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국시(反共國是) 통일국수(統一國粹)

이북 출신의 육사 김병하 교수(육사 14기)는 김일성 암살이나 쿠데타는 이북 실정을 잘 모르는 남한의 희망 사항이며 이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안정화 되어 있고 강하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전에 유력 일간지의 김일성 사망(1986, 11월)이라는 오보가 태평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져서 다시 온 세계로부터 조롱을 받았던 터라 가히 충격적인 훈화였다. 30여 년이 지난 2020년에도 김정은 사망설 보도로 다시 한번 소란과 눈총을 피하지 못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유고나 쿠데타, 혹은 인민봉기가 일어나면 통일할 수 있을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사건이 1986년 10월 국회에서 일어났다. 신민당 유성환 국회의원은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라는 취지의 대정부질문을 했다. 이 발언으로 당사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속이 되었다. 후일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국민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영구분단 획책론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통일지상주의자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반공은 1961년 “5.16혁명포고문”에서 반공을 국시로 하고 반공체제를 재정비한다는 군사혁명위원회의 공약 1호이다. 이는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지며 반공의 산물로 유신독재 및 군부 정권연장을 지속한다는 반공 영구분단론의 근간이 되어 그 추종자들이 남한 사회의 기득권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한편, 통일지상주의의 시작은 해방 후 신탁, 반탁의 남북 분단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공이나 공산주의 등 이념을 뛰어넘어 민족과 겨레 그리고 평화를 강조하는 부류가 통일지상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다. 

 1986년 국회에서 통일 국시 발언 소동 이후 1987년 12월 대통령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 정권은 ”물태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임 육사 출신 대통령보다 유약해 보였다. 당선 후 불과 4개월 만에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로 노태우 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1노 vs 3김 즉, 여소야대 구도로 보통사람의 6공화국은 극명한 정치적 불안정과 한계에 직면하게 되어 국정 동력의 기반이 매우 빈약하게 되었다.

 1988년 평화민주당 서경원 의원의 8월 밀입국 방북을 시작으로 이듬해 문익환 신부와 황석영 작가의 3월 밀입북, 그해 6월에는 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가 방북하여 평양 장충성당에서 남북 동시 평화통일 미사까지 봉헌하였다. 밀입국 방북의 백미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출범에 맞추어 대표로 임수경이 남한의 대표 자격으로 ”평양, 셰게청년학생축전“에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참가한 사건이다.

  당시의 언론 논평을 빌자면 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맹랑한 여자 대학생이 북한 사회에 뜻밖의 “문화폭탄”을 터뜨려 적군과 북한 인민들에게 예상치 못한 문화적 충격과 사상적 혼란을 가중한 공로가 있었다. 그러나, 임수경 학생은 남북통일을 막고 있는 것은 노태우 일당의 군부 독재 세력과 해방 후 주둔하고 있는 미국놈들 때문이므로 이들을 몰아내야 진정한 조국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연설했다. 

 또 남한에서는 통일론자들이 좌경과 용공 분자로 몰리는 현실을 개탄했다. 진보 측 인사들의 일련의 방북 행렬은 탈냉전의 세계적 흐름과 병행이 되었고 외교적 감각이 있었던 노 대통령은 과감한 북방외교정책으로 동유럽 국가 및 소련과 중국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였다. 1990년 유럽에서는 열띤 취재 경쟁의 와중에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로 동서독 재통일이라는 도화선이 점화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즉시 철거된다는 급보는 삽시간에 유럽 전역 및 전 세계로 보도되어 동독 정부가 급속히 베를린 장벽의 통제와 시민 통제력까지 잃게 되었다. 

 그 오보로 인해 순식간에 동서독 주민들이 준비한 건설 연장과 중장비가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켜 동서독으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재통일하게 되었다. 독일의 통일은 우리에게 흡수통일, 혹은 평화경제 통일이라는 새로운 모델과 희망을 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북한이 가장 회피하는 방식으로 동독의 붕괴로 독일이 재통일한 이후 13개월 만에 1991년 12월 26일에 소련연방까지 붕괴하였다. 

 이러한 연이은 붕괴사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이를 본 북한은 체제 보장과 안전을 위해 핵무장에 더욱더 사력을 다해 핵 개발을 앞당기게 되었다. 일생의 소원이었던 군정 종식을 이룬 김영삼 정권 때인 1994년에 미국이 북핵시설을 선제타격하려는 움직임에 ‘민족을 앞서는 동맹은 없다’라는 대통령 취임사로 핵시설 선제 타격을 반대했다. 

 곧, 1차 북핵 위기의 와중에 김일성이 사망하였으나 김정일은 핵무장에 총력을 다 쏟고 이어진 김대중 정권의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라는 핵 옹호 발언은 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졌다. 최근의 남북한 정세는 핵 공방으로 강 대 강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은 300기의 핵탄두 보유 목표를 천명하고 남한은 독자 핵 개발의 명분을 쌓고 있다. 이북실향민의 한을 물려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순수한 통일지상주의자다.

  한반도 비핵화, 단일 경제를 통한 평화 정착, 점진적 통일 추진, 적개심 기반의 군사 문화개선, 종전 선언 등 통일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대통령으로서의 대북 정책과 통치는 윤석열 정권의 탄생으로 남한 내에 핵 개발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날로 퍼져 그 입지가 약화하고 있다. 앞으로 남북통일은 종북좌파들의 기만 술책이라는 주장에 오히려 현재의 분단이 남한을 더욱더 강한 나라로 만든다는 통일 무용론이 득세할 것이다.

  남한의 핵무장은 통일 무용론에 탄탄대로를 깔아주는 셈이다. 평화경제 통일의 도태 원인 중 우선은 역대 남한의 군 출신 대통령들의 경제적 성과를 전 국민이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통일세나 통일기금 마련에 대한 국민의 반감과 저항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5할은 군 출신 대통령들의 지도력과 징병제에 두고 4할은 싸우면서 일한 국민 그리고 나머지 1할은 호시탐탐 우리의 목숨을 노렸던 세습 김씨 정권의 무력 위협과 피난 이북실향민들의 억척같은 삶이 토박이 남한 사람들에게 전후 재건에 대한 동기 부여의 공로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반공 국시를 먹을 것인지 통일 국수를 먹을 것인지 메뉴가 두 가지뿐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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