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산책 (305)
    대합실 풍경

    
     연담 곽호자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어둠을 밀어내는 하얀 입김이
서릿발을 세우는 새아침
대합실 점방 솥단지에는
한기 걷어내는 뜨거운 김 오른데
염치없는 허기는
새벽부터 도지는가
냄비 앞이 붐빈다

웅성거리는 공간
피우다 만 담배꽁초 널브러진
차가운 바닥
몸집보다 큰 가방 끌고
매표소 앞에 선 외국인
두리번거리는 눈동자엔
외톨이의 설움이 짙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섬이 되었고
풍경이 된 채 의자에 앉는다

젊은 아재가 굼벵이 오므리듯 하며
옆자리로 옮긴다
새벽자락 온전히
걷히지도 않은 시각
그와 의자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허물 듯
마침
서울행 첫차가
하품을 하고 들어온다

감상)

눌산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대합실(待合室)은 병원이나 역, 공항 등에 손님이나 승객이 편하게 기다리도록 마련해 둔 곳을 말한다. 1999년 철도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철도청은 일제 강점기부터 계속 사용되어 온 일제식 한자표기 단어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표기를 우리말 단어로 바꾸는 용어순화작업을 했다. 여기서 대표적인 것이 ‘대합실을 맞이방’ ‘행선지를 길머리’ ‘개표를 표 확인’ ‘승강장을 타는 곳’ 등으로 고쳤다.

그리고 나서 십 수 년이 흘렸는데 지금 과연 그런 말들이 우리 생활에 정착했느냐고 물으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정책 자체는 좋은 의도지만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한 정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언어는 소통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쉽게 소통되어야 한다.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오랜 언어관습의 장벽을 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연담 곽호자 시인의 시에서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 <대합실 풍경> 속에 나타난 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으로 시의 행간을 채우고 있다. 시의 공간은 ‘대합실’이고 시점은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울행 첫차가 /하품을 하고 들어오는’ 동안이다. 그동안의 대합실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섬세하게 그려 내었다. 대합실 안의 풍경 묘사가 얼마나 뛰어난지 시를 읽고 있는 독자도 마치 대합실 어느 한 모퉁이의 의자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일게 한다. 이 시의 재치와 해학은 3연의 ‘젊은 아재’다. 젊은 아재가 시의 화자가 앉은 의자 곁으로 조금씩 ‘굼벵이 오므리듯 하며’ 옮겨올 때 때마침 ‘서울행 첫차가 /하품을 하고 들어온다.’는 표현에서 독자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 젊은 아재의 낭패스런 표정이 읽힌다. 

이 시의 중심공간인 대합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은유하고 있으며, 기차는 그 속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갖는 희망이며 기다림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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