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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설화순례②]'강망산과 세오암'"거제도의 지명. 전설 및 설화를 아세요?"- '거제도 역사.설화 맛보기'

거제시 옥포2동 덕포마을의 뒷산을 강망산이라 부른다. 이 산의 정상아래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세오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고려 원종때 거제에는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 왜구의 본거지인 일본과 거제도는 거리가 가까워 왜구들이 제집 드나들 듯 했다. 왜구들은 거제도의 고을 고을 곳곳에 침입해 온갖 행패를 부렸고, 마음에 드는 물건은 모두 약탈해 갔다.

하루는 왜구들이 강망산아래 마을까지 침범햇다. 마을엔 장씨 부인이 살고 잇었는데 남편이 나무를 하러 간 사이에 왜구들이 장씨 부인을 겁탈하고 일본으로 잡아가려고 했다.

때마침 산에 나무를 하던 남편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왜구들과 혈전을 벌였다. 장씨의 남편은 죽기를 각오하고 왜구들에게 달려들었지만 왜구들에게 이기지 못하고 부인 대신 일본으로 잡혀갔다.

여인의 몸으로 정조를 잃은데다 남편까지 빼앗긴 슬픔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장씨 부인은 ㄱ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스님이 된 장씨 부인은 일본에 잡혀간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장씨 부인도 한많은 눈물 속에 여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후 사람들은 장씨 부인이 머물던 산자락을 일본에 잡혀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월을 보냈다는 뜻의 '강망산(江望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강망산 절터기 있던 곳을 '장사골' 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장씨 부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장씨골'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출처: 거제문화원 발행 거제도전래설화집>

                      거제 강망산 봉수대
         Smoke-Signal Station in Gangmangsan

거제시 덕포동 산33-19(경상남도 기념물 제202호)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봉수제는 기록상으로 고려 중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거로 생각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려말이후부터 조선 초기에 들어서였다.

봉수를 밝히는 봉수대는 대략 수 십리의 일정한 거리마다 시야가 확트인 산꼭대기에 설치 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근접해 오면 셋, 바다에서 적과 접전이 이루어지면 넷, 적이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웠다.

이곳의 봉수대는 언제 설치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옥녀봉의 봉수대와 구조상 유사하여 그것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주요 봉수로 중에서 동래 다대포에서 시작하여 서울에 이르는 제2의 봉수로에 속하는 곳이다.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율포의 가을곶 봉수대가 이 봉수대로 추측된다. 봉수대는 대부분 무너져서,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현재의 봉수대는 거제시가 다시 축조한 걱이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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