다. 우리 배는 동네 앞바다를 몇 바퀴 돌고 선창으로 왔고, 나는 배를 타기 위해서 제일 앞에서 손을 뻗었다. “댓 끼 계집애가 부정 타게시리. 저리 가라. 이 집 장손 어디 있노? 장손 이리 온나.” 낯선 할배의 호통 소리에 이제 걸음마를 뗀 남동생을 배에 태우고는 배는 다시 동네 앞을 한 바퀴 돌았다. 나도 탈 거라고 울면서 버티다 결국 엄마 손에 엉덩이를 맞고 끌려가다시피 사람들이 없는 구석에 내팽개쳐졌다.

먹을 것도 귀한 시절 다른 아이들이 검정 고무신을 꿰매신고 다닐 때, 나는 꽃신을 신었고 부산에서 양장점을 하는 삼촌에게서 그 시절 최신 유행하는 옷을 맞춰서 입었었다. 그렇게 우리 집 사랑을 독차지하던 나는 어느새 남동생에게 가려져 있었다. 시험지 100점을 맞고 학교에서 상을 타도 모든 관심과 사랑은 남동생에게 향했다. 내가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이유도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며 지인을 통해 직장을 잡아놓았었다. 그날 도시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고 바다에서 동네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었는지. 넉넉지 못한 살림에 사흘이 멀다고 손님상을 차리면서도 싫은 내색도 안 하는 엄마에게도 화가 났었다. 

그렇게 시작된 도시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쉬는 날 없이 일하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보니 몸이 축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과로와 영양실조로 쓰려져 병원에서 눈을 떴다. 그때 몸을 추스르려 며칠 집으로 왔을 때, “하라는 놈은 안 하고 하지 말란 놈은 저리할라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하려고 하는 놈이나 시켜줄걸.” 하시며 돌아앉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시작된 일이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남이었기에 할머니와 어린 동생들 때문에 어촌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조그만 섬마을에서 고기를 잡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동생들 장가보내고, 할아버지의 역할까지 하면서 나까지 대학을 보낼 형편은 안 되었던 것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었다.

동네에선 내가 지나갈 때마다 어른들이 쇠바우, 쇠바우 하고 놀렸다. 어릴 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뒤에 그것이 아버지 함자라는 걸 알았다. 쇠로 된 바위, 이름처럼 살다 가셨다. 불합리한 세상에 타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은 늘 아슬아슬해 보였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어색해 보였는데, 어릴 때는 내가 원하는 것에 급급해서 아버지가 짊어진 짐을 보지 못했다. 

추운 겨울, 고기잡이하러 바다로 가신 아버지는 배와 함께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혼자되신 어머니 옆에는 쇠바우의 딸이 있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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