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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설화순례]①'죽림마을 수중 묘'"거제도의 지명. 전설 및 설화를 아세요?"- '거제도 역사.설화 맛보기'

①죽림마을 수중 묘
 
거제시 거제면 오수리 1033번지는 '죽림마을 수중묘'가 있는 '어치끝'이다. 전래되어 오는바에 따르면 이 곳은 바다면에 접한 끝으로 배귀임(裵貴壬)할머니의 묘소가 있다. 

할머니는 1853년 김해 배씨 공준(公俊)파의 장녀로 태어났다. 열다섯되던 해인 1877년 
밀양박씨 규정공파 22세손인 청복(
靑腹)씨의 차남인 영주(英柱)씨와 혼인해 슬하에 6남4녀를 두고 여든 다섯이던 1948년에 돌아가셨다.

이 무덤은 처음엔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육지로 연결된 부분이 파도에 쓸려나가 바다 가운데 묘로 바뀌어 버렸다. 물이 빠지면 무덤이 드러나 보이지만 물이 들면 무덤은 보이지 않는다.

배 할머니 무덤이 이곳에 있게된 사연은 죽림마을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배귀임 할머니는 막내 태동(泰東)씨가 결혼해 부부간 금실이 좋았음에도 수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는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낮잠을 청했다. 생시와도 같은 또렸한 꿈을 꿨다. 할머니는 잠에서 깨 자식들에게 
"꿈에 조상 같은 분이 나타나 49일후에 죽게되면 마을 끝 바닷가인 '어치끝'에 묘를 쓰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내가 죽으면 어치 끝에 묻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당시 자식들 중 어느 누구도 할머니 말에 신경쓰지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거짖말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자식들은 할머니의 생전 당부대로 어치끝에 묘를 쓰고 장례를 치뤘다. 그러자 자식이 없어 애를 태우던 태동씨 부부가 1남1녀를 얻게됐다.

자식아 없던 아들이 자식을 얻었다는 소문이 나자 죽림마을은 물론 자손이 귀한 집안과 금실이 좋지 않은 아낙들이 할머니 묘를 찾아 정성을 다해 기도한 후 자식을 얻고 금실이 좋아졌다고 한다. 가히 이 무덤은 염험(靈驗)하고 기이(奇異)한 분묘(墳墓)임이 틀림없다.

 이와 유사한 수중묘인 경주지방의 대왕암은 신라의 3국통일을 완수한 문무대왕암으로 일컬어지며 문화재로 보존되기도 한다. 따라서 같은 정신의 수중묘인 대왕암도 소개한다. 

대왕암(문무왕릉)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30-1번지 소재 문화재(문무대왕릉) 〈문화재보호법〉절리에 의해 4방향의 수로가 발달했다. 수중왕릉.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표기하는 표지석 존재한다.<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능. 왕릉·수중릉>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불린다. 해변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다.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통일을 완수한 뛰어난 군주(君主)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문무왕이 재위 21년만인 681년에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에 장례를 지냈다.

그의 유언은 불교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입구에 있는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으므로 이 바위를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로 부르게 되었다.

이 능은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 가운데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자연바위이다. 남쪽으로 보다 작은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둘레에는 썰물일 때만 보이는 작은 바위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마치 호석처럼 보인다.

대왕암에 올라보면 마치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水路)를 마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특히, 동쪽으로 나 있는 수로는 파도를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이 외부에 부딪쳐 수로를 따라 들어오고 나감으로써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

이 안쪽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수면이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하고도 큰 돌이 놓여 있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문무왕의 유골을 이 돌 밑에 어떤 장치를 해서 보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중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이 판석(板石)처럼 생긴 돌 밑에 어떠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사방으로 마련된 수로와 아울러 안쪽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바위를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문무왕의 수중릉일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더구나 바위의 안쪽에 마련된 공간에 사방으로 수로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관한 탑의 형식에 비유되고 있다. 즉,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방에 문이 마련되어 있는 인도의 산치탑의 경우나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 석탑 하부의 사방에 통로를 마련한 것과 같은 불탑의 형식이 적용되어 사방에 수로를 마련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러한 예가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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