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화평의 12.12    

육, 해, 공군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는 삼군의 총성 없는 대리전쟁이었다. 체육대회의 책임자였던 이규동(육사 2기) 육사 참모장은 축구부의 부장이자 골키퍼였던 전두환 생도를 눈여겨보았고 급기야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장인은 1959년에는 동기생인 6관구 사령관 박정희(육사 2기)에게도 사위 자랑을 하였다. 그러한 인연의 시작으로 1961년 5.16 군사혁명 이틀 후 서울대 문리대 ROTC 훈육 장교였던 전 대위는 육사 생도(18~21기)들을 데리고 동대문에서 서울 시청 앞까지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주도했다.

  다음날은 공군사관 생도들이 서울에서, 해군사관 생도들은 부산에서 지지 행진을 이어갔다. 전두환은 1963년 소령 진급 후에는 박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특히 1968년 1월 21일, 31명의 북한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기습사건 당시에는,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대 대대장으로 평상시 청와대 기습을 대비한 철저한 교전 훈련과 적의 대침투대책을 잘 세운 결과로 군경 합동으로 28명을 사살하고 김신조를 생포하는 전과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대령이나 준장 시절에도 공수특전단과 월남전 참전을 통해 군 통수권자의 총애는 계속되었다. 소장 진급 전에는 대통령경호실 보안차장보 겸 작전차장보로 여전히 박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근무하였다. 1978년 전두환 소장이 1사단장으로 재임할 때는 제3땅굴까지 발견하여 전두환을 향한 박정희의 신뢰와 역으로 충성심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1979년 만 48세의 전두환은 박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과 비호하에 보안사령관이 되었고 허화평 대령은 전 사령관 비서실장으로 비로소 두 사람이 첫 근무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허 대령은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서 생생히 목격한 10.26과 12.12를 우주의 탄생과 소멸을 설명하는 블랙홀로 한국 현대사와 정치사를 정리했다. 79년 3월 부임 8개월 만에 궁정동 안가의 총성은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10.26은 보안사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론에 따르면 소수 주동자에 의한 궁정 또는 친위 쿠데타였다. 그 핵심은 사태를 주도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청와대의 1인자 비서실장 김계원, 그리고 육군의 최고 실권자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였다. 사건을 실행하고 진두지휘한 책임과 공모한 중앙정보부 부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김재규 중정부장은 역사와 법정의 심판대에서 자신의 몫을 치렀다. 

 그에 반해 목숨을 부지한 김계원과 정승화에게는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특히 정승화 육참총장은 박 대통령 시해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정 총장은 모두 40여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질 당시 궁정동 중앙정보부 내 식당에서 식사하고 시해 후 붉게 물든 와이셔츠 차림에 맨발의 김재규와 정보부 승용차를 함께 타고 육군 본부 벙커로 향했다는 결정적 단서에 주목을 해보자.

  그는 차 안에서 거사를 전해 듣고 대통령의 유고를 인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일 박 대통령을 수행하여 현장에서 김재규와 중정 요원들이 박정희와 차지철 그리고 청와대 경호 요원들을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한 김계원 비서실장은 김재규의 거사가 돌발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이고 청와대 내 우군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때야 소집된 비상국무회의에서 신현확 부총리의 다그침에 최규하 총리에게는 미리 알려 준 대통령 유고 사실을 결국 털어놓게 되고 김재규가 체포될 때까지 정승화는 모든 사실을 함구하고 있었다. 허화평은 이 상황을 ”정승화는 김재규의 인질처럼 연기하고 있었다.”라고 정리했다. 

 시해 후 곧 김재규와 함께 육본에 도착한 정승화는 군 지휘 체계상 노재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장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지휘계통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군 수뇌부를 부르고 계엄선포와 병력 동원을 명령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망을 인지한 각료들과 노 장관은 정승화와 전두환을 급히 불러 김재규 중정부장 연행을 지시했다.

 그러나 정 총장은 전 사령관에게 “김재규를 보안사 안가로 데려가 정중하게 잘 모셔라’라고 말했다. 안가로 직접 데려간 허삼수 대령은 곧 신동기 수사관에게 인계하고 수사 중 극도로 불안해하며 횡설수설하는 김재규가 범인임을 알고 허 비서실장은 전 사령관에게 보고 후 서빙고 분실로 데려갔다. 바로 10.26의 내막과 실행범 김재규, 공범 정승화, 카메오 김계원의 행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사를 담당한 보안사 내 육사 후배들은 정 총장의 구속을 수차례 건의하였으나 이미 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의 연행을 미루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결국 12월 6일 연행 구속을 결심하고 6일 후 12월 12일에 단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정승화의 저항 조치로 11월 16일에 전역을 기다리던 장태완 소장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전격 임명했다.

 그러나 수도경비사령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로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에게 보고도 생략했다. 정승화의 당일 행적과 시해 사건 후 계엄사령관으로서의 여러 월권행위를 문제 삼는 보안사를 견제할 목적으로 우직한 심복 장태완을 곁에 두었던 셈이었다. 결국, 12.12는 전두환과 장태완의 전장(戰場)이었다. 

 그리고 정 총장 편에 선 상관인 특수전사령관 정병주를 구국의 일념이라는 블랙홀에 빠진 정규 육사 하나회 특전사 여단장들이 배신함으로 정병주와 전두환의 정전(停戰)이었다. 잘못된 장소와 시간의 운명이지만 그러나 끝까지 군인 본분을 지킨 특전사 비서실장 김오랑(육사 25기) 소령의 장렬한 전사와 그의 아내의 불행한 일생의 마감이 마음속을 헤집는다.

 안타깝게도 국방부 헌병중대 병장 정선엽과 청와대 경호실 33헌병대 일병 박윤관이 정 총장 연행 당일 사망했다. 12·12 사태로 사망자와 부상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불행은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다. 이후 당사자들의 정계 입문과 당시 야당과의 공조로 더욱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왜곡되게 되었다. 

 역사의 기록은 12.12는 말 그대로 시비시비(是非是非)다. 1994년, 서울대 학군단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필자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민병돈(육사 15기 하나회) 전 육사교장이 당신의 생도 시절 중대 1학년이었던 허화평(육사 17기 하나회)의 큰딸과 중매를 아쉬워하던 기억으로 필자에게 허화평의 12.12는 딸이 1명인가 2명인가의 문제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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